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혁
임규혁 데니스포츠 대표가 13일 용인시 수지구 데니스포츠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폴인풋볼’은 축구에 ‘푹’ 빠진 축구 산업 종사자들을 만나는 코너입니다. 축구에 매료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편집자주>

[용인=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현역 시절 브라질 축구 명문 산투스에서 4년간 활약한 임규혁(34)은 ‘축구황제’ 펠레가 인정한 한국 축구선수였다. 브라질 축구 유학 1세대인 그는 동양인에 대한 홀대를 이겨내고 인정받았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선수의 길을 일찍 접었지만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국 축구의 근간을 바꿔놓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고 있다.

현재 데니스포츠를 운영 중인 임규혁 대표는 축구 아카데미부터 스포츠 이벤트, 스포츠 복지, 축구 유학, 선수 에이전시 등의 사업에 도전하며 사업가로서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축구선수가 아닌 사업가로서 한국 스포츠를 엘리트 중심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꾸려 노력 중이다. 현역 당시 웬만한 해외파 부럽지 않게 선수 생활을 보냈고, 아쉬움 가득한 채로 현역을 마무리했기에 그가 나아가는 길은 깊이가 있었다.

임규혁과 펠레
임규혁 대표(왼쪽)와 ‘축구황제’ 펠레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다. 출처 | 임규혁 대표 SNS

◇임규혁이 기억하는 펠레, 펠레가 기억하는 임규혁

팬들의 기억에 임규혁은 ‘펠레가 인정한 한국 축구선수’로 남아있다. 브라질 산투스에서 뛰던 임규혁은 ‘산투스의 전설’ 펠레가 경기를 지켜본뒤 “괜찮은 선수”라고 평가한 사실이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동양에서 온 선수가 브라질 축구 전설 펠레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주목을 받을만 했다. 이 소식은 국내 언론에도 전해져 ‘펠레가 인정한 축구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또 당시 펠레가 새롭게 창단한 프로팀 ‘리토리우FC’에도 스카우트돼 팀을 옮기면서 그의 수식어는 견고해졌다.

하지만 임규혁 대표는 자신의 현역 시절을 겸손하게 평가했다. 그는 “그때 펠레가 4~5경기 정도 보러왔다. 펠레 덕분에 한층 더 주목받아 나는 감사했지만 그건 일종의 립서비스였다. 리토리우에 가게 된 것도 1부리그에서 A급 아닌 괜찮은 선수들을 모아서 팀을 구성한 것이었다. 나는 마침 산투스에 새로 부임한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아 8개월짜리 대회 하나 잘 뛰러 갔을 뿐이다”며 “그때는 모든 꿈이 유럽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국내에서 하는 (펠레)이야기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펠레뿐 아니라 산투스와의 인연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임 대표는 “재작년에도 펠레를 뵙고 왔다. 브라질 해군에서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이벤트에 초대해서 펠레와 10년 만에 만났다. 내가 살이 찌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 펠레가 ‘한국을 가줘야 하는데,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어쩌나’라고 하더라. 현재 펠레는 건강 탓에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브라질에서의 인연을 현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친정팀 산투스의 아시아 라이센스를 지닌 임 대표는 현재 산투스의 이름으로 축구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네이마르, 호빙요, 지에구 히바스 등은 언제든지 아시아에서 내가 필요할 때 도와줘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임규혁

◇만약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더라면….

산투스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임규혁은 당시 활약상이 국내에도 알려졌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성화 감독도 임규혁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임규혁은 최고의 컨디션일 때 부름을 받지는 못했다. 브라질 리그 시즌을 마친 2004년 11월 박성화호는 스페인 전지훈련을 떠났지만 임규혁은 함께하지 못했다. 박성화 감독의 호출을 받은 건 석 달이 지난 2005년 2월이었다. 그러나 당시 임규혁은 휴식기를 보내고 시즌 준비를 시작한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몸 상태가)준비되지 않아 가지 않으려 했으나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흘간은 괜찮았다. 그러나 첫 연습경기를 소화한 뒤 감기에 걸리면서 컨디션 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임규혁은 결국 100%를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주변에 그를 좌우하려는 잡음이 많아 임규혁은 브라질이 아니라 국내 K리그 팀을 두드렸다. 당시 발목을 크게 다쳤던터라 그로부터 2년간 7~8개 팀을 오가며 테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K리그 팀에 합류해 운동을 이어가면서 부상을 달고 살았다. 결국 K리그 어느 팀에도 선택받지 못했다.

