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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대장금’으로 한류시대를 열고 ‘허준’, ‘동이’, ‘마의’ 등으로 신화를 만든 ‘사극 거장’ 이병훈 PD(75)를 만났다. 이 PD는 1970년 MBC에 입사해 2016년까지 40여년간 TV드라마 약 1100편을 연출했다.

이 PD의 사극들이 유독 드라마 한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9일 오후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FNS 프리뷰 2019’에서 만난 이 PD는 “사극 답지 않은 사극”이라고 답했다.

이 PD가 내놓는 사극들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한국 사극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1990년대 폭발적 인기를 끈 ‘조선왕조 500년’를 시작으로 60%대의 역사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허준‘부터 50%의 시청률로 사극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한 ’대장금‘, 그리고 20~30%대의 ‘이산’, ‘동이’, ‘마의’ 등까지. 이 PD가 연출한 작품 하나하나가 한국 사극사의 지평을 넓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PD는 사극이 해외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유 중 하나로 할리우드 스타일의 스토리 구조를 꼽았다. 이 PD는 “위기와 갈등, 치열한 반전과 통쾌함을 가진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할리우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부분이 일본, 중국 드마라와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50부작의 긴호흡 드라마를 연출해온 이 PD는 ”미니시리즈 스타일과 구성으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스피드하게 가져가려 했다. 50회 스토리 라인을 전체적으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살을 붙여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엮었다. 이런 스피디한 전개가 풍속과 가치관이 다른 외국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인 즐거움과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라고 봤다.

이 PD가 사극 장르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역사적 고증을 중심으로 딱딱하기만 했던 대하 드라마에 상상력을 더한 이 PD표 퓨전 사극은 대하 드라마의 대중성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주문한 것이 옛날의 복고적인 사극풍에 얽매이지 말고 행동, 대사, 연기체 모두 현대물처럼 하란 거였다. 대사의 양도 많고 전개도 빨라서 사극답지 않은 사극이었다.”

스토리 뿐만 아니라 의상, OST 등 외적인 부분의 디테일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이 PD는 “사극 의상은 보통 검은색, 회색, 흰색 정도밖에 없었는데 ‘허준’ ‘대장금’을 하며 사극의상의 색만 20여 가지를 만들었다. 사극을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라고 느끼기보다 현대물 같은 느낌을 주려 화사하고 밝게 만들었다”며 “‘허준’에서는 처음으로 사극에 피아노 OST를 깔았다. 음악 전문가를 기용해 뉴에이지풍의 음악을 넣었고, 이렇게 탄생한게 ‘대장금’ OST ‘오나라’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PD는 정조의 이야기를 다룬 ‘이산’을 제외하고는 ‘허준’, ‘대장금’, ‘동이’, ‘상도’, ‘옥중화’ 등 역사의 주변부에 있던 인물들을 끌어오고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스토리텔링 했다. 이 부분이 ‘드라마 한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 PD는 봤다.

“제 사극에는 반드시 전문직 직업이 등장했다. 의사나 약사, 수의사, 요리 전문가까지. 전세계 공통적인 직업이자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특수한 직업군을 내세웠고, 이를 남자주인공보다는 성장하는 여자 주인공을 통해 구현했다”는 이 PD는 “또 등장인물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만한 인물이지만 나름의 능력과 재주가 있어서 스쳐 지나가지 않고 스토리에 있어 한 몫을 해내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포토] 이병훈 감독, 글로벌 한류 포럼에서 주제 발표
FNS PREVIEW 2019가 9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 나눔관에서 열렸다.이병훈 감독이 글로벌 한류 포럼에서 ‘드라마로 보는 한류’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그중에서도 2003년 방영한 ‘대장금’은 아시아 중동 남미 전 세계를 강타하며 87개국에 방송, 이란 등 일부 국가에서 80~9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 판권수출로만 12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PD도 ‘대장금’에 남다른 애정을 표출했다. 이 PD는 “요리사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게 ‘대장금’이 처음이었다. 요리는 전세계적으로 누구나 관심있는 요소인데다 독특한 한국 요리에 타국에서도 많은 호기심을 보인 거 같다”며 “여기에 의술이라는 극적이고 강렬한 설정들을 넣었다. 지금도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극적인 요소들 때문에 의학 드라마들이 많은 인기를 얻지 않나. 요리라는 인류 공통적인 주제에 의술이라는 긴장감을 더하고, 여자 주인공이 천한 신분에서 최고 직위를 얻는 성공 스토리를 조화시킨 점이 ‘대장금’이 한류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한 드라마 한류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특별한 경험도 이야기했다. “루마니아의 한 학생이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왔다. ‘동이’를 보고 한국문화에 푹 빠져 이탈리아로 가려던 유학을 한국으로 왔다더라”라고 회상한 이 PD는 “그 친구와 편지를 1년간 주고받았다. 영작하느라 아주 골치가 아팠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이날 ‘FNS 프리뷰 2019’에서 ‘한국 드라마를 통한 글로벌 한류’를 주제로한 연사자로 나선 이 PD는 1시간가량 진행된 연사에서 한국 드라마의 위기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을 전세계에서 가장 드라마를 좋아하고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라고 자부한 이 PD는 최근 들어 극심해진 시청률 경쟁과 시청수단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공중파 드라마의 심각한 적자로 미래의 드라마 한류가 불투명해졌다고 진단했다.

이 PD는 미래 한류를 위해 ‘자생력’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 드라마가 많이 위축된 상태다. 다만 역설적으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 과거보다 한국 드라마가 퍼질 수 있는 플랫폼은 많아졌다. 한국 드라마 산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제약들을 줄이고 독창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입과 규제보다는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한류타임즈와 인공지능(AI) 솔루션 개발기업 알엔딥(RnDeep) 등이 공동주최한 ’FNS 프리뷰 2019‘에는 17개국 37팀 49명의 해외초청자와 국내 인사, 언론 등이 참석했다. FNS(Fandom Network Service)는 ’팬‘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 네트워크 서비스로, 전 세계 한류 콘텐츠의 팬들과 콘텐츠 생산자들을 단일 생태계로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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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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