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예능 새로 쓴 '소그노' 채널 "남탕예능에 회의감 느꼈죠"[SNS핫스타]
    • 입력2020-04-09 06:30
    • 수정2020-04-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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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강지윤기자] "재미있는 영상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지금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직관적인 웃음이 아닐까요?"


오직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7명의 크리이에터가 있다. 유튜브 채널 '소그노'를 운영 중인 권현지(22), 김은하(27), 김현주(23), 송채림(24), 오지혜(24), 이혜지(25), 허휘수(2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2017년 채널 '소그노'를 개설했고 자비를 들여가며 여성 콘텐츠를 제작했다. 2년이 흐른 지금,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 번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 적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열정이나 패기 같은 단어로 수식하기엔 진부하다. "다들 마음이 움직여야 일하거든요"라는 김은하 PD의 설명에서 짐작할 뿐이다.


다큐멘터리부터 각종 예능까지, '소그노'는 무거운 주제와 가벼운 웃음을 유연하게 오간다. 특히 일반인 인터뷰 시리즈 '다큐모멘터리'는 미디어의 형님문화, 가정폭력 등 사회 면면의 문제를 여성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비혼 여성들을 위한 음주 방송 '현생술집', 예능 '하와수의 랜덤박스', 콩트 '허휘슬전'에선 '소그노'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유쾌함. 멤버들 간의 거듭된 조율 끝에 나온다는 영상은 좀처럼 타협하지 않아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지난 2월 그들은 '뉴토피아'라는 대형 콘텐츠를 내놨다.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을 한데 모아 웹예능을 탄생시킨 것. '더는 그런 개그에 웃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선언에도 진보하지 못한 기존 미디어에 경종을 울렸다. '뉴토피아'는 기존의 예능 문법을 착실히 따르되 대상화, 외모 지적, 여성 캐릭터의 주변화를 거부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전에 없던 여성 예능'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자 누적조회수 80만을 돌파하며 구독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비결이다.


여의도 한 카페에서 미디어그룹 '소그노'의 대표이자 출연자인 허휘수 대표(이하 '휘수'), 출연·기획·편집을 담당하는 김은하 PD(이하 '은하')를 만났다.


Q. 채널 '소그노'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은하) 영화 학회 후배들과 웹시트콤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채널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뜻을 모았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다들 기획과 편집이 가능해요.


Q. 결이 다른 페미니스트들로 꾸려진 팀이라고. 공통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나요?

휘수)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엔 이견이 없어요. 페미니즘 내 다양한 논의가 있는데 그 안에선 갈리곤 하죠. 늘 절충안을 찾아요


은하) 마음이 그렇게 잘 맞진 않아요, 우정이 있을 뿐이지.(웃음) 절대 생각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장점이죠. a라는 의견을 냈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b와 c를 이야기해주니까요.


Q. 소그노의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은하) '다큐모멘터리'는 당신의 삶 그 어느 순간을 담겠다는 슬로건 아래에 만든 일반인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시즌 1, 2는 우울증, 유기견 등의 주제를 다뤘고 시즌 3부터는 범위를 좁혀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고 있어요. 매주 콘텐츠를 촬영·편집하며 새 코너를 기획하려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탄생한 게 예능 '하와수의 랜덤박스'예요. 어떤 아이템으로도 찍을 수 있죠.


휘수) '현생술집'은 비혼여성들의 고민을 받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라이브 방송이에요. 그래서 가제가 OFSW(Only For Single Woman)이었는데 직관적이지 않아 네이밍을 바꿨어요.

'허휘슬전'은 왜 전래동화엔 여성 서사가 없는가에서 시작된 콩트로 여성주의의 전체 맥락 속 환경문제 등이 녹아있죠.


Q. '다큐모멘터리' 한 회차 예산이 8만원이라고 들었어요.

휘수) 8만원이면 되게 후한 건데?(웃음) 그보다 적을 때도 많아요. 그나마 지난해엔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돼 지원받았죠. 그런데도 외주를 받아 번 돈, 법인으로 벌어들인 돈까지 모두 제작비로 썼어요.


은하) 이걸 본업이라고 할 수 없는 게, 한 번도 개인이 돈을 가져가 본 적이 없어요. 각자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하고 사비를 써가며 채널을 운영했죠. 이제 수익이 생겨 제작비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Q. 작년 8월 미디어그룹 '소그노'를 설립했다고요?

휘수) 2019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며 '소그노 영상제작소' 법인을 냈어요. 서울여성가족재단,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함께 일했죠. 앞으로 영상 사업, 여성들을 위한 오프라인 행사 등으로 판을 키우려 해요.



Q. 지난 2월 페미니스트 유튜버를 모아 '뉴토피아'를 론칭해 화제가 됐어요.

은하) 여성 유튜버들이 각개전투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그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만든 콘텐츠는 없었어요. 방송사 산하의 채널, VIVO-TV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성적 대상화,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고정된 역할 없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을 원했어요. 부러 기존의 예능 형식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복불복, 운동 같이 남성 버라이어티에 매번 등장하는 문법들을 따르되 폭력적인 부분은 뺐죠.


