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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정책 성공의 열쇠는 사회적 합의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안을 만드는 국회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그리고 해당 분야의 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유기체처럼 상호 협응해야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시행하기도 전에 숱한 파열음을 토해내고 있어 걱정부터 앞선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를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다양한 주체들의 셈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혼돈의 극치다. 체육 발전을 위한 순수성은 온데 간데 없이 저마다 다른 정치적 셈법으로 개정안을 활용하고 있는 듯해 가슴이 아프다.

지차체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법안은 개정 취지와 전혀 다른 결과를 양산할 수 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지자체장의 체육단체 겸직금지는 체육의 자율성을 위해 고안됐지만 이 법이 지난 연말 통과하자마자 지방체육은 선거모드로 돌입했다. 체육의 자율성을 위해 개정된 법이 되려 체육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체육을 전문 체육인에게 돌려주자고 한 취지도 물거품이 되고 있다. 체육인은 뒷짐을 진 가운데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체육회장 선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게 현장의 격앙된 목소리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금지를 가장 우려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지방체육의 시설과 예산은 전적으로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는데 만약 체육회장과 지자체장의 정치색깔과 코드가 다를 경우 우려되는 불이익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방 체육인들의 입장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현재로선 개정안 부칙에 명시된 법 시행 유예기간(1년) 동안 제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유일한 돌파구지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렇듯 불 보듯 뻔한 문제점이 존재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이 현장의 목소리는 고사하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 듯 졸속으로 처리된 배경이 궁금하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는 차치하고서라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대한체육회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대처했는지 묻고 싶다. 특히 체육회의 행적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겉으로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한 것 같지만 이후 행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면 오히려 법 개정을 방조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실제로 체육회는 지방체육 선거를 아주 꼼꼼하게 준비하고 이를 조속히 마무리짓기 위해 조직 전체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7개 시·도체육회 사무처장들은 지난 7일 긴급 모임을 갖고 “체육회가 이 문제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체육회 관계자는 “법이 통과된 마당에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선거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엿보였다.

체육회는 바뀐 법을 이기흥 회장의 체육권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치권 역시 비슷한 시선으로 체육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2020년 총선거와 맞물려 17개 시·도체육회와 228개 시·군·구체육회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속내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청와대에선 정치지형을 바꿀 수도 있는 체육의 정치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진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친박’으로 분류되는 자유한국당 소속의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이 지사에게 회장 궐위 시 회장권한을 대행하는 제 1부회장의 중책까지 부여한 건 상당히 의미있는 정치적 결단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를 읽어내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었다.

지방 체육은 늘 홀대받았다. 한국 체육의 든든한 축으로 큰 구실을 했지만 체육회와 문체부의 힘겨루기에 이용만 당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서글픈 운명을 타고 났다. 그랬던 지방체육이 법개정으로 또다시 망망대해에서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법개정이 통과한 마당에 지방체육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두 가지 사안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우선 우려되는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망하고 지방체육 예산과 시설을 지키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때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좀 더 연장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자체장과 정치적 코드가 다른 체육회장이 뽑히게 되면 갈등이 생기고 지방체육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바다. 따라서 지방체육회장을 선거로 뽑는 건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만큼 회장을 임명제로 뽑자는 데 총의를 모았으면 좋겠다. 홀대받던 지방체육을 또다시 궁지로 몰아넣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지방체육이 무너지면 한국 체육도 함께 무너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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