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손흥민. 캡처 | 토트넘 트위터 캡처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월드클래스를 지향하는 손흥민(28·토트넘)이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성장통과 마주했다. 2020년 자기 자신과 싸움을 딛고 완성형 플레이어로 거듭날지 관심사다.

퇴장 징계에서 풀린 손흥민(28·토트넘)은 5일 밤(한국시간) 영국 미들즈브러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9~2020시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64강전을 통해 새해 첫 출전을 노린다. 지난달 23일 첼시와 프리미어리그(EPL) 18라운드에서 퇴장당한 손흥민이 미들즈브러전에 나서면 18일 만에 그라운드 복귀다.

2주 넘게 ‘강제 휴식’을 취한 손흥민이나 그저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팀은 프리미어리그 3경기에서 1승1무1패로 승점 4를 얻는 데 그쳤다. 최근 2경기에서는 최하위 노리치시티와 2-2로 비기고, 12위를 달리는 사우샘프턴에 0-1로 졌다. 토트넘은 승점 30(8승6무7패)으로 6위를 달리고 있는데 상위권 도약의 디딤돌을 놓으려고 한 박싱데이 기간 주춤했다. 루카스 모우라, 에릭 라멜라 등 대체 자원의 활약이 미미했고, 사우샘프턴전에서는 ‘설상가상’ 주포 해리 케인마저 부상을 입었다. 토트넘으로서는 그라운드 복귀를 앞둔 손흥민의 활약이 절실하다.

징계 직전까지 오름세를 탄 손흥민이기에 기대가 크다. 하지만 손흥민에게 2020년은 경기력 뿐 아니라 ‘레드카드 교훈’을 명확하게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지난해에만 다이렉트 퇴장을 세 번이나 당했다. 201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그는 이전까지 딱 한 번 레드카드를 받았다. 독일 바이엘 레버쿠젠 시절인 지난 2014년 10월30일 독일축구협회 포칼에서다. 즉 이후 4년 넘게 한 번도 레드카드를 받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만 세 번이나 떠안은 건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첫 퇴장은 5월 2018~2019시즌 EPL 37라운드 본머스전에서 헤페르손 레르마를 밀치면서다. 이어 지난해 11월 4일 에버턴전에서 안드레 고메스에게 거친 태클을 했고 이번 첼시전에서는 상대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의 가슴 부위를 발로 가격했다. 세 차례 모두 감정 제어 실패였다. 본머스전과 첼시전은 사실상 상대 거친 압박에 보복성 플레이가 나왔다. 에버턴전 고메스를 향한 태클 역시 타이트한 경기 흐름에서 과욕이 부른 참사였다. 고메스는 크게 다쳤고 손흥민은 한동안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다.

손흥민이 스스로 감정 제어에 실패하는 건 그만큼 집중 견제 수위가 과거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무대에서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그는 어느덧 상대 견제 1순위로 거듭났다. 특히 케인이라는 존재가 있지만 조제 무리뉴 체제로 변신한 현재 손흥민은 전술상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직선적이고 역습을 통한 공격 전개, 골 마무리를 지향하는 무리뉴 감독 스타일에서 손흥민은 최적화한 재능이다. 지난달 24일 웨스트햄과 겨룬 무리뉴 토트넘 데뷔전에서도 손흥민이 첫 골을 터뜨린 데 이어 지난달 8일 번리전에서도 골 맛을 봤다. 단순히 골 뿐 아니라 공격 전개 과정에서 손흥민의 존재 가치가 빛난다. 속도를 지닌 윙어를 제압할 때 상대 수비의 가장 확실한 전략은 신경전이다. 의도적으로 거칠게 몰아붙인다. 최근 들어 자신을 향한 견제 수위가 높아지면서 손흥민도 곳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손흥민은 지난 2015년 여름 독일에서 잉글랜드로 무대를 옮겼다. 당시 유럽 리그 진출 이후 승승장구한 그가 첫 번째 성장통을 겪었다. 첫 시즌 40경기 8골에 그쳤고 독일 유턴설까지 나왔는데, 독일보다 템포가 빠른 잉글랜드 무대 적응에 어려워했다. 그러나 비시즌 여러 연구를 통해 이듬해 직선에서 곡선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나 상대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 등 잉글랜드 특유의 거친 압박과 스피드에 녹아들면서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두 번째 성장통은 플레이 스타일보다 심리적인 부분에 가깝다. 명확한 해결 정답은 없지만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포토] 손흥민 \'상대 수비 사이로 패스\'
손흥민이 지난 2018년 9월1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일본전에서 상대 수비를 뚫고 패스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당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그는 당연히 상대 팀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수비수 2~3명이 늘 따라다녔다. 시즌 중 갑자기 무더운 동남아 땅을 밟은 그는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고 상대 견제에 고전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그런 점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애초 많은 골을 넣어주리라는 예상을 깨고 그는 골문 근처보다는 외곽에서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며 공간 창출에 애썼다. 그 결과 대회에서 1골에 그쳤지만 도움을 5개나 기록, 이 부문 최다 기록을 세웠다. 대신 손흥민의 지원 사격을 받은 황의조가 9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1월 아시안컵에서도 비슷했다. 오히려 득점 부담을 스스로 내려놓고 동료와 소통을 강화하면서 능력치를 끌어내는 데 보이지 않는 구실을 한 셈이다.

물론 소속팀 경기는 대표팀과 다르게 개인의 골 수치 등 기록적인 부분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다만 대표팀보다 발을 많이 맞추는 클럽 특성을 고려,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것도 지혜다. 동료 공격수 컨디션이 일정하지 않지만 스스로 해결사 노릇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상대 수비를 역이용, 또 다른 공격 루트를 찾는 지혜야말로 진짜 월드클래스를 향한 디딤돌이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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