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LA 다저스 류현진.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완벽한 제구만큼 선구안도 빛났다. ‘코리언 몬스터’ 류현진(32·LA 다저스)이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4구를 골라 상대 에이스의 멘탈을 무너뜨렸다.

류현진은 3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수확했다. 컨디션이 완벽하지는 않은 듯 패스트볼 구속이 90마일(약 145㎞) 가량에 머물렀지만 체인지업과 커브를 전진배치해 상대 타자들의 조바심을 이끌어냈다. 자신이 볼배합을 리드하는 제스처가 자주 나와 관록이 묻어났다.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들의 조바심을 이끌어낸 류현진은 타석에서는 오히려 상대 투수의 멘탈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왼손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는 류현진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직후 선취점을 허용했고, 이어 만루홈런까지 얻어 맞았다. 희생번트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볼을 골라낸 류현진의 인내력이 범가너에게 완승을 거뒀다. 물론 이런 범가너에게 실투로 2점 홈런을 내 준 것은 옥에 티였다.

상황은 3회말 무사 1루에서 벌어졌다. 선두타자 러셀 마틴이 투수쪽으로 애매한 타구를 보낸 뒤 전력질주 해 1루에서 세이프 됐다. 범가너가 최선을 다해 송구했지만 원바운드가 됐고 브랜든 벨트의 미트를 맞고 튀었다. 무사 1루에서 첫 타석을 맞이한 류현진은 수순대로 희생번트 자세를 취했다. 추가 진루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범가너가 선택한 초구는 커브. 그러나 류현진은 배트를 거둬들이며 떨어지지 않은 높은 커브를 지켜봤다. 첫 번째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승리를 따내 여유를 찾은 류현진은 범가너가 던진 2구와 3구도 끝까지 지켜보다 배트를 거둬 들였다. 순식간에 3볼로 수세에 몰린 범가너는 4구째로 포심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류현진은 범가너가 투구 동작을 시작하자 번트 자세를 풀고 지켜보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3볼이라 여유가 있어, 투구 수 한 개라도 늘리려는 심리전을 전개한 셈이다.

바깥쪽 높은 보더라인을 통과하는 듯 했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류현진은 태연하게 걸어나갔고, 범가너는 주심에게 항의를 했다. 심리전에서 류현진에 완패했는데 주심까지 거들자 멘탈이 완전히 붕괴됐다. 키케 에르난데스에게 좌중간 적시타로 선취점을 내준 범가너는 2사 1, 2루에서 A.J 폴락에게 좌전안타를 맞고 만루 위기에 몰렸다. 코디 벨린저에게 1볼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다 그랜드슬램을 맞고 사실상 승기를 내줬다.

류현진이 지난해 9월 18일 콜로라도전 이후 197일 만에 개인통산 9번째 볼넷을 얻어낸 징검다리 역할이 팽팽하던 승부의 흐름을 다저스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만든 숨은 동력이었던 셈이다. 범가너는 이날 경기 전까지 상대 투수에게 단 3개의 볼넷만 내줬다. 특히 희생번트 상황에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는 것은 범가너와 어울리지 않는 최악의 투구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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