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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비엘스코-비아와=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아르헨티나의 개인기도, 일본의 거친 플레이도, 세네갈의 피지컬도 이강인(18·발렌시아)의 천재성 앞에 무너졌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강인은 9일(한국시간)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에 선발 출전해 1골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이 36년 만에 대회 4강에 진출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강인에게 이날 경기는 일종의 테스트였다. 세네갈에는 신장 190㎝, 180㎝ 후반대의 장신 선수들이 포진했다. 173㎝의 단신인 이강인이 피지컬 좋은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경기이기도 했다. 키가 작아 어려운 경기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강인은 전반에는 수비적인 임무를 담당해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후반 킥오프와 동시에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프리롤 역할을 담당하며 펄펄 날기 시작했다. 이강인은 최전방과 2선, 중앙, 측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격을 이끌었다. 수비 부담을 덜자 이강인은 특유의 현란한 상체 페인팅으로 세네갈 수비수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전매특허인 마르세유턴으로 상대 선수 2~3명을 따돌리기도 했다. 신체조건 차이가 컸지만 쉽게 공을 빼앗기지 않는 플레이도 여전했다.

이번 경기에서는 한국이 넣은 세 골에 모두 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강인은 후반 17분 주심이 VAR 판독 끝에 페널티킥을 선언하자 과감하게 공을 들고 박스 안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골대 구석으로 정확하게 밀어넣어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이지솔의 머리에 정확하게 얹히는 코너킥으로 동점골을 도왔다. 이강인의 천재성이 가장 화려하게 빛난 장면은 연장전반 6분에 나왔다. 역습 상황에서 조영욱이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자 이강인은 정확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수비수들을 피해 가는 공간 패스를 연결했다. 조영욱이 달려나가는 속도와 방향을 정확하게 계산한 군더더기 없는 패스였다. 조영욱은 편안하게 오른발 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강인의 최대 장점인 창조성이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었던 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강인은 연장전반 추가시간 다리 쪽에 통증을 호소하며 벤치로 향했다. 피치를 빠져나가는 이강인을 향해 경기장에 모인 1만 관중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대다수가 폴란드인이었지만 국적과 관계 없이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준 어린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적장인 세네갈의 유수프 다보 감독도 “테크닉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정말 수준이 높은 선수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이강인 같은 경우 정말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며 이강인의 이름을 따로 언급하며 칭찬했다. 공동취재구역에서도 외신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다. 다른 모든 경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강인은 가장 늦게 현장을 빼져나갈 수 있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를 통해 차범근에서 박지성,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스타 계보의 새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세 사람도 위대한 선수지만 이강인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선수라 더 특별하다. 차범근은 돌파와 마무리에 특화된 선수였고, 박지성은 대표적인 팀플레이어였다. 손흥민도 직접 해결하는 스타일의 공격수다. 이강인은 이들과 달리 공을 직접 소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의 미드필더다. 첫 번째 터치가 부드러워 공을 쉽게 소유한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압박에서 벗어나는 능력도 좋다.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 제공하는 창조적인 패스도 일품이다. 킥력이 워낙 좋아 마음 먹은 대로 패스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무게중심이 낮고 밸런스가 좋아 더 크고 빠른 선수들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이강인은 만 6세였던 2007년 TV프로그램인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해 천부적인 재능을 뽐냈다. 만 18세가 된 지금은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U-20 월드컵 4강 신화는 이강인이라는 천재의 도약을 알리는 서막이다.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플레이만 놓고 보면 이강인이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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