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스포츠서울 남혜연기자]“(공항에서 환영은)올림픽도 아닌데 민망하고 감사했어요. 의연하게 대처하는 척(?)했지만, 깜짝 놀랐어요.”

봉준호 감독은 여전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감독이라는 것에 무게감은 느낀다며 해맑게 웃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에 영화계 역시 한 마음으로 축하를 했던 것은 아마 평소 그의 태도도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봉준호 감독은 현장에서 단역 그리고 막내 스태프의 이름도 대부분 기억하며 배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칸 영화제 수상에 앞서서도 어떤 누구와도 친밀하게 대화를 했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으며 그 어떤 것에도 편견을 두지 않았다. 오롯이 영화 하나 만을 바라본 가운데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우선시 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의 영화는 늘 사람이 중심이다. 특히 이번 ‘기생충’의 경우 빈부의 격차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낸 까닭에 어느 누군가는 불편하다고도 하겠지만, 봉준호의 세계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과 함께 차마 겉으로는 표현해내지 못하는 본성까지 다 공개가 된 터라 스릴이 넘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 중 하나는 유복한 가정환경의 봉준호 감독이 어떻게 가난한, ‘상류사회보다 하류사회를 깊이 있게 다뤘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는 한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자 ‘소설과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의 작품을 집필한 박태원 씨며, 아버지는 지난 2017년 작고한 봉상균 씨로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미대(시각디자인) 교수와 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등을 지낸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봉준호 감독은 먼저 “체험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결국 표현해내야 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이자 짐”이라고 말문을 연뒤 “살인을 해보지 않고 ‘살인의 추억’을 찍었지 않나.(웃음) 사실 난 교수집 아들이었다. 유복했고, 우리집은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 분)과 박사장(이선균 분)의 중간의 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척 중에 가난하고, 부자도 있다. 제가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에 여러 가지 영역들이 있다. 그렇다고 자료조사 만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기억과 경험들도 있다”면서 “예를 들어 ‘기생충’ 속 최우식 군이 과외를 하지 않나. 나 역시 90년대에 중학생 남자아이의 과외를 했는데, 아주 부잣집이었다. 복층 빌라였고, 2층에 사우나가 있었다.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대리석 바닥과 부잣집 특유의 조용한, 소음 없는 동네였던 경험이 영화 속에 녹아들었다”고 덧붙였다.

[포토]황금종려상 내보이는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칸영화제 수상 직후 공항에서 나란히 트로피를 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왼쪽)과 송강호.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크린 속 만큼이나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는 너무나 유쾌하고 디테일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실생활에서도 통하는 것일까. 이러한 사소한 재미 때문에 그와 함께 작업을 하는 배우들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한다. 또 이러한 면면들이 그대로 영화를 함께 투영시키는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은 그동안 많은 배우들과 작업을 해왔다. 첫 연출작을 함께 한 김뢰하부터 김혜자, 변희봉, 송강호, 배두나, 고아성 등 한국 배우는 물론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등 할리우드 배우까지 폭이 넓다. 그 중 그가 가장 많은 의지를 하는 배우는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함께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배우 송강호였다. 과연 봉준호 감독에게 송강호는 어떤 의미일까.

“알약이죠! 신경정신과 의사 분이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감독은 촉을 세워야 하는 직업이라 (약을 먹으면)흐트러지기 쉽거든요. 그걸 아마 ‘봉테일’로 승화시키는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이 ‘내 데이터로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데…’라고 신기해 하셨죠. 송강호 배우를 보면 마음이 안정돼요. ‘저 형님이라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아’라는 안정감을 주죠.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2000년)의 처참한 실패 이후 논두렁을 지나는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포맷이 된 것 같아요. 희망의 정신적 도움을 많이 주셨죠.”

‘기생충’은 하루 100만 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흥행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그리고 송강호, 이선균, 이정은,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등 배우들이 각자의 몫을 충실히 해냈고, 특유의 사회풍자적인 면면으로 N차 관람까지 늘고있는 상황.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처음 제목은 ‘데칼코마니’였단다.

봉준호 감독은 “‘데칼코마니’였던 이유는 두 개의 가족이 대치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이었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난한 가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렀다. 부자의 관점에서 보니 드라마의 결이 달라졌다. 그래서 가난한 가족 중심으로 시점을 끌고 나간다는 확신을 가지며 ‘기생충’으로 제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렇다고 ‘기생충’이 꼭 가난한 쪽의 관점은 아니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부잣집이 기생충일 수도 있다. 기생인은 모멸감이 느껴진다. 공생이나 상생이 되려면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예의가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쉽지많은 않은 현실”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봉준호 송강호
황금종려상 수상직후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의 이야기죠. 서로에 대한 예의를 쉽게 갖추고 있지 않은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현실의 미묘함이 다 들어가 있죠. 영화의 90%가 집에서 이뤄지잖아요. 이 말은 즉, 굉장히 사적인 내용들이 다 들어간다는 점이기도 하죠. 관객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이 가족들의 사생활을 듣고, 보잖아요. 다른 계층의 사생활을 아주 가까이서 목도하는게 이 스토리의 위험성인 것 같아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각기 다른 두 가족의 굉장히 사적인 영역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때론 직설적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댓글이나 기사를 많이 보지 않지만, 지인들의 안부 문자속 ‘기생충’을 보고 느낀 사적인 영역이 봉준호 감독의 마음 속에도 박히고 있다.

“유난히 이번에는 문자들이 길어요. 젊은 세대 및 중년 세대 할 것 없이 울었다는 얘기들이 많았어요. ‘여운이 오래가’, ‘난 뇌에 기스가 갔어’라는 식의 정서적으로 자상을 입은 듯한 느낌이요. ‘너무 센 편이었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칸은 이미 과거가 됐어요. 이제 또 다시 저의 집착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남혜연기자 whice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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