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91113_140608956
박항서 감독은 13일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축구협회 미팅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고 G조 4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노이 | 이용수기자

[하노이=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훌륭한 선생이다. 위대한 감독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어딜 가든 박항서 감독을 향한 칭찬이 끊임 없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난 2년간 박 감독이 일궈 놓은 업적들은 그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2017년 10월 베트남 사령탑을 맡은 박 감독은 이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첫 AFC 주관대회 결승 진출(준우승)을 이끌었다. 이어 8월에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역시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지난해 12월엔 베트남이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10년 만에 일궈내는 중심에 섰다. 한 달 뒤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8강에 진출, 베트남 돌풍을 동남아시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원정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행도 역대 처음이다. 얼마 전엔 베트남축구협회와 3년 재계약을 했고, AFF가 격년제로 선정하는 ‘올해의 감독’에 뽑히기도 했다.

박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오는 14일과 19일 베트남 하노이의 미딩 국립 경기장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G조 4~5차전을 치른다. 4차전 상대는 G조 톱시드를 받은 중동의 강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5차전은 동남아시아 최고 라이벌 태국전으로 두 나라의 경기는 한·일전과 비슷한 열기를 띤다. 2연전 앞두고 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베트남인들의 박 감독 인기와 존경심은 상상 이상이다. 하노이 국제공항 게이트를 통과하면 베트남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뛴 적이 있는 루엉 쑤언 쯔엉과 박 감독이 같이 있는 국내 은행 광고가 전세계인을 맞는다. 해외에 나가면 가장 먼저 만나기 마련인 택시 기사를 통해서도 박 감독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택시 기사 담 쑤안 펑(58) 씨는 여느 외국인 손님을 태운 듯 무뚝뚝한 태도로 기자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인임을 설명하고 박 감독 얘기를 꺼내자마자 반색하며 태도를 바꿨다. 그는 “박항서 감독님은 훌륭한 선생님이다. 나도 그를 좋아한다. 경기 때면 찾아가서 응원한다”며 “또 베트남 국민이 박 감독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만나 축구 얘기를 할 때면 박 감독에 관한 대화도 많이 한다. 그가 베트남 축구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박 감독은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일반 축구팬이 바라보는 시각과 축구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축구를 1년 내내 접하는 이들이 더 냉정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베트남 대표팀 내면까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베트남축구협회 내부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대중의 시각과 전문가의 시각을 다를 때가 많다. 베트남에선 일치했다. 지난 12일 아시아 2차 예선 4~5차전 취재증을 받기 위해 찾아간 베트남축구협회의 내부 사람들도 박 감독에 관한 평가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신을 뚜웬이라고 소개한 협회 내 영상 담당자는 “10년 전 우승했던 스즈키컵에서 (박 감독 덕분에)다시 지난해 우승할 수 있었다. 피파랭킹도 100위 밖이었지만 이제는 (두 자리 수)안으로 진입했다”며 박 감독 업적에 높은 점수를 줬다. 협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을 높게 평가한다. 우리는 그를 ‘베트남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또 푸근한 인상을 지닌 박 감독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귀여운 이미지때문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이라는 별명도 생겼다”고 했다. 박 감독의 인기는 이제 대중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질 만큼 커졌다.

박항서 기자회견
13일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축구협회 미팅홀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베트남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G조 4차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 많은 베트남 취재진이 참석했다. 하노이 | 이용수기자

박 감독이 이런 사랑을 숨은 이유는 단순한 국제대회 성적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베트남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어깨에 힘을 줄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 꼽힌다. 베트남은 한·일 관계처럼 태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숙적 태국과 붙는 모든 승부에서 죽을 각오로 임하는 면이 우리의 일본전 모습과 닮았다. 베트남축구협회 관계자는 “박 감독 이전에 베트남 국민은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더라도 인기가 좀 있는 U-23 대표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국가대표팀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며 “그러나 박 감독이 지휘봉 잡은 뒤로 성적도 좋아지고 특히 국가대표팀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태국보다 실력과 성적이 올라서 매우 기분 좋다. 그가 오기 전엔 태국전 성적이 좋지 않아 (축구만 하면)불안했다. 박 감독이 오고 난 뒤 어느 팀과 붙어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서움이 없어졌다. 그래서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이제 새로운 무대를 꿈꾼다. 본선행은 나중에 얘기하더라도, 당장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처음으로 오르고 싶어 한다. 분수령이 될 UAE전, 태국전 등 홈 2연전에서 박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베트남 팬들의 말대로 박 감독은 “우리(베트남) 축구에 빠져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연말 벌어지는 동남아시안(SEA) 게임 우승컵 기대감까지 합쳐지면서 박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베트남을 사로잡고 있다.

purin@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