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입단 기자회견장에서 새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 출처=EPSN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2010년대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프로 입단과 동시에 KBO리그를 정복했던 모습을 세게 최고리그에서 고스란히 이어갔다. 투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어깨 수술도 극복하며 동양인 최초로 평균자책점 1위,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 야구를 가장 빛낸 선수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토론토)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그러나 류현진은 아니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처음 KBO리그 무대를 밟았던 2006년부터 특급 대우를 받고 토론토에 입단한 지금까지 15년 동안 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2년 겨울 역대 한국인 최고 포스팅 금액 2573만 달러(약 299억원)을 기록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류현진은 LA 다저스에서 7년 동안 평균자책점 2.98로 맹위를 떨쳤다. KBO리그 통산 평균자책점(2.80)과 ML 통산 평균자책점의 차이가 0.18에 불과하다. 류현진의 빅리그 연착륙은 신선한 충격이자 한국 야구의 자부심이 됐다.

2012 프로야구 한화-LG
한화 박찬호(왼쪽)가 3일 잠실 LG전 덕아웃에 앉아 류현진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을 꾸준히 만들었다. ML로 떠나기 전 마지막 한국무대 등판이 됐던 대전 넥센전에서 10이닝 1실점으로 역투를 펼쳤으나 경기가 1-1 동점에서 등판을 마쳐 7연속시즌 두 자릿수 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듬해 빅리그 첫 시즌부터 30경기 192이닝을 소화하며 14승·평균자책점 3.00으로 다저스 선발진 기둥이 됐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박찬호가 일으켰던 ML 열기도 류현진으로 인해 다시 점화됐다. 류현진은 물론 클레이턴 켜쇼와 야시엘 푸이그, 잭 그레인키 등 2013년 다저스 주축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으며 한국에서 두 번째 ML 르네상스가 열렸다.

고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015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어깨 통증을 느꼈고 당해 여름 수술대에 올랐다. 생존률이 7%에 불과한 어깨 관절 수술을 받으며 불투명한 미래와 마주했다. 하지만 류현진에게 어깨 수술은 더 높은 도약을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수술 후 철저한 재활로 이전보다 강한 몸을 만들었고 컷패스트볼을 추가해 보다 효율적인 투구를 펼쳤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상대 타자를 분석하고 자신 만의 게임플랜을 세우는 습관도 들였다.

류현진
LA다저스 소속이던 류현진이 지난 2016년 가벼운 피칭으로 몸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그러면서 2019년 커리어에 굵직한 금자탑을 쌓았다. 시즌 중반까지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자 미국 야구전문가들을 일제히 류현진을 향해 ‘좌완 그렉 매덕스’라며 찬사를 보냈다. 100마일 강속구는 없지만 정교한 제구력과 한 수 앞을 계산하는 볼배합으로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겨울 ML 스토브리그 중심에 우뚝 섰고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925억원) 계약을 체결하며 빅리그 두 번째 장을 열어젖혔다.

류현진이 가는 곳이 곧 대중이 응시하는 곳이다. 지난 7년 동안 LA가 그랬던 것처럼 2020년대 초반에는 한국 야구팬의 시선이 일제히 캐나다 토론토로 향할 게 분명하다. 2010년대 최고 스타 류현진의 빅리그 정복은 현재진행형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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