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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9일 토트넘-아약스전 선수 소개 때 전광판에 소개되고 있다 암스테르담 | 이동현통신원

[암스테르담=스포츠서울 이동현통신원·김현기기자]“3-0을 뒤집은 마지막 팀이 어딘지…”

전반 35분 아약스 미드필더 하킴 지예흐의 왼발 대각선 슛이 골망을 출렁이며 원정팀 토트넘을 3골 차로 앞선 순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이자 영국 축구를 상징하는 셀러브리티 게리 리네커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3-0 점수 차이를 뒤집은 마지막 팀이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는 바로 하루 전 리버풀이 FC바르셀로나를 4-0으로 대파해 일주일 전 0-3 참패를 완전히 뒤집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것을 강조하는 반어법이었다. 곧바로 “토트넘은 아닌 것 같다”, “아약스의 수비가 탄탄하다”와 같은 반론이 이어졌지만 리네커의 예측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다 끝난 줄 알았던 경기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이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창단 후 첫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팬들의 새벽 잠을 확 달아나게 한 짜릿한 역전극이었다. 손흥민은 지난 2009년과 2011년 박지성에 이어 한국인으론 두 번째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게 됐다. 손흥민은 9일(한국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 2차전 아약스와 원정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토트넘의 승리를 도왔다. 지난 1일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빠진 가운데 벌어진 홈 1차전에서 0-1로 패한 토트넘은 적지에서 먼저 두 골을 내주고도 루카스 모우라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2로 역전승했다. 1~2차전 합계 3-3 무승부가 됐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힘입어 웃었다. 같은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과 격돌하는 결승전은 내달 2일 오후 4시 스페인 명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구장인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다.

손흥민은 이날 4-4-2 포메이션에서 모우라와 투톱을 구성해 나섰다. 왼쪽 측면과 최전방을 오가며 활발히 움직였다. 3골을 넣은 모우라, 어시스트 두 개를 기록한 델레 알리, 후반 교체로 들어가 발군의 포스트플레이를 펼친 페르난도 요렌테의 활약에 가려졌으나 2-2 동점포의 출발점이 되는 침투패스를 찔러넣었고 역전골 과정에서 볼을 지켜내는 등 ‘팀 플레이’를 충실히 해냈다. ‘후스코어드닷컴’은 손흥민에게 평점 10점 만점에 모우라(10점) 다음으로 높은 7.9점을 줬다. 토트넘은 전반 5분 아약스가 자랑하는 센터백 마타이스 더 리흐트에게 코너킥 위기에서 헤딩골을 내줘 초반부터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다. 전반 35분엔 지예흐에 추가골을 허용해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린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함께 193㎝의 장신 공격수 요렌테가 투입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요렌테가 더 리흐트와 달레이 블린트 등 홈팀 두 센터백과 공중볼 싸움을 이기면서 공격이 살아났다. 1차전에 없었던 손흥민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아약스 선수들의 시선을 끈 것도 주효했다. 모우라는 이 틈을 비집고 후반 10분과 14분 연속골을 넣어 불씨를 살리더니 후반 추가시간 5분이 거의 다 끝날 때쯤 왼발 슛을 홈팀 골문 오른쪽에 꽂아넣어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제 결승이다. 비록 아약스전 공격포인트는 없었으나 토트넘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16강 1차전에서 선제 결승포를 폭발하며 답답했던 경기를 3-0 완승으로 이끌었던 그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던 맨시티까지 8강에서 때려눕혔다. 홈 1차전 결승포에 이어 원정 2차전에선 멀티골을 퍼부어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대 이변의 중심에 섰다. 영국의 ‘스카이스포츠’는 토트넘이 결승행을 확정한 뒤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리버풀 수비수 버질 판 다이크와 손흥민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를 공개했다. 유럽 베팅업체들은 올해 손흥민의 ‘발롱도르’ 수상 확률을 톱10 안으로 훌쩍 올려놓았다.

박지성 이후 다신 없을 줄 알았던 한국 선수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티켓을 손흥민이 움켜쥐었다. 그가 리버풀전에서 골을 넣는다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이 대회 결승 득점자가 되는 새로운 역사를 쓴다. ‘히스토리 메이커’ 손흥민을 지켜 볼 날이 하루 더 늘었다. 그는 아약스전 뒤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결승에 가는)꿈을 꿔왔다. 너무나 특별하다. 리버풀과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경기를 많이 해봤다”는 말로 두려움 없이 달려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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