휘수) 마침 예비사회적기업 사업에 선정되며 자본이 생겼어요. 웹 시트콤으로 모인 친구들이다 보니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장벽도 낮았고요.


Q. 다른 유튜버와의 협업은 어땠나요?

은하)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고여있었어요.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몇 달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고, 2박3일간 함께 촬영하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콜라보를 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 않은데 그 가능성을 열지 않았나 싶어요.

2,000만 원이 넘는 제작비를 쏟아부었고 진짜 예능이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했어요. 이젠 카메라가 있으면 어디서든 말할 수 있어요.


휘수) 맞아요. 저도 '뉴토피아'를 찍은 후 유튜버의 자아를 입었어요. 멤버들 모두 이제 뭘 해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죠. 어떤 구독자가 '뉴토피아'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너무 좋죠. 이런 콘텐츠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계속 우리만의 것을 만들 거고요.


Q.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나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콘텐츠가 있나요?

은하) '디지털성폭력아웃(DSO)'과의 인터뷰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해요. 여성을 위해 일하는 단체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지가 느껴졌어요. 게다가 우리 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런 제도가 있으니 알아보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그 덕에 사업에 선정돼 '뉴토피아'도 찍게 됐고요. 그 인터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소그노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만약 기사를 통해 저희를 처음 접하신다면 '하와수-동묘 편'을 추천해요. 소그노가 가진 경쟁력을 파악하기 딱이죠.


휘수) 곧 제가 기획한 '디폴트 여성 100명' 인터뷰 영상이 올라가요. 탈코르셋 여성이 가시화되는 프로젝트인데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묘 영상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웃음)


Q. 김은하 PD는 소그노 채널 운영 중 탈코르셋을 했어요. 어떻던가요?

은하) 살짝 억울한 게, 다들 제가 꾸밈 노동을 엄청 열심히 했던 사람인데 탈코를 한 줄 아시더라고요. 사실 영상을 찍는다고 했던 거지 화장도 하지 않고 편한 옷을 즐겨 입었어요.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고 착각했고 담론이 오래되었음에도 늦게 한 감이 있죠.


무엇이 달라졌냐고요? 외양이 달라지니 행동이 달라졌고 행동이 달라지니 대우가 달라졌어요. 키가 커서 그런지 남자로 오해받곤 하는데 남자로 인식되는 순간부터 기성세대의 기본적인 태도가 변하더라고요. 자르고 나니 좀 억울해졌어요. 일상이 이렇게 편해질 수 있구나. 내 남동생은 인생 편하게 살았겠다.


휘수) 탈코르셋, 물론 쉽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있습니다.


Q. 김은하 PD는 예능 PD를 꿈꿨었죠.

은하) 공채에 목맸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예능 자막 아르바이트 당시 3번째 프로그램을 할 때였나?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여자만 나오는 프로그램은 없고 전부 '남탕 예능'이었거든요. 내가 정규직이 되어 이 일을 한다고 행복할지 의문이 생겼죠.

지망생들 사이에서 언론 공채에 성차별이 있다고 말이 많아요. 한 방송사는 매해 최연소 아나운서를 뽑고, 필기장에는 여자가 80%지만 실무, 임원 면접으로 갈수록 비중이 줄죠.


Q. n번방 사건에 분노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어요.

은하) 이렇게 많은 여자가 공분하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야 해요. 내용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이슈가 되었고 언론에선 이게 굉장히 특이한 사건인 양 보도하죠. 그러나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예요. 그 근본에는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고요. 아직도 피해 여성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이번에 조주빈 신상 공개 청원이 최다 동의를 받았잖아요. 부디 이 열기가 끝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끈기가 필요해요, 금방 꺼지지 않게.


휘수) 주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미성년자 성범죄'로 부르기도 하는 것 같은데, 여성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여성 혐오와 떨어질 수 없는 문제잖아요. 지금도 어딘가에선 진행형인 범죄이며 조주빈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휘수) 영상제작소 '소그노'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익을 극대화하고 안정성이 확보되도록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채널 '소그노'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고요.


은하) 재미있는 영상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직관적인 웃음이 지금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요? 올해 말이든 내년이든 대형 콘텐츠를 하나쯤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개인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은하) 최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미 시작해버렸고 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건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 구나.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공격적으로 영상을 만들 생각이에요. 물론 쉽게 끝나지 않겠지만요.


뉴토피아가 끝나면 글을 써볼까 싶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기록하지 않으면 잊을 것 같아요. 아, 쉬고 싶은데 왜 또 열심히 하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휘수) 이래서 '소그노'가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요?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다음을 이야기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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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 소그노 제공,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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