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글래디에이터' 별명? 살기 위해 선택한 생존법이었다"[리와人드]
    • 입력2019-03-28 11:00
    • 수정2019-03-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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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일
‘글래디에이터’ 김형일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은퇴한 게 맞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굳이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인사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다. 그저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K리그의 ‘글래디에이터’로 불렸던 수비수 김형일(34)의 말이다. 지난해까지 태국 프로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김형일은 지난 1월 은퇴를 결정했다. 지난 2007년 대전에서 데뷔해 지난해까지 11년간 프로 생활을 이어온 김형일은 성공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는 2번의 K리그 우승과 2번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등 웬만한 우승컵을 들어봤다. K리그를 풍미했던 수비수의 조용한 퇴장이기에 그를 기억하는 팬들은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앞선 말처럼 은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축구팬과 K리그에 돌려주겠다는 계획이다.

◇은퇴한 지금, 축구를 사랑하는 일반인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김형일

지난 1월 은퇴를 결심한 김형일은 후배인 ‘고알레’ 이호 대표와 얘기하다가 일반인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조기 축구회를 두 군데 나가면서 일반인들과 만나고 있는데 축구를 배우려는 열정이 좋더라. 축구를 취미로 즐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지도자 C급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김형일이 일반인을 지도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단지 ‘고알레’를 통해 몇 차례 경험하며 미래를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은퇴 결심 후에도 정확한 노선을 정하지 못한 건 갑작스럽게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김형일은 “지난해 시즌이 끝난 후 팀을 알아봤다. 해외에서 오라는 곳이 있었지만 계약 단계에서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다보니 ‘하지 말라는 건가’ 생각하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은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주변에서는 다음 이적 시장을 노려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러나 김형일은 “지금은 은퇴를 완전히 마음먹었다”며 “몸을 만들고 얼마 뛰지 못하기보다 차라리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뭘 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2009 피스컵코리아 축구대회 FC서울-포항스틸러스
김형일(왼쪽)이 몸을 던져 상대 공격수에 앞서 공을 처리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글래디에이터’로 이름 날렸던 김형일 별명의 탄생 비화

김형일은 현역 시절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수비수로 유명했다. 자신의 수비 지역으로 들어온 공격수가 있다면 어김없이 거칠게 상대하며 골문으로 공이 향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 2016년 상하이 상강과의 ACL 8강에서 상대 공격수의 킥에 머리를 맞고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거친 파이터형 수비수가 된 데는 숨겨놓은 비밀이 있었다.

김형일은 “고2 때까지 공격수였다. 그런데 공격수로서 재능이 없었다. 당시 임종헌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전향했는데 빠른 것도 아니었고 기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몸으로 부딪히는 것뿐이었다. 몸을 만들어서 (상대 선수를) 부수기라도 해야 됐다. 결국 ‘글래디에이터’라는 별명이 붙은 건 내가 실력이 안돼서 망설이지 않고 몸을 부딪쳤기 때문이다”라고 겸손을 떨었다.

스스로 가진 능력이 부족해 거친 수비수가 됐다고 한 김형일이었지만 그의 투지는 훌륭한 선배들 밑에서 보고 배운 덕분이었다. 그는 2008년 포항에 입단한 뒤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당시 포항에는 조성환과 황재원이 수비라인을 버티며 김형일에게 좋은 교본이 됐다. 포항에 이어 전북에서도 조성환과 발을 맞춘 김형일은 정신력을 제대로 배웠다며 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전북에 있을 때 서울 원정에서 너무 힘들어서 종아리에 쥐가 난 적 있다. 성환이형과 수비를 맡았는데 내가 ‘종아리에 쥐가 났다. 나가야할 것 같다’고 했더니 눈이 뒤집혀 내게 욕하더라. ‘뛰라고, 뛸 수 있어’라며 채찍질했다. 성환이형은 경기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라운드 바깥에서는 정말 순수한 사람인데 경기장에만 들어가면 정말 달라진다. 그러니까 나도 정신이 번쩍 들더라. 덕분에 오기로 참고 뛰었다. 경기 뒤 성환이형에게 ‘형 덕분에 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환이형은 그때 욕한 것을 아직도 모른다. 정신력 하나는 성환이형에게 제대로 배웠다.”

김형일
‘글래디에이터’ 김형일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면담 한 번 없이 믿음 준 파리아스 감독과의 기억

2009년 포항은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이끌었다.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이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난 2007년부터 이른 바 ‘파리아스 매직’을 이끈 주인공이다. 2008년부터 포항의 유니폼을 입은 김형일은 파리아스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했다. 그러나 파리아스 감독은 그가 그때까지 경험한 감독과 다른 사람이었다. 운동장 안팎에서 규율에 맞게 행동하는 타이트한 국내 문화와 달리 파리아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그렇게 2009년 ACL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팀을 떠날 때까지 K리그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포항에서 외국인 감독인 처음 접했다. 대전에 있을 때는 최윤겸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포항 와서는 대화도 안 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초반에 혼란스러웠는데 형들이 옆에서 터치하지 않는 감독에 관해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했다. 파리아스 감독과 단둘이 대화를 나눈 건 2009년 클럽월드컵 마친 후 감독이 팀을 떠나는 날 오전에 앉아서 얘기를 나눈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질문이 ‘내가 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파리아스 감독은 내 플레이에 관해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다.”

