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위치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빙상여제 이상화, 눈물의 은퇴식
    • 입력2019-05-16 14:23
    • 수정2019-05-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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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은퇴식장서 눈물 흘리는 \'빙속여제\' 이상화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과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최근 연예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상화는 향후 스포츠인 출신 엔터테이너로 새출발을 한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최고의 위치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스케이트를 벗었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공식 대회에 나서지 않았던 사실상 선수 활동을 중단하며 은퇴 수순을 밟았다. 최근까지 무릎 재활 훈련을 해왔지만 빙판에 설 수준으로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자 결심을 굳혔다.

휘경여중 재학 시절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상화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우승후보 예니 볼프(독일)을 제치고 깜짝 금메달을 땄고, 2014년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올림픽 2연패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건 뒤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와 포옹하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은퇴식에서 이상화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 스스로 실망했다. 국민들이 지금의 위치를 기억해줄 수 있는 상황에서 은퇴하고 싶었다”며 “국민들의 사랑은 평생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기며 살겠다”고 눈물을 쏟았다. 다음은 이상화와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됐다. 하고싶은 말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15살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되든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토리노올림픽 때 첫 참가해서 정신없었다.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만 말자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다. 선수로서도 여자로서도 많은 나이가 됐다. 17년전 나만의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 세 가지다. 할 수 잇고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분에 넘치는 국민의 응원 덕분에 목표를 다 이뤘다.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입은 사랑에 힘입어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음 도전을 이어갔다. 의지와 다르게 무릎이 항상 문제였다.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이런 몸상태로는 더는 최고의 기량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선수생활 할 수 없는 상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재활과 약물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지만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스케이트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했다. 국민들이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스케이터로서의 생활은 오늘 마감하지만 보답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계속 노력하겠다. 당장 내일 어떻게 뭘 해야할지 걱정이 된다.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다른 일도 열심히 하겠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했다. 평생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기며 살겠다.

-최종 결심은 언제 섰나.
3월 말쯤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막상 하려고 하니 온몸에 와닿더라.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안다. 이전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지금 위치에서 마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은퇴 후 계획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까지 스케이트만을 위해서 살았다. 나를 내려놓고 싶다. 누구와 경쟁하고 싶지 않다.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 아직은 향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어떻게 제2의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했다. 연예 소속사지만 스포츠 스타들이 많다. 거기에 어울려서 친분 쌓고 싶었다. 제의가 들어온다면 차차 찾아볼 계획이다. 스케이트 하다가 다른 종목으로 옮겨가는 선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떠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고려는 안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무릎 수술을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국가대표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소치올림픽이 기억이 남는다. 선수들 사이 세계신기록을 세운 후 금메달을 못 딸거라는 징크스가 있다. 나도 두려웠지만, 이겨내고 2연패했다. 깔끔하고 완벽한 레이스를 했다.

-올림픽 각 메달의 의미는.
밴쿠버올림픽은 첫 메달이었다. 3위 안에만 들자는 목표로 올림픽을 출전했는데 예상 외로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올림픽은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한 자체가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 평창올림픽에서는 2연패라는 부담을 안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3연패 압박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부상이 더 커져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여서 더 긴장됐다. 그러나 은메달도 굉장히 예쁘더라. 다 소중한 메달이다.
[포토] 은퇴하는 이상화 \'공로패 들고 활짝\'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과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상화가 빙상연맹에서 수여한 공로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고다이라 나오는 뭐라고 했나.
은퇴 기사가 나가고 알게됐다. 정말 깜짝 놀라며 ‘농담 아니냐,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상황을 보자고 일단락을 시켰는데,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알리게 됐다. 나오와는 인연이 많다. 한일친선 경기하면서 알게 되서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됐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 욕심내지 않고, 하던대로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했다. 언제든 오라고 하더라.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다.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
계속 운동하는 걸 원하셨던 것 같다. 은퇴 날짜 잡힌 후에도 속상해하실까봐 말씀 안드렸다. 저만큼 많이 섭섭해하신다. ‘잘하고 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나오더라. 겨울이 되면 딸 경기하는 걸 못보게 되지 않나. 차차 제가 달래드려야 한다.

