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석혜란기자] "모델과 골프요? 제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죠. 운명적으로 갖게 된 모델이라는 직업과 골프라는 취미는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거든요."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더운 날 그를 만났다. 한 달 뒤면 열릴 '서울 패션위크'를 앞두고서다. 조금 걱정됐지만 야외 촬영을 부탁하자 "당연하죠"라며 웃어 보였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포즈를 취하며 촬영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인 건가.


2004년 월드베스트 모델선발대회 부산 경남대회 1위를 시작으로 2005년 '슈퍼모델' 본선 진출을 거쳐 앙드레 김 컬렉션, 서울컬렉션, 프레따뽀르떼, 서울컬렉션 등 다수의 패션쇼를 통해 주목받은 모델 하연화(34). 인터뷰 내내 그녀는 17년 차 모델의 노련미를, 12년 차 강사의 포스를, 그러다가도 여린 소녀같은 반전 매력을 선사하며 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녀에게는 모델 말고도 또 하나의 수식어가 있다. 바로 골프 여신이다. 올해로 골프 입문 7년 차라는 하연화는 하루에 3~4시간 연습할 정도로 골프광이다. 178cm의 우월한 비율과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모습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즘에는 너무 골프 사진만 올렸더니 선수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최근에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까지 갖춰 주위에서 '선수 할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는 일도 부기지수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서 1등도 하니 주위에서 '진작에 골프를 했으면 좋지 않으냐' '비주얼 되고 키 크고 잘 치면 지금보다 광고로 더 잘 벌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골프는 제 삶의 활력소라서 취미로 즐기고 싶어요. 일로서는 모델이 좋아요. 무대에 섰을 때 그 긴장감이 짜릿하거든요. 그리고 관객들 소리가 귀에 들려요. '와 멋있다'라고. 그 한마디에 희열을 느끼거든요."


취미와 일을 동시에 즐기며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하연화. 천직인 모델을 통해 성격을, 골프를 통해 멘탈을 얻었다는 그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모델


초등학생 때부터 168cm의 남다른 큰 키를 자랑한 하연화. 당연히 주위에서 연예인 혹은 모델을 하라는 말을 들었고 자연스럽게 모델계에 입문하게 됐다.


"언니, 여동생, 남동생, 저 이렇게 넷이에요. 그중에서 아버지의 연예인 끼를 물려받은 사람은 저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델 일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사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키 덕분에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봐라', '슈퍼모델 대회 나가봐라'라는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학창시절에는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외향적으로 바뀐 시점이 이때부터였어요. 그래서 아카데미 수료 후 모델 활동을 시작했죠."


모델 일을 반대할 법도 한데 오히려 좋아하고 응원해준다는 하연화의 부모님.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비쳤다.


"아버지가 가수활동 시절에 꿈이 많으셨어요. 저도 사실 아버지 이야기는 삼촌들 통해서 들었거든요. 듀엣으로 활동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그만두게 되셨다고 해요. 여운이 남으셨나 봐요. 아버지께서 아쉬운 게 있으셔서 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권하시는 것 같아요."


그는 올해로 모델활동 17년 차에 접어들었다. 슬럼프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슬럼프가 한 번도 없었던 이유는 외모 덕분인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때부터 이 얼굴이었거든요. 제가 데뷔했을 시기에는 군기가 엄청나게 심했어요. 그런데 제 얼굴 때문에 처음부터 모델 활동 하기 편하더라고요. 후배인데도 후배같지 않은 마스크여서 메인 모델도 많이 서기도 했어요. 굉장한 복이라고 생각해요. 모델 생활이 즐거웠어요." (웃음)


롤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지젤 번천을 꼽았다. "지젤 번천이 롤모델이에요. 탄탄한 말 근육에 얼굴도 길고요. 인형같이 예쁜 스타일보다 멋있는 스타일의 모델이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더 많이 닮고 싶어요."


◇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잊고 있던 열정이 생각나더라고요"


최근에는 아카데미에서 진로를 준비하는 학생부터 중년의 행복을 꿈꾸는 시니어까지 워킹을 가르치고 있다. 수강생들의 열정을 보면서 잊고 있던 신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중학교는 진로 특강, 그리고 시니어 반은 취미반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특히 시니어반은 요즘 모델 김칠두 님이 워낙 유명해져서 너도나도 수강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시니어 분들 중에 여유 있고 한가하신 분들이 많이 들으세요. 취미로 하시는 분들도 있고,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세요. 요즘엔 학생들 가르치는 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학생들 가르치다 보면 제가 어렸을 때 '아 나도 이렇게 열정이 있었을 때가 있었지'라고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수업하기 전에 혼자 워킹 해보곤 해요."


잘 걷는 방법이 있을까? "뻔한 말일 수도 있는데 자신감. 자신 없어 하시는 분들은 걸음걸이에서 나와요. 예들 들어 커피숍에 머쓱하게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랑 똑같아요. 워킹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은 팔도 안 움직이고 걸음걸이도 좁은 보폭으로 걷는데 자신감 있게 걷는 분들은 달라요."