임 대표는 그때를 돌이켜보면서 “아마 다시 돌아간다면 대표팀 소집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시 관심갖는 유럽팀이 있었다. 브라질에 남아 컨디션 관리하면서 기다렸다면 더 좋은 기회가 생겼을 것이고 국내에 들어와 부상도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초 유럽을 가야할 시기에 나가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나갔으면 잘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기회를 놓치니”라고 아쉬움을 삼켰다.

임규혁 대표
산투스 홈구장에서 기념 촬영한 임규혁 대표(오른쪽 세 번째). 출처 | 임규혁 대표 SNS

◇엘리트 체육이 아닌 즐기는 스포츠 위해

임규혁 대표는 현역 은퇴와 함께 입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사업을 꿈꿨다. 현역 시절 브라질과 포르투갈, 동남아 등지에서 뛴터라 해외의 축구 시스템을 일찌감치 관심 갖고 지켜본 게 도움이 됐다. 그는 “남미, 유럽, 동남아를 모두 경험하면서 그 나라의 체육 정책에 관심을 가졌다. 은퇴하면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당시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임 대표가 그리는 그림은 하나다. 스포츠를 하는 아이들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산투스에 있을 당시 주말이면 모든 가족이 함께했다. 2002년 산투스가 브라질 리그에서 우승할 때 4강전에서 상파울루와 만난 적 있다. 그때 80대 노부부와 손주들이 내 앞에 앉았는데 골이 들어가는 순간 이 가족 모두가 엠블럼을 잡고 환호했다. 그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면서 “온 가족이 부담 없이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에어바운스를 설치하고 한쪽에서는 전통놀이를 하고, 축구를 배우고, 축구 경기를 하고, 외국어로 댄스를 배우는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가 성장기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도 국내 체육 교육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임 대표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실질적으로 구청, 교육청 문을 엄청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데니스포츠는 청소년 대안 캠프로 사회 부적응 학생 등을 스포츠로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유치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임 대표는 아이들이 스포츠를 즐겨야 좋은 선수가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축구 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늘수록 그 안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은 선수가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감성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축구를 잘하는 아이가 끝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음악적 예술적인 부분들을 채어줘야 힘든 시기가 왔을 때 축구 외적인 부분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운영하는 아카데미도 주 3회를 권장한다. 주 3회 이상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가 다른 걸 배우도록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 브라질 유학을 거치면서 겪은 선수로서의 고충이 그대로 담긴 것이었다.

임규혁
임규혁 데니스포츠 대표가 13일 용인시 수지구 데니스포츠 사무실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브라질 유학 1세대가 바라보는 백승호, 이승우, 이강인

원주공고 1학년 때 브라질 축구 유학을 선택한 임규혁 대표는 브라질 유학 1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유학 업체를 통해 브라질에 갔지만 변변치 않은 시설에서 국내 선수들끼리 운동해야 했다. 그가 브라질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팀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던 건 언어였다. 그 또한 처음 입단한 팀에서 인종차별로 대인 기피증에 걸릴 정도였다고 했다. 언어가 해결되지 않아 생긴 문제기도 했다. 언어를 익히고 산투스로 향하면서 순박한 브라질 친구들 덕분에 탄탄대로를 밟을 수 있었다.

임 대표처럼 최근에는 어린 나이부터 해외 유학길에 올라 성공한 케이스가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백승호, 이승우, 이강인 등이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스페인 무대를 선택해 성공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임 대표가 바라본 이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임 대표는 “그들처럼 하는 게 정답이다. 구단과 소통하면서 성장하는 게 맞다.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다보면 주변에서 휘두르려는 잡음이 많다. 제일 중요한 건 키워준 구단과 일차적으로 상의하면서 움직이는 게 어릴 때는 맞지 않나 싶다. 왜냐면 그때는 부모님도 흔들리기에 외부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구단과 상의하는 게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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