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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나라를 다녀왔다. 모든 이들이 붉은 음식을 먹는 곳,대구광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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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은 대구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맞는 말같다. 앞산온천골 식당 육개장.

[대구=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동화 제목처럼 ‘빨간 나라’를 갔다. 붉은 육수가 강물로 흘러내리고 가로수엔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는 그런 곳. 상상만해도 맵싸라한,그 분위기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 몹시도 빨간 나라엔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없는 대신, 용암처럼 끓는 시뻘건 육수와 인주(印朱)처럼 생긴 다진 양념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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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보이는 것보다 더 맵다. 윤옥연 할머니 떡볶이.

모두가 붉은색을 섭취하고 있다. 보통 한국인은 매운 맛에 강하다지만 이곳은 정말 특별하다. 광역시가 아닌 스파이시(市).시장 대신 추장(고추장)이 다스리고,행정구역엔 동(洞)대신 리(칠리)를 쓸 것 같다. ‘이념’보단 ‘양념’에 더욱 민감한 사람들이 맵게 살아가는 곳이다.

“당신은 맹하고 희멀건한 국물을 먹는 극악무도한 중대범죄를 저질렀소, 우리 시의 특별 조례 ‘지랄(止辣法) 방지법’을 위반했으니 영장없이 체포하겠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빨갛지않은 음식(예를 들면 너구리 순한맛이나 튀김우동)을 몰래 끓여먹다 걸리면 시 조례에 의거 당장 처벌대상이 될 듯한,빨간나라 대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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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끼우동은 대구에서 시작해 거의 경북에만 있는 메뉴다. 영생덕.

대구에는 ‘레드 컴플렉스(Red Complex)’가 있는 듯하다. 공산주의(빨갱이)에 대한 과민증이 아니라,음식이 붉지 않으면 안된다는 뭐 그런 ‘집단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레드홀릭이라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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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부산사람이 보면 놀라겠지만 대구 ‘양념오뎅’도 나름대로 맛이 좋다. 교동 할매양념오뎅.

밥 이외엔 거의 모든 것이 빨갛다. 당연히 새빨간 음식의 아이콘 육개장이 생겨난 곳으로 유명하고 무침회 찜갈비 복매운탕 복불고기 따로국밥 등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아마도 대구 사람들은 지장을 찍고나면 무심코 인주를 빨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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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비빔밥. 짬뽕을 데우다 깜빡 졸다가 부리나케 불을 끈 다음 밥에 부어먹는 맛이다. 매콤화끈한 불맛이 난다. 유창식당.

심지어 원래 뽀얀 이미지의 설렁탕에도 다진양념을 그릇 가장자리에 미리 발라서 내주는 곳도 있어 깜짝 놀랐다(교동시장에 가면 어묵도 붉은 국물 속에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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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복불고기 역시 대구가 원조로 꼽힌다. 미성복국.

붉은 색을 상징으로 쓰는 정당의 지지율이 무척 높은 곳이기도 하다. 붉은 음식이 붉은 마음을 만드는 지 붉은 단심(丹心)이 절절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이 가장 먼저 일었고, 3.1만세운동, 4·19혁명의 불길 역시 대구에서 맵도록 일어났다.

벚꽃 핑크와 연두 신록에 진력이 나버린 나머지 새빨간 도시 대구를 찾아나섰다. 춘곤증이 앗아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급히 채비를 차렸다. 입에 흥건히 괸 군침을 뿌리며 KTX ‘과식열차’,아니 고속열차를 탔다. 봄여행주간을 앞두고 매콤한 매력을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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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별미. 무침회. 회도 빨갛게 무쳐 먹는다. 보이는 것은 비슷해도 재료와 양념은 조금씩 다르다.

대구에 도착해서 바로 서구 내당동 반고개 무침회 골목을 갔다. 15여 곳이 성업중이다. 무침회라니…. 회무침이 아니고. 대구 경북엔 이런 식의 이름이 많다. 갈비찜이 아닌 찜갈비, 닭찜 대신 찜닭. 순서가 다르다. 옛부터 유림(儒林)이 많은 영남이라 한자를 쓰기 좋아해서 그럴 것이다. 볶은밥(炸飯), 자장면(炸醬麵)처럼 한자식 조어는 조리법이 재료 앞에 들어간다.

“자, 싱싱한 횟감 생선이 왔으니, 어서 양념에 무치자 팍팍.”