◇ 골프에 골자도 모르던 초보에서 싱글 치기까지


골프에 골자도 몰랐던 20대 초반, 우연히 보게 된 스포츠채널에서 장신 골프 선수 미셸 위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 키가 큰 사람들이 작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신기하면서 멋있어 보였단다. 골프를 좋아하고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송 출연의 기회가 생겨 SBS 골프 '서바이벌 골프홀릭 시즌1', '남다른 골프 챌린지', '청춘 스크린'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여기서 '골프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구력은 올해 7년 됐고요. 레이디티 기준으로 싱글 칩니다. 처음 시작하고 나서 2년까지는 매일같이 4시간씩 볼을 400개 가까이 쳤어요. 7년 전에는 골프를 치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비용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서 연습할 정도로 푹 빠졌죠. 제가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주변에서 골프 방송을 추천해주시더라고요. 방송을 통해서 멘탈이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하연화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1위를 할 정도로 남다른 실력을 뽐내고 있다. 골프 프로로 전향할 생각은 없을까. "골프가방 메줄 테니 프로 따자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제가 프로를 땄으면 여태껏 나갔던 아마추어 골프 방송을 못 나갔을 거예요. 자격증이 없어서 나갈 수 있었던 방송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살려고 합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1등 하는 지금이 더 좋더라고요."


'기린 골프단'의 창립 멤버이자 회장님을 맡고 있는 하연화. '기린 골프'는 여자 175cm 이상, 남자는 178cm 이상의 모델 출신들만 가입할 수 있다. 우연히 골프장에서 모델 골프단이 와서 라운딩을 즐기고 가면 비용을 절감해준다는 제안에 무작정 아는 모델들을 모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아는 분의 지인분께서 비주얼 되시는 분들이 와서 치고 가면 홍보 효과도 있다며 할인을 해주겠다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제가 골프웨어 쇼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용품도 반값이나 할인이 돼요. 거기에 골프장 할인까지 해준다고 하니 신이 나서 주위에 모델 친구들 8명에게 같이 치자고 꼬셨죠. 그렇게 기린 골프단이 생겼어요. 그런데 골프모임 기준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아서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은 여자는 170cm, 남자는 175cm 이상으로 낮췄답니다."


이쯤 돼서 몸매 관리 비법이 궁금했다. "골프가 몸을 강화하는 운동은 아닌 것 같아요. 허리나 손목 다리가 아플 때도 있어요. 그런데 라운딩을 나갈 때 카트를 타지 않고 계속 걸으면 유산소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몸에 근육이 잘 붙는 타입이라서 헬스장에서 스트레칭을 주로 하거든요. 그래서 골프장에서 걷는다고 생각하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골프를 얻고 몸무게도 얻었다는 하연화. 그렇다고 골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는 그였다. "6년 전까지만해도 오후 7~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체중이 5kg 정도 늘었어요. 왜냐하면 골프를 치면 맛있는 걸 많이 먹거든요. 체력이 없으면 골프를 못 치니까 먹어야 해요. 그래서 살이 찌고 피팅할 때 옷이 좀 타이트하다 싶으면 청계산을 자주 가요. 헬스장이라는 갇혀있는 공간에서 답답하게 운동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종일 햇빛에 노출되는 운동인데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골프를 얻고 피부를 잃었답니다. 제 주변에 모든 에이전시나 피팅하러 갈 때면 '취미 좀 적당히 즐기세요. 연화씨'라는 말을 들어요. 지금도 보면 살이 좀 많이 탔어요. 몸으로 하는 직업인데 몸에 자국이 있거나 상처가 있으면 브랜드에 콘택트가 안되거든요. 대신 셀프로 수분관리를 엄청나게 잘해줘야 해요. 라운딩 끝난 뒤에는 알로에 겔 바르고. 푸른 빛이 나오는 LED로 홈케어 꼭 해주고요. 그리고 1일 2팩 해주거든요. 아침에 10분 정도 해주고, 자기 전에 15분 해줘요. 골프 치시는 분들 마스크팩 꼭 추천합니다."


골프장에서 스타일리쉬하게 입는 팁을 알려달라고 하자 "두 가지 색상 이상은 안 겹치게, 그리고 밝게 입어요. 블랜 & 화이트, 레드 & 화이트, 블루 & 그레이 등 색 두 가지를 매칭해서 입어요. 여기에 모자나 운동화 등 적절하게 믹스매치해서 입어요. 바지보다는 스커트에 벨트를 해주고 상의는 꼭 넣어서 입습니다. '난 여기까지 다리야'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요."


이상형 질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하연화. 골프를 시작하게 되면서 '골프 잘 치는 사람' 항목도 추가됐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제 이상형을 못 만났답니다. 골프까지 잘 치는 게 추가되다 보니 더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저 정도 키에 못해도 178cm는 됐으면 좋겠어요. 남자가 골프를 치려면 능력도 있어야 하잖아요. 마른 사람도 싫어하고. 이러다 보니 끝이 없더라고요." (웃음)


마지막으로 하연화에게 있어서 모델과 골프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모델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같은, 천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골프는 제 인생 2막 혹은 전환기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서 활력을 불어넣어 준 고마운 운동이죠. 30대부터 쇼가 많이 없어졌어요. 결혼도 안 했으니까 이 와중에 골프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글·사진 ㅣ 석혜란기자 shr1989@sportsseoul.com, 하연화 인스타그램, AWGF, 빈폴 골프 제공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