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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내 음악 인생 25년을 되돌아보면,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쳐온 거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1994년 그룹 ‘닥터레게’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바비킴. 25년을 돌아보며 그가 처음 떠올린 단어는 ‘파도’였다.

그의 말대로 그의 음악 여정은 굴곡과 롤러코스터 자체였다. 레게 그룹의 래퍼로 데뷔해 TV 영어 보조 선생님으로 어린이들에게 눈도장을 찍던 시절을 거쳐 아이돌 그룹의 랩 세션으로 무대 뒤에서 움직이던 시기도 있었다. ‘래퍼 1세대’인 그는 국내 힙합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2004년 가수로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알린다. 전성기가 이어지는가 싶었지만 2014년 ‘기내난동사건’으로 끝모를 추락도 맛봤다.

‘소울대부’, ‘랩할아버지’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다양한 흑인 음악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바비킴을 만나 가수 생활 25주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99년 ‘브로스’ 활동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2000년 무렵부터 작곡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작곡가가 되어야 음악계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 때마다 악기를 사고, 녹음을 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아는 가수, 제작자를 찾아다녔다. 그 당시 작곡가 바비킴을 거의 처음 알아봐준 이가 윤미래였다. 2001년 윤미래 첫 솔로 앨범 수록곡 ‘아이 미스 유 소(I Miss You So)’가 내가 만든 노래다. 그보다 몇달 전 드렁큰타이거 3집에 ‘바비스 곤 겟 야’(Bobby‘s Gon Get Ya)’가 실리기도 했다. 이후 작곡가로는 코요태 4집의 ‘Y’(2002년 3월 발매), 그리고 당시 신인가수의 잘 알려지지 않은 2곡 정도에 참여했다.

-윤미래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하다.

친구인 작곡가 박근태가 윤미래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시간이 흐른 뒤’를 만들었다. 박근태를 통해, 앨범 작업 중이던 윤미래에게 내 곡을 들려줬는데 며칠 뒤 노래를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원래 윤미래의 광팬이었다. 윤미래가 내 곡 데모 버전의 내 가이드 보컬을 듣더니 ‘오빠가 직접 노래를 부르며 앨범을 내면 어떠냐’고 해주더라. 당시 나는 지쳐있었고, 가수로 무대에 설 생각이 없던 때였는데 윤미래가 ‘언젠가 오빠의 음악이 알려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격려해줬다. 윤미래 덕분에 내 음악을 찾게 됐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 당시 윤미래 소속사에서 앨범 홍보를 하던 이사가 현재 내 소속사(스타크루이엔티) 전홍준 대표다. 윤미래 덕분에 전홍준 대표와도 친해지게 됐다.

-바비킴 음악인생에서 윤미래는 의미가 있는 인물인 거 같다.

내 25년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나를 빛나게 해줬고, 내 음악 세계를 찾게 해준 아티스트다. 윤미래는 하늘에서 내려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랩도, 노래도 뛰어나다. 고맙게도 함께 음악할 기회를 내게 줬고, 호흡을 맞추는 게 즐거웠다.

윤미래 앨범에선 ‘비코우즈 아이 러브 유’, 그리고 내가 작곡한 듀엣곡 ‘끝없는 바다 저편에’에서 듀엣을 했다. 윤미래와 호흡을 맞춘 건 2004년 내 앨범(‘잇츠 올라잇, 잇츠 올굿’, ‘나 같은 남자’)에서가 마지막이었다. 언젠가 러브콜해준다면 꼭 다시 음악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크루인 ‘무브먼트크루’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윤미래와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무브먼트크루를 만든 타이거JK와도 친해졌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 ‘죽이는 애들’이 있다고 해서 현 다이나믹 듀오 멤버들도 알게 되고, 에픽하이도 알게 되고, 리쌍도 알게 됐다. 나는 2000년 결성한 3인조 힙합그룹 ‘부가킹즈’ 멤버로 활동했다.

무브먼트크루는 멤버 각자 회사가 달랐지만 모두 같은 음악을 좋아했고, 서로 정말 친했다. 난 아니지만 다른 멤버들 실력이 너무 대단했다. 우리가 세긴 셌다.(웃음)

-바비킴이 생각하는 무브먼트크루 수장 타이거JK는.

