KT노동자(지면)
KT가 중고 단말기를 새 제품으로 속여 논란을 빚고 있다.

[스포츠서울 김민규기자]“현장에서 셋톱박스 등 설치기사들은 중고 단말기임을 알면서도 고객들을 속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고 또 불안했다.”

‘국민통신기업’을 자처하는 KT가 중고 단말기를 수거한 뒤 박스갈이를 통해 새 제품처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스포츠서울의 단독보도(13일자 1, 2면) 이후 KT를 향한 거센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KT서비스 소속 설치기사 A씨는 중고 단말기를 새 것 처럼 설치하는 작업에 대해 이처럼 털어놨다. 전북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지난 9일 “이제라도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야한다는 생각에서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KT 설치기사로 일하면서 고객을 속이고 기만한 행위 등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그동안 받아왔던 죄책감과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양심고백인 셈이다.

◇ KT 설치기사 “고객 속이기에 불안감 크다”

KT 설치기사인 A씨는 고객 속이기로 인해 심적 부담은 물론 불안감도 크다고 했다. 고객에게 직접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장 기사들은 단말기를 설치하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UHD 지원 셋톱박스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리모컨과 단말기가 세트로 구성돼 있어 가격도 일반 셋톱박스보다 비싸다”면서 “중고 단말기는 리모컨이 없거나 원본 리모컨과 맞지 않는 리모컨을 드리는데 이때 고객에게는 신품 리모컨 물량이 없어 나중에 물량이 나오면 주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객들이 UHD 지원 셋톱박스를 사용할 경우 리모컨과 세트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요금은 더 많이 내면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새 박스에서 제품을 꺼내다보니 대부분의 고객들은 셋톱박스가 새 제품인줄 안다. 간혹 일부 고객이 셋톱박스가 새 제품이 맞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신품화 작업을 한 중고 제품이라고 솔직히 알려드린다. 그리고 고객에게 새 제품이 나오지 않으니 고객센터에 민원을 넣으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이어 “KT에서 단말기 공급이 어렵다고 하면 설치 자체를 하면 안 된다. 수급조절이 되지 않으면서 신규 가입자 유치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KT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일 뿐 결코 설치기사들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고객들께서 헤아려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중고 단말기 ‘침묵’, 위약금은 챙겨

KT는 중고 단말기에 대해 침묵하면서 새 단말기와 똑같은 임대료를 받고 있다. A씨는 “3년 약정 시 임대료는 무료로 제공하지만 고객이 약정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지할 경우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단말기에 대한 위약금 체계도 투명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A씨는 “분실변상금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KT가 정확히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은 알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이 60개월이 넘게 사용한 셋톱박스를 분실했을 경우엔 이미 약정기간도 끝나 분실변상금을 따로 청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설치기사가 이런 셋톱박스를 수거했다가 분실할 경우 KT에서 설치기사에게 몇 천원의 변상금을 청구한다. 나도 분실변상금을 청구 받은 적이 있어서 회사 측에 어떻게 책정이 됐는지 상세내역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보여주지 않았고 더 이상 변상금을 내라는 얘기도 하지 않더라. 이는 위약금이나 변상금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 잘못은 바로 잡아야

이 같은 양심고백을 한 이유에 대해 A씨는 “잘못은 바로 잡고 고쳐야 발전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A씨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고객들이 모른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KT는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 일부 강성 민원인에겐 알아서 요금 삭감이나 감면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모르고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일반 고객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당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객들에게 셋톱박스가 중고인지 신품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는 KT 측의 해명에 대해 “손으로 먹든 수저로 먹든 밥만 먹으면 된다는 논리와 같다”면서 억지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A씨는 정부가 나서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객들의 관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중고 단말 설치 시 고객 고지를 의무화하고 제품의 신품화 과정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바뀌듯이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기사들 입장에서는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 일이 더 많아지고 번거로워 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중고 단말기로 고객을 속이며 마음 졸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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