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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이 29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2019~2020 ISU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제공 | 올댓스포츠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피겨여왕’ 김연아가 걸어온 대기록의 길, 그 출발선에 이해인(14·한강중)이 섰다.

이해인은 29일(이하 한국시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2019~202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1.95점, 예술점수(PCS) 62.16점을 햡쳐 134.11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69.29점을 얻어 2위로 출발했던 그는 총점 203.40점으로 다리아 우사체바(러시아·197.16점)와 순위를 맞바꾸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7일 3차 대회에서도 197.63점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던 이해인은 오는 1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왕중왕전’ 성격의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을 확정했다.

간밤 전해진 낭보에 한국 피겨계도 발칵 뒤집혔다. 사실 김연아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뒤 ‘포스트 김연아’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대거 등장했으나, 누구도 그 타이틀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해인은 2005년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역대 2번째 한국 선수로 주니어 그랑프리 두 개 대회 연속 우승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파이널 출전, ISU 공인 200점 돌파 등 김연아가 시작한 한국 여자 싱글 스토리를 쫓아가며 세상에 다시 ‘피겨퀸’ 이름을 끌어올렸다. 이제 이해인이 마지막 관문에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을지 피겨계 시선이 쏠린다.

◇ 고난도 점프 없지만+강한 정신력 있다…김연아 장점 닮았네

이해인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파이어댄스’에 배치된 11개 연기요소에는 트리플 악셀(3회전반 점프)이 없다. 최근 러시아를 중심으로 고난도 점프 바람이 불면서 실전에서까지 4회전 점프를 선보이는 여자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이해인은 무리한 기술을 시도하지 않는다.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현재 그를 지도하는 지현정 코치의 신념이기도 하다. 2004년 김연아와 함께 주니어 그랑프리 첫 우승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는 지 코치는 “트리플 악셀은 비시즌에 연습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회전이 아니다. 부상의 위험이 있기에 시즌 중에는 치중하지 않겠다. 현재는 표현력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해인의 성장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 전략이 가능하려면 선수의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구성 안에서 최대한의 점수를 뽑아내야 하는데, 다른 선수들과 비슷하게 실수를 한다면 그들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인은 ‘멘탈’에서도 김연아 장점을 빼닮았다. 방상아 SBS 해설위원은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의지가 다부진 선수다. 링크를 도화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구상한 그림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긴장하다 보면 운영에 오차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것 없이 물 흐르듯 스케이팅을 한다. 주니어인데 시니어같이 탄다는 느낌까지 받는다”고 칭찬했다. 이는 이해인의 두 차례 우승을 통해 잘 드러난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하며 3위로 출발했던 3차 대회에서는 앞선 선수들이 클린 연기로 프리스케이팅을 마치는 모습을 본 후 링크에 들어가 자신 역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6차 대회에서는 양일간 모든 점프를 안정적으로 구사하며 스핀에서도 최고 레벨로 계산된 가산점을 모두 수확했다.

이해인 주니어 국제대회 점수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한다면…‘제2의 김연아’가 됐다고 봐야”

국제 무대에서 한국 피겨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한 모습이다. 기존 삼총사로 꼽히던 임은수(16·신현고) 김예림(16·수리고) 유영(15·과천중)이 시니어 무대에 연착륙했거나 데뷔를 앞둔 가운데, 14세 동갑내기 위서영 지서연(이상 도장중)은 물론, 13세 박연정(하계중)까지 4명이 한꺼번에 두각을 나타내며 언니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주니어그랑프리 1,2차 대회에서 위서영과 박연정이 각각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서연도 4위에 오르는 등 이번 시즌 계속해서 낭보가 전해지는 상태였다.

그 중 이해인이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없다. 지난 시즌 자신의 주니어 데뷔 무대였던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깜짝 등장에 불과했으나, 1년 새 보여준 엄청난 성장세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설명이다. 변성진 ISU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는 “김연아가 외국에 나가서 점수를 많이 받았던 이유는 ‘정석’에 가까운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스케이팅이나 점프를 하는 자세가 심판들이 선호하는 올바른 폼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 선수들에 비해 눈에 띄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해인은 이런 부분에서도 김연아와 비슷하다. 이번에 2회 연속 우승을 한 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또 정상에 오른다면 그 땐 정말 ‘제2의 김연아’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기대했다. 김연아도 2005년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2회 연속 정상 등극에 이어 파이널까지 석권하며 세계적인 선수의 자질을 알렸다. 이해인도 두 달 보름 뒤 토리노에서 그 길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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