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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과 니시노 아키라 감독의 지략대결이 임박했다. 하노이 | 이용수기자, 태국축구협회 홈페이지

[하노이=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한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동남아시아의 ‘슈퍼 클래식 매치’로 불리는 베트남-태국 라이벌전에서 한 판 지략대결을 벌인다. 동남아 양국의 자존심, 동아시아 두 나라의 명예가 한꺼번에 걸린 빅뱅이 펼쳐진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오는 19일 오후 10시 수도 하노이에 있는 미딩국립경기장에서 태국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G조 5차전을 치른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동남아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려 더욱 뜨거운 분위기에서 맞대결이 이뤄지게 됐다. 베트남은 지난 14일 G조 톱시드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홈에서 1-0으로 누르며 3승1무(승점 10)를 기록, G조 단독 선두로 우뚝 솟아올랐다. 반면 태국은 지난달 홈에서 UAE를 눌렀으나 14일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말레이시아와 원정 경기에서 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승점 7을 기록하며 2위를 달리고 있으나 UAE와 말레이시아(이상 승점 6)의 턱밑 추격을 받고 있다.

이번 경기는 축구 외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지녔다. 베트남과 태국은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지만 동남아 지역의 맹주를 놓고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정치·경제·사회적 입지는 물론 스포츠에서도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두 나라의 스포츠 경기는 특히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우리의 한·일 관계와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은 한국 지도자 박항서, 태국은 일본 사령탑 니시노 아키라가 지휘하고 있어 스토리를 더한다.

베트남 축구는 지난 2017년 10월 박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 태국에 번번히 무릎을 꿇었다. 태국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해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황이었다.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싹 달라졌다. 부임 직후 23세 이하(U-23) 대표팀끼리 치른 M150컵에서 태국을 눌러 베트남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은 박 감독은 지난 3월엔 도쿄 올림픽으로 가는 길목인 U-23 아시아선수권 예선에서 태국을 4-0으로 대파해 동남아 축구의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국가대표팀끼리 겨룬 지난 6월 킹스컵에서도 적지에 들어가 1-0으로 이겼다. 이어 두 달 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1차전에서 홈팀 태국과 0-0으로 비겼다. 태국만 만나면 결과를 걱정했던 베트남이 이젠 180도 달라져 자신감을 얻고 있다.

박항서와 니시노
‘동남아 최대 라이벌’ 베트남과 태국을 각각 대표하는 박항서 감독(왼쪽)과 니시노 아키라 감독. 최승섭 박진업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박 감독은 베트남과 태국, 한국과 일본이 뒤섞인 이번 경기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박 감독은 지난 12일 UAE전 승리 뒤 공식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감독을 할 때부터 니시노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 그에 관해서는 대표팀이나 프로팀에 있을 때 모두 알고 있다. 경기로도 상대한 적 있다. 하지만 태국 축구를 깊이 있게 모른다”며 “니시노 감독의 축구 성향은 잘 알고 있다. 그는 경험이 많다. (다음 경기에서)변화를 줄 것이라고 예측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니시노 감독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앞두고 일본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16강행을 이끌었다. 태국은 니시노가 ‘새로운 박항서’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박 감독은 치밀하게 한·일전 같은 태국전을 준비하고 있다. 19세 이하(U-19)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프랑스 출신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루시에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일본 대표팀을 맡아 16강에 진출시킨, 오늘의 일본 축구 만들기에 큰 보탬이 된 지도자다. 그런 트루시에가 태국-말레이시아전을 관전한 뒤 분석 내용을 박 감독에게 전했다. 박 감독의 각오도 단단하다. 그는 “난 베트남 감독이면서 한국인이다. 태국엔 일본인(니시노) 감독이 있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과 태국의 축구 관계가 최대 라이벌이다. 그만큼 우리도 준비를 잘해야 한다. 태국도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베트남 국민은 결과로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 내 실리 축구는 변함없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베트남 국민에 승리를 안기는 게 중요하다.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경기할 것”이라고 했다.

니시노 역시 베트남 원정에서 이기는 것이 말레이시아전 망신에서 벗어나는 방법임을 잘 안다. 지난 16일 하노이에 온 태국 대표팀은 정보 유출을 걱정,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제공하는 훈련장 대신 하노이 외곽 비엣텔 축구센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외부 미디어 접근을 차단했다. 일종의 사설 훈련장이다. 미딩국립경기장까지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극비리에 훈련하겠다는 니시노 감독 의중이 묻어나왔다.

아시아를 뒤흔들 빅매치가 하노이에서 열릴 날이 다가왔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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