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이정수 기자

[스포츠서울 이정수 기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환자에게 ‘생명연장’은 그 어느 것보다 귀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나 연인과의 이별, 삶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더 미룰 수 있다면 그것이 ‘미신’일 지라도 기대고 싶은 것이 무릇 인간의 본성이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방송인 겸 가수인 김철민씨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오남용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은 이같은 생명연장에 대한 바람과 욕구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 약물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효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이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에게는 안전성·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동영상 온라인 공유 플랫폼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통해 ‘강아지 구충제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불거진 이후, 이 약물에 대한 국내 암환자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생명연장을 위한 대안이 없는 말기 암환자이기에 당연한 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 주장과 관련된 자료와 영상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이 약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확산된 이유가 엿보인다.

지난달 중순 한 암환자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진 유튜브 영상은 암환자와 가족에게 상당한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이 영상은 ▲수의사 권고로 펜벤다졸 복용 후 3개월만에 암 완치 ▲강아지 구충제 복용 후 완치 사례 40여건 공개 ▲동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항암효과 확인 등의 내용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다. 이후에도 ‘구충제 항암효과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등 펜벤다졸의 암 치료 가능성을 다룬 유튜브 영상이 속속 이어졌다.

이 영향으로 암환자 커뮤니티에서는 최근까지도 펜벤다졸 복용법과 구매방법, 전문가 의견, 복용후기 등이 수시로 공유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미국 암 환자 완치 소식을 다룬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220만을 넘어섰다. 방송인 김철민씨 복용후기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대중적 관심을 크게 받기도 했다.

식약처도 지난 28일 ‘동물용 구충제, 동물에게만 허가된 약입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펜벤다졸은 암세포 골격을 만드는 세포내 기관을 억제해 항암효과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며 일부 내용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일한 작용으로 허가된 항암제가 있다는 점 ▲구충 효과 의약품으로 항암효과를 얻기 위해 고용량을 쓸 경우 심각한 신경·간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고, 사람에겐 처방된 적이 없어 안전성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사용 중지를 당부했다.

대내외적으로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보건당국으로서 식약처 대처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항암제로도 고통스러운 부작용을 감내하고 있는 암환자 역시 부작용 부담을 알면서도 생명 연장이라는 기대감에 구충제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보건당국과 제약사가 비싼 항암제를 팔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식의 의혹이 제기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현재는 특정 환자에게 강력한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확인돼 ‘혁신신약’으로 평가받는 약물 중에는 과거 의료과학 수준이 낮았을 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사례도 있다.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삶의 마지막 희망을 잡고자하는 암환자의 안타까운 선택이 향후 혁신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leej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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