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석혜란기자] "흰머리의 60대 신인 모델이 등장했다.", "순댓국집 털보 사장님, 런웨이를 걷다"


역대 국내 최고령 모델로 데뷔한 김칠두(63·티에스피모델) 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은퇴 후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 취미나 여행을 떠날 법도 한데 그는 제2의 인생을 택했다. 지난해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키미제이' 쇼에 데뷔하자마자 젊은 모델들도 가장 서고 싶어하는 오프닝 무대에 올라 관객을 압도했다. 첫 런웨이 무대가 떨리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신나고 열정이 불타오른단다.


그는 등장부터 기존 모델들과 달랐다. 181cm의 키, 이국적 외모,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풍겨지는 아우라까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꽃할배'라는 수식어를 가진 신인 모델로 등장 후 지금은 모델계에 '인싸'(인사이더)가 됐다. 각종 패션 브랜드에서는 너도나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폼난다", "멋쟁이세요",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며 덕질하는 SNS 팬들도 부지기수.


요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수줍게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하나 있죠. 젊은이들이 알아봐 준다는 것, 그거 하나 실감하고 있습니다"라며 허허 웃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모델 김칠두를 만나 그의 인생과 모델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칠두 씨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일화가 있을까요.


지하철에서 생긴 일인데요. 제가 압구정에서 내려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저를 쫓아오더니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흔쾌히 찍어주고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어보니 '사실 선생님과 사진 찍으려고 역까지 지나쳐서 따라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정말 사람들의 관심을 받긴 받나 보다'라고 느꼈죠.


- 이제 곧 패션위크가 다가오는데 준비는 잘 하고 계신지.


패션위크 준비 잘하고 있죠. 먼저 2개가 확정됐습니다.


- 외모가 다른 시니어모델분들과 다르게 이국적이고 잘생기셨어요.


잘생겼다기보다도 남들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나 싶습니다. 잘생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뭐 저만 잘생겼겠습니까. (웃음)


- 따님의 권유로 모델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들었어요.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모델을 준비하는 과정보다 딸과 대화했던 시간이 많았어요. 장사를 접고 고정적인 직업으로 어떤 걸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딸이 모델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죠. 때마침 지금의 소속사인 '더 쇼 프로젝트'에서 시니어 모델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고 딸이 여기에 지원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기회라고 생각했고 다시 한번 도전했죠.


- 2018년 서울패션위크에서 '키미제이'라는 브랜드 오프닝 쇼에 섰더라고요.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처음 모델 일을 시작하자마자 서게 된 쇼인데요. 그때는 오프닝에 선다는 의미도 몰랐습니다. 디자이너분께 잘 보여서 쇼에 서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웃음)


- 패션 업계에선 김칠두 씨와 일을 할 때 어떤 반응인지 궁금해요.


화보 촬영하면서 들었던 얘기라면 되게 편해하시더라고요. 특별하게 주문하는 것도 없고요. 전 사실 메이크업도 필요 없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서 저랑 작업하면 정말 편하다 이런 말들을 하시곤 하죠.


- 모델을 꿈꿨지만 그동안 순댓국집, 옷 장사 등 많은 걸 했다고 하는데. 왜 모델 일을 하지 않았나요?


서른둘에 결혼했으니까 20대 때는 직장도 다니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사실 모델의 꿈은 오래 전부터 꿨지만 사느라 바쁘더라고요. 그리고 경제적인 게 뒷받침이 안되다 보니 바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죠


- 장사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대 때는 의상실에서도 일하고, 그리고 국제 복지 스타일학과에 다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옷을 참 좋아했습니다. 취미라기보다 '땡기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평소에 제가 입고 다니는 옷도 남들과는 다르게 직접 아이템을 찾아서 코디하고 입는 걸 좋아합니다.


- 모델로 활동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달라진 게 뭐 있겠습니까? 이 나이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알아보는 게 가장 많이 달라진 거죠.


