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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 “좋은 노래를 오래 하려면 오래 견뎌야 해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떤 순간에도 ‘멘탈’을 잘 잡고 있는 게 중요해요.”

흔한 ‘자기계발서’식 조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백지영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르다. 가수 인생 내내 평범한 사람은 감내하기 힘든 위기와 우여곡절을 숱하게 겪어오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온 그다. 1999년 가요계에 데뷔할 때는 라틴 리듬의 댄스곡을 앞세운 댄스가수였던 백지영이 ‘발라드의 여왕’으로 우뚝 서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최근 만난 백지영은 “짱짱하게 20년을 온 건 아니에요. 중간중간 고비가 많았고, 힘든 순간도 있었는데 노래도 잘 만났고, 사람을 잘 만난 순간도 있었어요. ‘때’가 잘 작용한 거 같아요. 내가 피땀 흘려 노력해서 이어온 시간이 아니라 그런 ‘때’같은 게 작동하는 걸 느꼈어요. 예전엔 시간이 가는걸 밀어도 보고, 당겨도 봤는데 소용 없더라고요. 지금은 흘러가는 시간에 함께 흘러가고 있는 있는 느낌이에요”라고 20년을 되돌아봤다.

“내게 맞는 곡은 만나지는 거에요. 내가 아무리 몇백 곡씩 받아가며 노력해도 소용 없어요. 딱 한 곡을 만날 때까지 ‘멘탈’을 잡고 있어야 해요. 잠깐씩 주목받을 때마다 일희일비하면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기 직업을 대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구설수에 휘말린 일도 많았고, 2008년 성대 낭종 제거 수술을 받는 등 가수 인생 자체가 중단될 위기도 몇차례 있었다. 최근엔 남편인 배우 정석원이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 유예를 선고 받는 걸 지켜봐야 했다.

힘든 순간을 버티는 백지영만의 노하우가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이걸 하면 안되거나 다른 것도 하고 싶어지면 힘들고, 고통스러워지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전 사실 인생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갈 길이 분명하게 보여요. 원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긴 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편이에요.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요.”

남편의 마약 투약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 파장이 확산된 다음날에도 백지영은 무대에 섰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었어요. 안 좋은 일을 이겨내지 않으면 포기하는 건데, 포기는 끝이잖아요.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백지영의 남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오히려 백지영을 응원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너무 감사하죠, 당시 저는 우리 가정이 바로 서게 내조하고, 끈끈하게 사랑하고, 무너지지 않게 다잡고, 남편과 그런 과정을 다지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고, 그게 큰 힘이 되었어요. 시간을 견디기 수월하게 해주더라고요.”

백지영은 “가끔 힘든 일을 겪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너무 속상해요. 어떤 일도 희망이 없는 일은 없어요. 없다고 생각하니 안 보이는 거지 사실 있어요. 예전엔 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의도하지 않게 20년 세월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거 같아요. ‘어떤 일에도 희망이 있구나’하는 걸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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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들은 그의 노래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도 다 산게 아니고, 활동을 다 한게 아니잖아요.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또 어떤 잘못을 할지 모르고, 또 어떤 이슈로 뜨거운 감자가 될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젠 저지르지 않고, 절제할 수 있게는 된 거 같아요. 결혼을 유지하고, 아이를 낳으며 노래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어진 거 같아요. 노래의 색이 선명하고, 짙어졌어요.”

백지영은 1999년 1집 ‘소로우’로 데뷔, ‘선택‘, ‘대시’, ‘새드 살사’ 등 라틴 리듬을 앞세운 댄스 곡들로 ‘댄싱퀸’의 자리를 굳힌 뒤 ‘사랑 안해’, ‘총 맞은 것처럼’, ‘잊지말아요’ 등으로 ‘발라드 여왕’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백지영은 미니앨범 ‘레미니센스’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우리가’는 이별을 해봤거나, 이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백지영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로 풀어낸 발라드곡. 특별히 ‘20주년’에 대한 의미를 담은 노래는 아니다. 백지영은 “자꾸 ‘20주년’을 강조하고 싶진 않아요. ‘20주년’이라 하면 할 게 얼마 안 남은 사람 같아 보이니 너무 그러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한편 백지영은 20주년 기념 단독콘서트 ‘BAEK Stage(백스테이지)’를 개최한다. 오는 11월 23일(토) 수원을 시작으로 3월까지 대구, 청주, 부산, 서울 등의 지역에서 연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트라이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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