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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관은 갈등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 유용한 삶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핏발 선 눈초리로 서로를 적대시하고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이분법적 논리로 섣부르게 재단하는 작금의 세태에선 화이부동에 담긴 철학의 정수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똑같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의 세계관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체육개혁이 균형감각을 상실한 채 한 쪽으로 치우치는 쏠림현상이 심해져서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고 시민사회의 눈높이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체육 현실은 과감하게 뜯어고치는 게 맞다. 체육의 패러다임 전환에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개혁의 이름으로 내놓는 정책이 개혁의 본질을 떠나 체육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 개혁의 컨트롤타워인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권고안 가운데 박수를 칠 만큼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지만 소년체전 폐지와 주중대회 금지 등은 자칫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혁신위를 지배하는 대전제는 역시 ‘공부하는 운동선수’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신념이 현실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더 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당위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무너진 공교육 시스템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한국의 중·고교생 가운데 교실에서 실제로 학습하는 학생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공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들을 교실에 집어 넣는다고 학습이 가능할까. 머릿속 생각과 살아 움직이는 세계는 이렇게 하늘과 땅 차다. 전시행정의 표본에 불과할 것을 마치 현실에서 실현되는 정책효과로 오판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혁신위가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건 배경도 궁금하다. 아마도 한국 체육의 제반 모순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로 판단했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그건 논리적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공부 안한 사람이 적폐라는 논리는 반인권적 폭력의 극치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교육 또한 다양성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공부를 지식의 체득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그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공부는 물론 다양한 재능을 겸비해 팔방미인이 될 자질을 갖췄다면 그건 하늘이 내린 축복이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극대화하는 게 어쩌면 교육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혁신위가 내놓은 권고안은 일반학생들의 체육 참여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체육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 자신의 소질을 적극 계발하고 이를 심화하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한 학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에게 혁신위의 권고안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또다른 폭력일 수도 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고 신념이 의도한 방향으로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강제하고 구속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초·중학교까지는 또래집단과 함께 공부하며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그것도 주중대회 출전 금지라는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방식보다 스포츠의 종목별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정책을 펼치는 게 더욱 합리적이다.

정책의 접근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정책에서 소비자 중심의 정책으로 바뀌는 게 시대적 트렌드라면 학교체육 정책도 좀 더 정교하고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혁신위가 제시한 권고안은 일반 학생의 스포츠활동 참여라는 측면에선 별 무리가 없는 정책이다. 다만 전문 체육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한 선수들에겐 일반 학생과 다른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의 조직과 체육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다. 4선 국회의원인 그는 체육학자 출신답게 체육에 관한 전문성이 남다르다는 평이다. 체육단체 통합 등 굵직한 체육정책들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안 위원장은 최근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개혁에 대한 체육계의 불만을 겨냥한 듯 “저항이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이라고 쏘아붙였다. 과연 그럴까. 제대로 된 개혁은 저항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항을 설득하고 극복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뜻을 펴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겸손한 정치인의 태도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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