사실상 무명 래퍼였던 나를 드렁큰 타이거 3집 랩 피처링으로 기용해줘서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타이거JK는 지금도 리스펙트한다. 그는 한국 힙합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금 힙합이 한국에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은 타이거JK, 드렁큰타이거 덕분이다. 음악 뿐 아니라 문화 자체를 소개한 인물이고, 힙합을 오버그라운드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힙합 장르를 한국에 널리 알린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이거JK는 완벽한 글쟁이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 한국인으로 자부심이 있다. 교포지만 한자도 굉장히 많이 알고 어휘력이 뛰어나다. 랩 가사도 좋지만 글 자체를 참 잘쓴다.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브먼트크루 멤버 모두 육아를 하는 등 바쁘고 각자 생활이 있지만 언젠가 마음이 맞는다면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2000년대 초반 드렁큰타이거, 다이나믹듀오, 리쌍 앨범 등에 피처링하며 힙합 팬들 사이에 꾸준히 입소문이 났다. 당시 바비킴의 별명이 ‘랩할아버지’였다.

원래 ‘랩아저씨’였는데 다듀 개코가 ‘형이 제일 오래됐잖아요’ 하면서 ‘랩할아버지’란 별명을 붙여줬다. ‘소울 대부’란 별명은 너무 싫은데 ‘랩할아버지’는 좋다. 제발 ‘대부’라고는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웃음) ‘랩할아버지’란 별명엔 자부심이 있다. 그래도 래퍼로 데뷔했으니까.

-바비킴이 참여한 힙합 ‘부가킹즈’는 솔로 가수 바비킴보다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2000년 결성했는데 멤버 중 주비트레인은 신촌의 힙합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건달처럼 생겼는데 스웩이 남달랐다.(웃음) 6개월 뒤 간디를 만나 3인조로 팀을 꾸렸다.

우리 음악은 특이했다. 소위 ‘먹통 힙합’이 대세일 때 우린 유행을 따르지 않고 특이하게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실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힙합 마니아들에게 어필이 안됐다. 하지만 우리만의 음악을 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분명 다른 힙합 팀들과는 다른 음악을 했다.

-바비킴의 랩을 들은지 오래된 거 같다. 지금은 랩을 안하나.

부가킹즈의 마지막 미니 앨범(2012년 발매) 이후 랩을 멀리했다. 래퍼 출신이라고 해서 랩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 요즘은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래퍼는 꾸준히 해야 랩이 나온다.

나는 노래로 사랑을 받고, 가수로 어필이 되면서 ‘대중은 싱어인 나를 더 좋아하는 구나’ 느낀 뒤 차츰 랩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2004년 ‘고래의 꿈’을 발표할 무렵까지는 내가 래퍼라고 생각했었다. 이후 부가킹즈 활동도 이어갔지만 대중에게 나는 가수로 받아들여지더라.

-래퍼로 데뷔했고, 노래와 랩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바비킴 만의 독보적인 바이브가 있다.

안한지 너무 오래됐다. 내가 랩세계를 떠난 뒤 세상이 달라졌다. 언젠가 내가 다시 랩에 푹 빠질 수도 있겠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랩만 들어간 노래보다 조금씩 들어간 노래는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지만 점점 랩에서 멀어지는 것 같긴하다.

데뷔 때부터 랩을 했고, 내 음악, 나와 함께 해온 음악이 자랑스럽긴 한데 시대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자신이 없다. 난 래퍼라기 보단 이제 그냥 음악인이다.

-래퍼 바비킴 만의 세련된 싱잉랩 등은 분명 재조명받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팬도 있다. 자신의 래퍼 커리어가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여기진 않는지.

그렇지 않다. 워낙 데뷔 때부터 나에 대한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그런데 익숙하다. 닥터레게 때도 그랬고, 솔로 가수로서도 그랬다. ‘고래의 꿈’도 아주 서서히 올라갔다.

- ‘쇼미더머니’ 등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1세대 동료 래퍼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리고 요즘 힙합씬에 대한 생각은.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래퍼 중 나 보다 잘했던 사람도 많다. 그들이 시대에 뒤쳐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빠르게 변해가니까. 그러나 다르게 보면 요즘 활동하는 래퍼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잘하는 친구가 정말 많다.

-‘쇼미더머니’에 프로듀서, 깜짝 게스트 등으로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은 없나.

난 힙합계에서 그 정도 활동을 많이 한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인정 받는 래퍼도 아니었다. 예전에 ‘쇼미더머니’에서 나레이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녹음실에 가긴 했는데 녹음이 너무 어려웠다. 실제 방송에 나오진 못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스타크루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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