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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5일(한국시간) 브라이턴과의 리그 원정경기 직후 믹스트존을 통과하고 있다. 브라이턴 | 고건우 통신원

[브라이턴=스포츠서울 고건우통신원·이지은기자]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의 ‘정중한 사양’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축구장에는 출구 근방에 공동취재구역이 마련돼 있다. 흔히 ‘믹스트존’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경기가 끝난 뒤 그날 활약한 선수들이 취재진을 만나 일전을 정리하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관례다. 손흥민은 이 자리의 ‘프로참석러’였다. 지난 시즌 최종전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패했던 직후를 제외하면 한 번도 믹스트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비록 팀이 승리하지 못했던 날이라도 자신을 밤새워 응원해준 고국의 팬들을 위해 짧은 소감이라도 전하곤 했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인터뷰 기사에는 ‘정중한 사양’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브라이턴 호브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커뮤니티센터에서도 그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브라이턴전 0-3 패배 후 담담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에 등장한 손흥민은 향후 귀국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고개만 끄덕인 후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되돌아보면 9월21일 리그 6라운드 레스터 시티 원정에서도 손흥민은 시즌 1호 도움으로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도 팀의 1-2 역전패에 웃지 못했고, 어두운 얼굴로 퇴근길을 재촉했다. 이달 2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B조 2차전에선 챔피언스리그 시즌 첫 골을 넣으며 뮌헨전 8경기 무득점을 깼지만, 팀이 2-7 참패를 당하면서 끝내 침묵했다.

2015년 손흥민이 입단 이후 토트넘은 최악의 출발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 리그 8경기에서 3승2무3패(승점11)로 8위까지 내려앉았는데, 이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부임 첫해였던 2014~2015시즌 이래 받아본 적이 없던 성적표다. 2016~2017시즌 5승3무 무패(승점18), 2017~2018시즌 5승2무1패(승점17점), 지난 시즌 6승2패(승점18)와 비교해도 초반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다. 지난 시즌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눈앞에 뒀던 전력과 구성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나 이번 시즌에는 2경기에서 1무1패로 조별리그 통과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2경기 10실점으로 수비진 붕괴 위기 속 주전 골키퍼인 위고 요리스까지 팔꿈치 탈구 부상으로 이탈했다. 브라이턴전이 끝난 뒤 포체티노 감독 역시 “팀을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초반에 실점했고 골키퍼까지 잃었다. 최근 2경기는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어려운 결과였다.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으나, 이후의 결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경질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반면 손흥민의 시즌 초반 감각은 나쁘지 않다. 징계로 인해 1~2라운드에 결장하기는 했으나 3라운드부터 선발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고, 5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 멀티골, 6라운드 레스터 시티전 1도움, 7라운드 사우스햄프턴전 1도움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9월 ‘이달의 선수’ 후보로 선정됐다. 예년보다 빠른 페이스로 시즌 3호골까지 터뜨리며 유럽무대 통산 119골로 차범근 감독이 보유한 한국인 최다골에 2골 차로 다가선 상태다. 그러나 소속팀의 부진 속 ‘스마일 보이’의 얼굴엔 웃음기가 걷힌 지 오래다. 토트넘의 더딘 출발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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