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의 '中·日 20년 한류 개척기', "3개국 활동 경력 자부심 느껴요"[SS인터뷰]
    • 입력2019-04-17 07:00
    • 수정2019-04-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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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가수 겸 방송인 채연의 커리어를 보면 특이한 면이 많다. 2003년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이전에 그는 2000년 일본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능인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와 일본, 중국 3개국 예능을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최근 채연을 만나 그가 밟아온 ‘원조 한류 스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활동 경력이 특이하다. 2000년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21세기가 되기 바로 전 해인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가 2000년 니혼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웃쨩난쨩의 우리나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 7시에 방영했는데 당시 우리나라로 치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현지 톱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 연예인의 일본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이다. 난 원래 가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오디션에 합격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만 해도 일본 예능에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일본어를 못하는 상태에서 일본에 갔다. 초반엔 혼란을 많이 느꼈다. 춤과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되려고 연습생을 하다가 갑자기 일본에서,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것이다.

가수 활동까지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코너 속에서 대결구도가 있는데,그걸 이겨야 앨범을 내고 활동할 수 있었다. 예능에서 배구도 하고, 유도도 하고, 히치하이킹, 노숙 등을 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난 가수를 해야 하는데 지금 난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자주했다.(웃음) 노래하러 왔는데 노숙을 하고, 온몸에 멍이 들어있으니 회의감도 느꼈다.

그런데 몸으로 하는 예능을 촬영하며 ‘한국사람은 승부욕이 있다’, ‘지기 싫어한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하게도 ‘한국 사람의 의지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외국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당시 일본에서 예능에 출연하는 한국 연예인이 있었나.
예능에선 못 본 것 같다. 보아가 가수로서 일본에서 막 활동을 시작한 무렵이었다. 나와 거의 활동 시작 시기가 비슷했다.

-일본 활동 4년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 열정이 대단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모두 다했다. 3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트레이닝해서 유도 전국 대회에 나갔다. 유도 선수와 똑같이 훈련하니 몸도 커지더라. 초등학교 4학년과 실제 경기를 했다. 나도 힘이 센 편인데 그 친구는 힘이 너무 세더라. 1대1로 비겼다. 프로그램 내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혼성그룹 ‘울트라캣츠’의 메인보컬로도 활동했다.

프로그램 출연을 하며 실제 인도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출연진이 다함께 인도로 떠나 적도 부근에 한달 머물렀는데 새까맣게 탔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인도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했다.

그땐 내가 원하는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시키는걸 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많은 것을 배웠다. 예능감도 익혔다. 예능을 할 땐 솔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인위적인 건 보는 사람이 알아챈다.

-2003년부터 한국 활동에 주력한다. 가수로서 예능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2년말 한국에서 데뷔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2003년 일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2003년 8월 첫 앨범을 내며 국내 활동에 주력하게된다.

한창 부지런히 활동하던 시기에 나 스스로 나를 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채연’이란 사람이 다져진 시기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는데 방송 활동을 하며 알게 되더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맞다. 예능을 하며 밝은 이미지가 강조되다보니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어야 할 것 만 같았다. 어느 순간 내가 그런 사람이 돼 있더라.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존재감을 보이는데 애착이 가는 예능은.
우선 SBS ‘X맨 일요일이 좋다’를 꼽고 싶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계기로 중국 활동도 할 수 있었다. SBS ‘실제상황 토요일-리얼로망스 연애편지’도 애착이 간다. 2주에 한번이지만 가상 연애를 할 수 있어 대리만족이 된 프로그램이다.

-가수로서 애착 가는 노래 세곡을 꼽아달라.
우선 ‘둘이서’를 꼽고 싶다. 제일 많은 분이 기억하는 노래다. 운도 좋았다. 예능에서 ‘나나나’ 부분이 부각돼 인기가 많아졌다. 부를 때 신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면 떼창을 해주신다.

데뷔곡 ‘위험한 연출’도 기억에 남는다. 그전의 ‘이진숙’(예전 본명)은 힙합 소녀였다. 그런 섹시한 의상을 그 전엔 입어본적이 없어서 내 삶에서 충격이었다. 그 의상과 동작, 노래를 통해 진숙이가 채연이 됐다. ‘흔들려’도 섹시가수 ‘채연‘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다. 한 할아버지가 부르신 영상을 찾아봤는데 굉장히 멋있었다.

-한국에서 한창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간 계기는.
운이 좋아서 우연히 가게 됐다. 같은 소속사였던 클론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여자 가수 피처링이 필요해서 2007~2008년 무렵 함께 공연을 다녔다. 중국에 입국을 하는데 나를 보러 많은 팬이 공항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팬들이 컴퓨터로 한국 예능을 봐서 나를 알고 있던 거였다. 중국 현지 관계자들도 그 장면으로 놀랐다. 그래서 CCTV에 몇번 출연했고, 2007년 후난TV ‘명성대전’이란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반응이 좋았다. 시청률이 4% 내외였는데 그 정도면 중국에선 어마어마하다 하더라.

언어적인 면이 힘들지만 중국 활동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활동 없는 연예인이 중국에 간다는 인식이 약간 있던 시절인데 난 국내에서 바쁠 때도 중국에 갔다. 그냥 중국 활동이 좋았다. 2007년부터 4~5년 정도 중국과 활동을 병행했다.

-직접 경험한 중국 예능 시장은 어떤가.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땐 현대적 의미의 예능이나 버라이어티가 없던 시절이다. 중국 예능의 변천사를 눈으로 직접 봤다. 초창기엔 카메라 여러대를 놓고 찍는 걸 스태프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2012~2013년 무렵부터 시스템이 확 달라진 걸 느꼈다. 그 무렵부터는 한국 프로그램을 찍는 거 같은 느낌 받았다.

-한국, 일본, 중국 3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커리어는 흔치 않다.
자부심이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3개국에서 3개국어로 활동하며 쉽게 가질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했다.

-해외 진출 하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한국에선 이랬는데 여기선 왜이래?’라는 생각을 가지면 힘들어진다. ‘여기는 일본이니까’, ‘여기는 중국이니까’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현지 언어를 하면 확실히 좋아해준다.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매 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에서 계속 활동할 생각은.
영어를 두달째 배우고 있다. 영어가 되면 굳이 미국이 아니라도 동남아 등 갈 수 있는 데가 많다.

앞으론 예능을 간간이 하면서 국내에서 일종의 버스킹인 ‘팝업쇼’ 등 자선 공연도 생각 중이다. 받은 게 많은데 돌려준 적이 없어서 내가 뭘로 대중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차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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