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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체육이 아무리 썩어빠졌다고는 하나 어디 정치만 할까. 체육이 자신있게(?) 아래로 깔아놓는 건 바로 국민마저 등을 돌린 정치다. 체육이 그나마 정치보다 낫다고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체육을 향한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살아남아 있기 때문일 게다. 한국의 정치가 3류로 전락한 데는 타협과 설득은 고사하고 독선과 배제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중층적 모순구조를 전혀 치유하고 있지 못해서다. 그런 3류 정치가 체육의 영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추근대고 있어 걱정이다.

체육과 정치의 선택적 친화력은 다분하다. 다만 그 결합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 체육과 정치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체육은 날선 비판의식을 잠재우는 탈정치화 기능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의식을 동원하고 복잡다단한 갈등구조를 치유하는 사회적 통합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지고 있는 체육과 정치의 결합은 색다르다. 특별한 의도를 지닌 정치인과 체육인의 불편한 동거라는 생각이 퍼뜩 드는 건 필자의 지나친 비약일까. 최근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는 체육과 정치의 만남은 순수하기 보다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해 씁쓸하기 그지없다.

체육의 자율성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시대에 역행하는 두 영역의 결합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체육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찬물을 끼얹는 일련의 흐름은 한국 체육의 퇴행적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이러한 흐름에는 체육 주체의 뼈저린 각성과 성찰이 뒷받침되지 못한 탓이 크다. 그렇지만 체육의 영토를 호시탐탐 엿보는 정치권의 불순한 의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잇따라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국기원 이사장 선거나 내년 1월 15일 열리는 지방체육회장 선거는 정치와 체육의 불편한 공생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체육계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 천만의 말씀이다. 국민을 오로지 표로 여기는 그들의 속물적 근성이 대중에게 친숙한 체육이라는 콘텐츠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대중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체육의 매력이 이미지 메이킹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의 입장에선 먹잇감으로 부족감이 없었다. 체육계에서도 철학없는 정치인이 절실한 세력이 존재했다. 체육을 ‘갈라파고스의 섬’으로 만들어 선량한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한 채 배타적인 권리를 누렸던 구 시대의 체육인들이 바로 장본인이다. 체육계 스스로도 시대착오적인 부정과 비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들이 설 땅은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듯했다. 시대정신과 시민사회의 눈높이에 맞춰 구 시대의 체육 마피아들을 솎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이들의 질긴 생명력은 정치에 기대 다시 살아났다. 그게 바로 비극의 시작이다. 체육에 대한 가치와 철학이 없는 정치인들을 꼬드겨 체육계로 입성시킨 뒤 자신들의 든든한 뒷배로 삼으려는 게 세파에 닳고 닳은 체육 마피아들의 숨은 속내다.

체육 마피아의 안내로 체육계에 입성한 정치인은 다양한 쇼잉(showing)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체육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체육의 가치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공생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마피아들은 약속이나 한듯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그들과 손잡은 정치인은 권력을 앞세워 솎아내야할 마피아들을 보호해주는 뒷배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와 체육의 불편한 공생관계가 체육개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역설적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철학과 가치로 만나야 할 정치와 체육이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만나게 되면 불행이다. 삿된 권력의 차단과 시대착오적인 체육 마피아의 퇴출은 체육과 정치의 불편한 공생관계를 끊어내지 않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다가오는 새로운 체육생태계에서도 두 영역의 야합은 반드시 끊어내야할 지상과제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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