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양민희기자] '3분 42초 56, 57, 58…' 태극 마크를 달고 마지막 주자로 물을 갈랐던 수영선수 정유인(26)의 어깨는 누구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물속에서 다투는 0.01초의 급박한 순간들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응원했던 목소리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한 그날은 '2019 광주 세계 수영 선수권대회' 여자 계영 400m 부문 한국 신기록이 탄생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현재 경북도청 소속으로 수영 경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 선수지만 물 밖에서 만난 정유인은 여느 20대와 다를 것 없는 생기발랄한 소녀의 모습이었는데요.


최근 팬들에게 문근영 닮은꼴 미녀 선수, 헐크 어깨, 여자 마동석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SNS 스타로도 급부상한 그는 아직까지도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넓은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훈련이 없는 쉬는 날에도 어김없이 바다를 찾아가 물과 논다는 정유인. 이제는 땅보다 물속에 있을 때가 더 자유롭다고 말하며 호탕한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과연 뼛속까지 수영 선수였습니다.



Q) 얼마 전 큰 대회를 치렀는데 다시 돌아온 일상은 어떤가요?


일주일 휴가를 보낸 뒤 복귀해서 바로 강화 훈련에 들어갔어요. 쉬는 날이 생기면 바다도 가고 서핑도 하면서 마음껏 놀아요. 즐기다 보면 보상심리가 생기기 때문에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거든요. 휴식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운동선수들이 많은데 전 쉴 때는 쉬고 놀 때는 노는 주의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Q) 평소 운동 스케줄이 빡빡하다 들었어요.


일주일에 하루 빼고 2시간~2시간 반 정도는 매일 매일 연습에 올인해요. 온전히 제 수영에 집중할 수 있는 '드릴' 훈련을 가장 좋아하는데 킥을 나눠서 하거나 손을 하나하나 끊어서 하는 연습이죠. 처음에는 워밍업을 600~800m를 하다가 총 2,000~3,000m 거리를 채운 뒤에는 3~4시간 정도 낮잠을 자면서 피로를 풀어요.



Q) 웨이트도 병행하면서 하면 도움이 많이 되나요?


웨이트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수영을 할 땐 몸에 지방과 근육이 적절하게 있는 게 유리한데요. 물에서 제 몸을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체중이 많이 나가게 되면 기록도 당연히 안 나오고 어깨 부상 위험이 생겨요. 근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담이 많은 종목이 수영이라 웨이트를 할 때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무게를 적게 해서 속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주로 하는 편이죠.


Q) 어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지.


5세부터 유아 스포츠단을 다녔는데 당시에는 수영을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오빠가 수영에 재능이 있어서 선수반에 들어가게 됐고, 이후에 저도 자연스럽게 물을 접했죠.


Q) 그때 오빠 따라 수영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운동 쪽으로 진로를 정했을 것 같아요. 웨이크 보드를 잘 타는데 습득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편이라 선수 권유도 받았거든요. 근육도 잘 붙고 몸도 커서 보디빌딩 선수를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지 않나요?


Q) 머슬 대회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요. 수영은 유산소 운동이고 머슬 대회를 나가기 위해서는 무산소 운동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하니까요. 또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서는 식단을 조절하고 체중을 빼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물속에서는 어느 정도 지방이 있어야 물에 뜨기 쉽기 때문에 두 종목을 함께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요.


Q) '2019 광주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웠어요. 당시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나요.


목이 터져라 응원해주는 국민들 앞에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한국에서 열린 경기다 보니 환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가슴이 뭉클했거든요. 힘이 빠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바리로 들어왔어요. 나중에 한국 신기록은 물론 개인 기록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Q) 마지막 주자로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승부욕이 엄청나서 잡히는 걸 진짜 싫어해요. 반대로 잡는 건 좋아해서 따라잡을 만한 사람이 보이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요(웃음). 마지막 주자로 나선다는 것이 부담감과 긴장감도 큰데 언제나 즐기는 마음으로 레이스에 임하고 있습니다.


Q) 그럼에도 본선 탈락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한국 신기록과 더불어 올림픽 출전권까지 땄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많이 남아요. 물론 최선을 다한 경기였지만 한 번 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요즘 SNS 반응이 뜨거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


"저 몸매는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없는 피지컬이다", "분명히 약했다" 이런 댓글이 많아요. 댓글을 보고 하나하나 대응하지 않지만 해명하고 싶은 부분들은 있죠. 선수들은 도핑 문제가 있다 보니 감기약 하나도 찾아보면서 먹거든요. 그런 댓글들을 보면 이제는 웃어 넘겨요.


Q) 문근영 닮은꼴 미모에 헐크 어깨라는 별명이 있어요.


스스로는 연예인 닮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렇게 불러주시니 쑥스러워요. 배우 문근영을 닮진 않은 거 같고 헐크 어깨가 지금의 제 모습과 더 가까운 거 같아요. 차라리 '여자 마동석'이라고 불러주는 게 더 좋아요.


Q)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는 노력의 결과인지, 타고난 건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을 하다 보니 어깨가 벌어지는 건 자연스러웠어요. 골격이 자랄 시기에 운동을 많이 해주니깐 발달이 됐죠.


Q) 수영을 할 때 상체와 하체의 사용 비율은 어떤가요.


자유형 같은 경우 교과서에 나와 있는 수치는 상체가 70%, 하체가 30%인데요. 무릎 수술을 하기도 했고 상체가 워낙 좋은 반면 하체가 약한 편이라 현재는 거의 상체만 90%, 하체 10%의 비중을 두고 수영하고 있어요. 상체는 1등인데 하체가 꼴등인 셈이죠. 단점을 보완하기보단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요.


Q) 선수가 아닌 '여자'로서 넓은 어깨가 싫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여자 기성복 프리 사이즈가 안 맞아요. 평소에 뜨개질 하는 게 취미인 만큼 생각보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편인데 원피스를 입으면 안 어울리고 어깨가 껴서 옷이 안 들어가요. 그런 부분은 조금 아쉬워요.


Q) 한국에서 수영 선수로 살아가면서 아쉬웠던 점.


현재 큰 기업에서 스폰서나 후원을 받고 있는 수영 선수가 5명도 안 되는 열악한 상황이라 실업팀에서 연봉 받고 운동하는 저로서는 지원이 부족하다 느껴요. 선수 생명이 길지 않기도 하고 실력 만큼 연봉을 받게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전성기와 멀어지는 몸 상태다 보니 물가는 오르는 반면 받는 돈은 적어지게 되는 거죠. 해외 훈련만 나가도 공부할 게 너무나 많은데 지원이 없으니 갈 엄두가 안 나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해주세요.


올림픽은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꿈꾸는 꿈의 무대죠. 우리나라에서 1등을 해도 출전권을 따는 게 쉽지 않거든요. 내년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많이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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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유인 선수 제공, 양민희 기자 ymh184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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