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1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본지와 인터뷰한 후 미소를 짓고 있다. 정다워기자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박항서(60) 감독의 ‘베트남 신화’는 계속된다.

베트남축구협회는 현지시간으로 5일 저녁 박 감독과의 재계약을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밝히지 않은 가운데 7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리는 베트남축구협회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박 감독이 직접 상세하게 알릴 예정이다. 베트남 축구 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박 감독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연봉과 계약기간은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신화와 같은 인물이다.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박 감독은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이끌며 역사를 썼다. U-23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였으나 베트남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 당시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 빗대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으며 베트남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베트남은 지난해 8월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A대표팀이 출전한 동남아시아의 월드컵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영웅이 됐다. 스즈키컵의 경우 베트남이 10년간 정상에 선 적이 없어 우승이 간절했는데 이 대회 우승으로 라이벌 태국을 상대로 자존심을 세우게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은 지난 1월 아시안컵 8강에 진출,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극했다. 마냥 약체로만 여겼던 베트남이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됐다는 방증이었다. 박 감독 부임과 함께 베트남 축구는 전례 없는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아시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강호로 성장한 모습이다.

박 감독과 베트남의 계약은 내년 1월 만료된다. 베트남축구협회는 10월 박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재계약 의지를 전하면서도 은근한 밀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연봉과 계약 조건 등에 대한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현지 수뇌부가 무리한 조건을 외부에 흘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박 감독은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돈을 요구한 적은 없다. 선의를 갖고 조기에 협상했다. 원만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베트남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재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협상의 주도권은 박 감독에게 있었고, 현지 여론도 박 감독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베트남축구협회는 박 감독의 결정을 기다리는 입장었고, 그는 무리 없이 재계약을 선택했다.

재계약을 확정한 박 감독은 다음 목표를 향해 탄력을 받고 전진할 수 있게 됐다. 박 감독은 현재 월드컵 예선을 비롯해 12월 동남아시안게임(시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 대회 우승이 목표인데 정상에 서면 명실공히 동남아 최강팀으로 군림하게 된다. 동시에 박 감독은 베트남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진출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2차예선 G조에서 2승1무 무패로 순항하고 있다. 태국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챙기는 등 연령대 대표팀과 A대표팀을 겸임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순항하고 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베트남을 실망시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번 재계약을 통해 박 감독은 베트남 역대 최장수 감독에 등극할 기회를 얻었다. 베트남 축구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령탑을 맡은 지도자는 포르투갈 출신의 엔리케 칼리스토 감독인데 그는 2008년 6월부터 2011년 3월까지 2년 9개월간 팀을 이끌었다. 앞선 2002년 8~12월 잠시 지도했던 것을 포함해도 3년 정도에 불과하다. 박 감독은 이미 2년 넘게 베트남을 지휘하고 있는데 앞으로 1년 이상 자리를 지키면 베트남 축구의 레전드가 될 수 있다. 이미 전설적인 존재이지만 모든 기록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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