2009년 포항은 피스컵 코리아(컵 대회)와 ACL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그도 2위로 마치며 아쉽게 트레블 달성을 하지 못했다. 좋은 성적을 보여준 포항이었기에 파리아스 감독의 선수 지도법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형일이 파리아스 감독에게 믿음을 갖고 투지 넘치게 뛸 수 있던 건 한 일화 덕분이었다.

“감독이 나를 믿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2008년도 리그 중일 때 내가 장염에 걸린 적 있었다. 경기 전날 장염에 걸려 고생하고 당일에도 화장실을 많이 다녀왔다. 야간에 경기가 있기에 팀 닥터에게 사정을 설명해 오전에 병원을 다녀왔다. 장염 증세는 멈췄지만 내가 뛰면는 팀에 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은 ‘너 뛸 수 있어. 뛰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통역사가 ‘믿으니까 그냥 너 뛰래’라고 전달했다. 몸이 되지 않는데도 내게 믿음을 주고 뛰게 하니 그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2009 AFC 챔피언스리그 포항스틸러스-분요드코르
김형일(오른쪽)이 2009년 9월 23일 분요드코르와의 ACL 8강 1차전에서 상대 골키퍼와 헤딩 경합을 벌이고 있다. (스포츠서울DB)
◇ACL 2회 우승 경험자가 밝힌 해외 출장 에피소드

김형일은 포항과 전북에서 총 2차례 ACL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챔피언 후보였던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였기에 그는 해외 출장을 자주 떠났다. 중동 등 사회기반 시설이 열악한 나라로 원정을 떠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다른 문화를 경험한 그는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비행기 회항 사건을 꺼냈다.

그는 “중동 원정을 다녀올 때 얘기다. 경기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비행기 안에는 우리 선수단 빼고는 모두 현지 사람들뿐이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문제가 있다며 회항하게 됐다. 이때 생소한 모습을 지켜봤다. 비행기 안 모든 현지 사람들이 복도로 나와 하늘에 대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더라.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 같았다. 새로운 광경에 신기하게 지켜봤는데 비행기 안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선수단의 동요도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안전하게 회항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형일
‘글래디에이터’ 김형일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해외 진출한 김형일의 기억 ‘악재+늦게 찾은 즐거움’

김형일은 전북에서 뛰던 2016년 말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했다. 첫 해외 진출이었다. 이전까지 수많은 러브콜이 있었지만 기회와 상황이 맞지 않아 모두 거절한 상황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광저우와 6개월짜리 단기 계약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이 제안이 왔을 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계약 전날 제의가 와서 중국에서 단장이 나를 보러 한국으로 날아오겠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오후 내내 고민했다. 중국에서 나를 보러 온다는데 그만큼 인정해주는 것이니 나가기로 결정했다. 또 중국 가서 실력을 보여주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악재가 터졌다. 2017년 시즌 준비를 위해 포르투갈로 광저우가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한중관계가 급랭됐다. 여기에 중국 축구가 아시아쿼터를 폐지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그가 뛸 자리가 사라진 것. 당시 광저우에는 파울리뉴, 아란 카르발류, 히카르두 굴라트 등 거물급 공격수들이 즐비했다. 결국 김형일은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국내로 돌아와야 했다. 김형일은 “이적 시기에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포항에서 뛸 때도 중동과 중국에서 많은 제안이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한국 선수가 진출해 뛴 선례가 없어 선뜻 이적을 결정하지 못했다. 포항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데닐손 역시 중동이 아닌 우즈벡을 선택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내 실력에 우승할 건 다 해봤다. 내 능력에 과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천으로 복귀한 김형일은 2018년 6월 자유계약 신분으로 다시 해외 진출을 노렸다. 태국 해군팀인 네이비로 이적해 6개월을 뛴 김형일은 당시 기억에 관해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태국 선수들 때문에 처음에는 짜증 났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축구하는 게 재밌고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승패 문제 때문에 즐기지 못했던 축구를 즐기는 법을 배웠다”고 떠올렸다.

김형일
‘글래디에이터’ 김형일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은퇴한 것 맞습니다.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드리고 싶다”

요즘 축구를 좋아하는 일반인들을 만나면 K리그에서 볼 수 없는 김형일에게 은퇴와 관련한 질문을 자주 묻는다고 한다. 이에 김형일은 “은퇴한 것이 맞다”고 답했다.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은퇴를 결정했기에 김형일은 은퇴식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는 이점에 관해 아쉬움이 없었다. 그는 “인사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굳이 인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었다.

K리그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던 그이기에 김형일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K리그 팬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K리그에서 어떤 제의가 오든 적극적으로 다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이제 시간이 많으니 대전, 포항, 전북, 부천 그리고 K리그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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