- 또래 친구분들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고등학교 동창들이 좀 특별한 아이였다고, 그래서 지금은 "네 자리는 여기다"라고 입을 모아 말해주죠. 10대 때는 친구들하고 비교해도 옷 입는 게 개성이 강했으니까요. 하하


- 모델 일 말고 연극도 하고 계시더라고요.


모델은 시작하면서 동시에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다 보니까 하게 됐고요. 연극은 딸과 함께 출연하고 있는데요. 지금의 연출자님께서 '검은 옷의 수도사' 역할과 잘 맞을 것 같다며 같이 연극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 연기는 어떠세요?


처음에는 대사 외우는 게 정말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래도 안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렵더라고요.


- 스타일도 굉장히 트렌디 하신데요. 한마디로 정의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하하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요. 저는 동묘 같습니다. 크게 하는 건 없고 동묘에서 주로 아이쇼핑하며 요즘 트렌드도 좀 볼 수 있게 견문을 넓히고 있습니다. 옷 스타일링을 항상 직접하고 콘셉트를 맞춥니다. 특히나 컬러 콘셉트를 잘 맞추려고 하는 편입니다. 오늘의 의상 콘셉트는? 지금 옷은 협찬입니다.


- 스케줄이 없는 날엔 주로 뭘 하시나요?


쉬는 날에는 별로 하는 거 없어요. 동네 사람들과 마실 다니죠.


- SNS 관리도 직접 하시는 건가요?


요즘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관리하고 있고 딸과 매니저도 도와주고 있습니다.


-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힘든 점은 없나요.


어렵다기보다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면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습니다. 저 친구들(젊은 모델)보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이 일 못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하고 있죠.


- 본인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매력이랄 게 따로 있겠습니까. 나이가 들어서 머리도 하얗고 얼굴에 주름살도 생기고 중후함이 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네요. 아마 중후한 매력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 모델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시는 게 있나요.


신경 써서 준비하는 건 모델로서 포즈와 워킹을 가장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연습도 많이 하고 있고요.


- 턱수염과 헤어스타일이 멋지세요. 언제부터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셨나요.


긴 머리와 수염은 일부러 만든 건 아니고요. 20대 때부터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델에 데뷔하면서 제 헤어스타일이 캐릭터화됐더라고요.


- 언제까지 이 스타일을 유지하실 계획인지.


앞으로 이 스타일을 계속 유지해야죠. 다만 변화를 좀 주고 싶다면 지금 '검은 수도사' 연극에 출연하고 있어서 끝나면 수염을 자를까 생각 중입니다.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도 보여줘야지요.


- 건강관리 비결은 어떻게 되시나요.


헬스클럽에서 뛰거나 스트레칭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외모관리도 전혀 없습니다.


- 김칠두 씨를 롤모델로 삼고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저를 롤모델로 삼겠다는 분을 SNS에서도 종종 봤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실 부담스러워요. 제가 처신을 참 잘해야 하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 단점을 찾아서 보완하고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따님의 공이 가장 큰 것 같은데 따님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정말 항상 고맙죠. 매일 보니까. 쑥스럽네요. 딸이 하는 일이 항상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대중에게 어떤 모델로 기억되고 싶은지?


저를 알아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모습과 귀감이 될만한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 앞으로 또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곧 다가올 서울패션위크에 무탈하게 잘 서고 싶다는 생각과 더 나아가서는 세계 4대 패션위크에 서는 게 제 꿈입니다. 시니어 대표로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해외 진출을 위해 외국어 공부도 하고 계신지?


지금 틈틈이 하고 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시간적 여유도 없고요. 그래도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이것도 모든 게 경제적인 뒷받침이 돼야죠.


- 시니어 모델. 언제까지 할 예정이신가요?


힘 닿는 데까지 할 예정입니다. 하하. 많이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사진 ㅣ 석혜란기자 shr198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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