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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유인근기자]반상의 ‘풍운아’ 이세돌(36)이 AI ‘한돌’과의 은퇴대국을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25년 여 바둑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21일 전남 신안 증도의 엘도라도리조트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3번기 최종 3국에서 흑 불계패를 하고 바둑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었던 한국 바둑계의 큰 별이었다. 1983년 3월 2일 전남 신안 비금도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고(故) 이수오 씨에게 바둑을 배운 뒤 특출난 기재를 보인 이세돌은 8세에 서울로 바둑유학을 떠나 권갑용 문하로 입문했고 12세이던 1995년 입단에 성공한 바둑천재였다.

바둑인생에 ‘풍운아’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2000년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그해 32연승을 달리며 ‘불패소년’ 별명을 얻었고, 2002년 후지쓰배 결승에서 유창혁 9단을 꺾고 첫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쥐며 이세돌의 시대를 알렸다. 이후 18차례나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고 국내대회에서도 32차례 우승하며 총 50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타이틀 획득 수 통산 3위를 기록했다. 그의 바둑은 실리를 추구하는 수비바둑이기보다는 화려하게 몰아치는 공격바둑이어서 바둑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고,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라는 당돌한 말로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그럼에도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것은 몇차례 바둑계를 뒤흔들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이세돌은 가감없는 자기주장과 일인자로서의 자존심을 배경으로 바둑계 기성 질서에 도전하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9년 ‘대국료도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승단대회 보이콧을 벌였고, 2009년에는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여하려고 했다가 기사회와 마찰을 빚어 ‘휴직계’를 내고 잠적하기도 했다. 2016년 5월에는 “프로기사 상금 일부를 일률적으로 공제하는 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기사회에서 탈퇴했고 올해 기사직을 사퇴하면서 그동안 공제해 간 상금의 일부(3~5%)를 돌려달라며 법적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이와같은 이세돌의 초강수는 보수적인 바둑계의 변화를 이끌었지만 정작 그 자신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세돌을 수식하는 또다른 말은 ‘행운아’였다. 이창호가 기울면서 2000년 초반부터 한국의 대표 기사가된 그에게는 그 이전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부와 명예가 따라왔다. 바둑계 빅 이벤트가 잇따라 열렸는데 주인공으로 늘 이세돌이 낙점됐다. 2014년에는 라이벌인 중국의 구리 9단과 10번기가 성사돼 6승 2패로 승리하며 상금 500만 위안(한화 약 8억 5000만원)을 챙겼고, 2016년에는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결이 성사돼 1승 4패로 패했지만 전국구 스타로 부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당시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인류 유일의 프로기사로 기록되면서 각종 CF가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또 우리나라 바둑기사중 누구도 누려보지 못했던 은퇴대국을 갖게된 행운도 누렸다.

이유를 떠나 워낙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이세돌이었고 그 존재감이 너무 컷기에 당분간 바둑팬들의 상실감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가 새롭게 시작하는 또다른 인생에서 어떤 바람을 일으키고 얼마나 많은 행운을 몰고다닐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무대에서 ‘승부사’ 이세돌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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