가오리, 가자미 등 선어는 물론 오징어 소라 우렁 등 데쳐낸 생선과 어패류에 초고추장 무채 미나리 등 양념을 듬뿍 넣고 칼칼하게 무쳐낸 것이 무침회다. 싱싱한 선어를 그냥 먹지 않고 양념한다는 것에 다소 의아해하겠지만 매콤새콤한 양념을 즐기는 대구 사람들에겐 딱 맞는 요리다.

원래는 잔치상에 오르던 반찬이었는데 식사도 좋고 안주로도 딱이라 금세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중반 반고개 지역에 무침회 골목이 생겨났고 ‘내륙 대구’의 명물 해산물요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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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4종류를 주문했고 각각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아무튼 새콤달콤화끈한 맛이 일품이다.

다양한 맛을 보려고 4가지 무침회를 모두 주문했는데, 나오는 것을 얼핏 보니 죄다 똑같다. 맛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섬주섬 챙겨 먹다보니 재료니 양념을 조금씩 달리했다. 납작만두에 싸서 먹으면 기름맛이 더해져 더욱 좋다. 마지막으로 양념에 밥을 비벼야 한다. 매콤새콤한 맛이 뜨거운 밥과 만나 식사의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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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침회는 밥에 비벼도,납작만두에 싸먹어도 좋다.

‘전에서 만두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납작만두는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 ‘흰색’이라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역할은 주로 붉은 음식을 싸먹는 용도다.

쫄면이나 양배추무침,무침회를 싸서 먹으면 기름기가 매운 기운을 걷어내줘 한결 풍성한 맛이 난다. 대구엔 만두 잘하는 화교 집이 많으니 납작만두는 한국인이 파고든 틈새시장일 지도 모른다. 매콤한 다른 음식을 싸먹는 재미가 쏠쏠한 납작만두는 만두로 보면 안된다. 전에서 만두로 진화하는 중이다. 만두로 보면야 소가 거의 없어 옹색하지만 전으로 보면 푸짐하다.

납작만두는 미성당이 유명하지만 교동시장 먹자골목에도 인기다. 이곳엔 ‘양념오뎅’을 판다. 부산 사람들이 보면 “와?(느낌표가 아니고 물음표다)” 하겠지만 빨간 양념에 찰박찰박 담긴 양념오뎅은 이미 부산의 그것과는 또다른 존재감을 확보했다. 접시 옆에는 어김없이 ‘추가용’ 다진 양념이 자리한다.그냥도 꽤 칼칼하지만 양념을 더 넣어먹는 이들이 많다.

“천천 이천”으로 주문이 끝나는 범어동 윤옥연 할머니 떡볶이집에도 추가 양념을 놓아 둔다. 그냥 고추장처럼 보이지만 뭔가 특별한 비급이 숨어있다. 조금만 넣어도 퍽 매워진다. 혓바닥이 얼얼하고 온몸의 땀구멍에서 동시에 한방울씩 뜨거운 땀이 솟아난다. 대구에선 그래야 맛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멀어도 외져도 찾아온다. 나가는 길에는 매운 맛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가득 서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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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엔 만두 잘하는 곳이 많다. 영생덕 고기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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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에 인기좋은 태산만두 군만두,

각종 분식과 주전부리 등 ‘B급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대구는 맛있는 만둣집도 많다. 우선 시내 태산만두와 영생덕이 유명하다. 두 집 모두 화상(華商)이 운영하는 집으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태산만두는 얇고 부드러운 만두피로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곳이다. 특히 바삭하고 존득한 피 속에 육즙 흥건히 넘치는 소를 채운 군만두가 인기다. 고른 연령대 많은 이들이 두루 찾는 영생덕은 찐교스(찐 교자만두)와 고기만두 물만두가 맛있다. 한눈에도 푸짐한 고기만두(왕만두)는 옛날 맛이 나서 배가 앞산만큼 불러와도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모두들 고춧가루를 뿌린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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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납작만두, 밝은 색이지만 위에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서 내온다.

근대화 골목 홍합밥집에선 깜짝 놀랐다. 희끄무레한 밥이라니. 의아함은 금세 해소됐다. 녹색의 양념장이 있는데 청양고추였다. 그럼 그렇지. 녹두전을 주문했다, 간장이 아닌 빨간 양념장이 나온다. 그래야 대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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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통닭의 양념통닭. 당연히 매콤달콤하다.