-지도자 생활할 생각 있나.
은퇴를 고민했던 게 올해부터였다. 진작 목표를 차근히 세워갈 차례. 비인기종목으로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 후배들을 위해서 언젠간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현재 상황을 정리해야겠지만, 의향 충분히 있다.

-은퇴를 하자니 가장 아쉬운 점은?
겨울에 성적 내려면 여름에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소치 끝나고 캐나다에서 훈련 열심히 했다. 훈련할 때 재밌었던 기억이 나서 아쉽다.

-밴쿠버 3총사와는 연락하나.
(모)태범이는 링크장 떠나서 아예 다른 종목을 한다. 가끔 연락한다. ‘그래도 같이 운동할 때가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저는 은퇴를 하지만 친구들은 현역이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 다하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팬들이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나.
평창올림픽 끝나고 ‘살아있는 전설’로 남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변함 없다. 단거리에 이런 선수가 없었고, 그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항상 노력하고 안되는 걸 되게 하는 선수였다면 좋겠다.

-2022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엔 뭘하고 있을 것 같나.
선수였다면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항상 1등만 하던 이미지였나보다. 2등하면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서 평창에서도 많이 힘들었다. 베이징에서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마찬가지일 것 같다. 준비과정도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은퇴를 했지만 당연히 가볼 수 있다. 해설위원으로 갈 수도 있고, 코치가 돼서 갈 수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5~2016시즌 같은 상황이 있었다. 중국 선수(장홍)가 500m 강자로 떠올랐다. ‘한중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번갈아가면서 1~2등을 다퉜다. 세계선수권에서 1등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마지막엔 결국 우승을 했다. 그 때와 평창의 ‘한일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마운 사람이 많을텐데.
초등학생 때부터 국가대표 될 때까지 도와주신 코치 선생님들은 물론, 국가대표 이후에도 지켜봐준 분들이 많다. 소치때부터 평창때까지 같이 해준 케빈이 기억에 남는다. 캐나다에 겸사겸사 찾아가고 싶다. 그밖에도 많은 선생님께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직접 드릴 예정이다.
[포토] 이상화 \'평창올림픽 전이 제일 힘들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과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상화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세계신기록 언제까지 갔으면 좋겠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깨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록은 언젠간 깨지라고 있는 거다. 선수들 기량도 많이 올라왔더라. 1년 정도는 유지가 됐으면 좋겠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힘들었다. 주변 일 신경 안쓰고 매진을 어떻게 하나. 부담이 많이 왔다. 꼭 1등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식단 조절도 계속됐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훈련을 4턴을 했다. 남들 하나할 때 난 두 개를 해야했다. 결국 그런 게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걸 자제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평창 전이 가장 힘들었다. 독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평창으로 넘어갔는데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 메달 아예 못따면 어떡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잠을 편히 자본 적도 없다. 1등을 꼭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특히 주목하는 후배가 있나.
김민선 선수를 추천하고 싶다. 민선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강한 선수다. 제 어렸을 때와 흡사한 점을 봤다. 평창올림픽 때도 같이 방 쓰면서 어린 아이가 내게 ‘떨지 말라’고 해주더라. 참 대견했다. 좋은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 500m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최강자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은퇴 소식이 전해진 후 한국 선수들에게도 연락을 받았나.
한국 선수 보다 외국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국 선수들은 은퇴 관련이다보니 축하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난감했던 것 같다. 나오와 스벤 크라머가 처음 보냈다. 오늘 공식 발표를 했으니 많은 연락이 올 것 같다.

-내일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잠을 편하게 자고 싶었다. 평창 끝나고 ‘알람을 끄고 편히 자겠다’고 했는데 그걸 며칠 못했다. 은퇴식을 한다고 하니 착찹해서 잠을 못잤다. 이젠 은퇴 발표를 하고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다.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덕목 뭐라고 생각하나.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저는 ‘쟤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하지?’하는 마인드로 임했다. 안되는 걸 되게끔 노력했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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