짬뽕을 팍팍 졸여낸 듯한 음식인 야끼우동이나 그보다 더 졸인 다음 밥을 비벼먹는 중화비빔밥도 대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메뉴다(일부는 경북권에 퍼져나가기도 했다). 그냥 프라이드 치킨만 있던 세상에 최초의 양념치킨도 대구에서 생겨났다. 매콤달콤 양념을 버무렸다. 치맥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의 3대 통닭집(뉴욕통닭·동문치킨·원주통닭)은 늘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같은 영남이지만 부산·경남이랑도 다르다. 재첩국 같은 것을 보면 “거 맹하이 멀거이 무신 맛으로 묵노?”라 한다. 원래 더운 지방이 매운 음식을 즐긴다. 대구는 덥다. 한국의 쓰촨(四川), 대프리카가 대구다.

“쿵!쿵! 골!” 요즘 잘 나간다는 대구 FC도 매콤하고도 화끈한 축구를 펼친다. 스트라이커 세징야는 무침회처럼 톡쏘는 공격을,GK 조현우는 납작만두처럼 담백하고 안정적인 맛으로 받친다. ‘스뎅그릇’ 같은 전용구장에 육개장처럼 맵싸라한 플레이를 선수와 관중이 한데 어우러져 펼친다. 이것이 대구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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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나라의 간식. 염매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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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흔한 반찬가게 풍경.

붉은 음식, 즉 매운 음식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대구의 붉은 음식들을 실컷 먹고 올라온 후, 나는 매일 아침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대구여행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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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여행기사이니 만큼 대구의 봄 풍경 사진도 올려본다. 대구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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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슬산 참꽃도 그리 빨갛지는 않지만 아름답다.

아, 미세먼지도 매운 것은 못먹는지 대구의 봄은 참 이뻤다. 팔공산 벚꽃 엔딩도, 앞산 진달래도 비슬산 참꽃도 아름다웠드랬다. 이 꽃들은 모두 붉은 빛이 감돈다. 식욕을 당기는 꽃이다.

demory@sportsseoul.com

대구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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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커피의 고장이기도 하다. 커피명가의 라핀카 명가치노와 딸기케이크.

●커피와 육계장=

매운 것을 먹으면 저절로 커피가 당긴다. 대구는 커피의 고장이기도 하다. 로컬 브랜드 ‘커피명가’의 인기가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의 인기를 넘어선다. 커피명가의 로스팅 창고 옆 2층 건물 라핀카(만촌동)는 봄날에 특히 분위기 좋은 카페다. 이곳에서 시그니처 메뉴 명가치노 한잔과 봄철 딸기케이크를 맛보면 혓바닥의 캡사이신이 당장 씻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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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에 새로 생긴 ‘마당깊은 집’. 소설가 김원일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재현해놓았다.

대구 육개장은 생각만해도 침이 고인다. 대파와 무를 넣어 시원하고 구수하다. 밥을 말아 장아찌나 깍두기 하나를 얹어먹으면 그때부턴 제 스스로 알아서 뱃속으로 꺼져든다. 앞산 아래 ‘양정화네 앞산 온천골’ 식당은 육개장과 육개장 소면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물론 달성공원 앞 옛집식당은 명불허전.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 정갈한 ‘이팝에 소고기국’ 밥상을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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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행주간에 대구를 들른다면 앞산을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케이블카를 타면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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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전망대 앞에 핀 진달래.

●2019 봄 여행주간=

대구시는 이달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봄 여행주간에 맞춰 ‘네이처(Nature) 대구, 당신이 몰랐던 대구의 아름다운 자연’ 여행상품과 ‘대구 관광 친절의 신을 찾아라’를 실시한다.

여행상품은 대구 대표 생태(ECO)관광지를 재조명한 생태체험 투어와 함께 대구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팔공산 올레길 걷고 팔공산 대표맛집 맛보고’와 ‘자연속에서 만나는 쿡키즈 아카데미’ 등 2가지로 진행한다. 참가비는 1인 1만원, 여행주간 누리집(travelweek.visitkorea.or.kr)에 신청하면 된다. 문의(053)720-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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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행주간 추천코스 대구 중구 영남대로,근대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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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는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떠나던 길이다. 고추 전래는 얼마 안됐으니 매운 것은 아마 나중에 먹기시작했을듯하다.

대구 서문시장 및 안지랑 곱창골목, 앞산카페거리 이용객 대상으로 친절상인을 선발하는 대구 관광 ‘친절의 신을 찾아라’는 구매고객 대상 현장투표 실시 후 상품을 준다. 27일 오후 2시부터 5월 8일 오후 10시까지. 문의(053)423-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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