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전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며 PC방 좀비를 양산했던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 스타크'는 전설의 프로게이머들의 근황을 인터뷰로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추억을 공유하겠습니다.<편집자주>

그에게도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다. 17세의 풋풋했던 소년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게임 회사의 개발자로 자신의 미래를 충실하게 그려가고 있는 이윤열을 대구에서 만났다.

-프로게이머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즐기다가 PC방 대회에 참여하게 됐다.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서 짜릿함과 설렘을 느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내가 게임을 하는 걸 구경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구미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 등 다른 지역 대회에 참여했고, '고수를 이겨라'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게이머가 됐다.

-지금이야 테란 유저가 많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란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


당시에는 테란 유저가 없었다. 테란을 하면 좀 더 지켜봐 주고, 신기해했기 때문에 이겼을 때 더 짜릿했다. '고수를 이겨라' 당시 정일훈 캐스터가 '이 선수의 특이한 점은 테란이라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주목받는 종족이었고, 그래서 테란을 고르게 됐다.

-흔하지 않은 종족으로 프로게이머 최초의 그랜드슬램 달성자인 동시에 골든 마우스와 금배지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랜드슬램이나 골든마우스 같은 최초의 기록들이 있다. 어떤 자부심이라기보다 그때는 승리하는 게 좋았다. 오로지 경기에 대한 생각 밖에 안 하다 보니까 좋은 성적이 나왔던 것 같다.

-당시 임요환, 최연성과 함께 '3대 테란'으로 불렸다. 서로를 보며 선의의 경쟁도 됐을 것 같은데.

-통산 6회 우승(개인리그 3회, MSL 3회)을 기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 있나.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에서 오영종 선수와 치렀던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 슬럼프를 겪고 나서 처음으로 어머니 앞에서 우승했던 순간이다. 그전에 부모님이 한 번 오셨었는데, 결승에서 졌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셨다.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 우승하고 싶었고, 또 골든마우스가 걸린 경기이기도 했다.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로 긴장했는데, 승리해서 더 값진 순간이었다. 우승 후 가족들과 회식을 하는데 소주가 '꿀'보다 달았다. 그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프로게이머들을 보면 물량, 컨트롤, 운영 등 특화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윤열은 특화된 부분 없이 고루 잘했다. 비결이 따로 있나.


어릴 때 별명이 '불타는 키보드'였다. 컨트롤과 빠른 화면전에 자신이 있었다. 또 저는 제 전략을 믿는 편이다. 빌드를 짜고 연습하다 보면 망설여지는 상황이 온다. 그럴 때마다 '대회에서는 통할 거야'라는 자기 암시를 했다. 그 빌드에 대한 믿음인 동시에 계속 연습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빌드를 믿고 끝까지 밀어붙였는데 그게 장점이 된 것 같다.

-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중요 요소가 있지만, 스타크래프는 어쨌든 전략 게임이다. 본인만의 전략은 어떻게 구상하는 편인가.


일단은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마다 수년을 갈고 닦았던 특유의 빌드, 타이밍이 있다. 그걸 잘 종합해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상대방의 빌드를 예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억력이 좋아서 여러 정보를 많이 입력해놨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명도 '천재 테란'이다.


프로게이머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천재 테란'이 되어 있었다(웃음). '천재 테란'이라는 별명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은 거 같다. 사실 별명이 많다. '어린이 테란', '방학 테란' '보노보노' '피닉스' '토네이도 테란' 등. 그중에 애착이 가는 건 그래도 '천재 테란'과 '피닉스'다. '피닉스'도 불사조 같다고 해서 지어진 거니까 좋다.

-'천재성'이라고 하면, 흔히 '재능과 노력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프로게이머에게도 타고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보나.

재능이 아예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유튜브에도 올렸는데, 어느 정도의 실력까지 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재능은 필요하다.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경쟁을 하려면 일정 부분의 재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스스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저는 재능보다는 집중력이나 승부욕이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욕망은 연습량을 늘리게 하고, 실력 발휘를 위해선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재능이 많았던 건 잘 모르겠다. 노력은 제가 만족할 때까지 연습하는 스타일이었다. 연습을 많이 했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이 들땐 더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쉬는 편이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이야기지만, 춤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이윤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로봇 춤'이지 않나. '로봇 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듣고 싶다.


MBC 예능 프로그램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스친소' 2009년)에 출연을 하면 특기를 보여줘야 했다. '스친소'에 나가서 게임은 할 수가 없으니, 춤을 준비했다. 멋있는 춤을 추고 싶어서 '팝핀 댄스'를 선택했다. 그룹 샤이니 태민이 멋있게 팝핀 춤을 추는 영상을 보고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내가 춤과 거리가 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파장이 그 정도로 클 줄 몰랐다. 제 이미지에 대한 큰 분기점이 된 것 같다. 지금은 다 까먹어서 프리스타일로 춘다(웃음).

-그렇게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2012년 은퇴했다. 프로게이머들은 은퇴 후 해설위원이나 게임단 코칭스태프를 많이 한다. 해설위원이나 코칭스태프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팬들도 제가 해설을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언변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코칭스태프도 사실 원치 않았다. 선수 시절이 길었다 보니 숙소 생활보다는 대학교 캠퍼스 생활도 해보고 싶었고, 외부에서의 삶이 필요했다. 코칭스태프를 하면 또다시 숙소 생활을 해야 했기에, 그보다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아마 결혼이지 싶다.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국내 공식 런칭 행사 때 결혼식을 올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결혼식을 다니면서 일반적인 형식의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블리자드와 아프리카TV 쪽에서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행사 때 결혼식 하는 것을 권유했고, 아내와 고민하다가 동의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살아온 인생이 더 크니까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결혼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랑 등장 음악도 테란 배경음으로 했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나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도 있을 것 같다.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오다 보니 일반적인 삶에 대해 놓쳤던 부분들이 있는데, 가족을 통해 그 부분을 얻고 있다. 생각해 보면, 마음 한 켠엔 항상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고, 소소한 행복을 배우게 된다. 또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프로게이머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해보면 어떤가.


프로게이머의 삶은 게임 하나에 집중돼 있었다. 물론 수익을 얻기도 했지만, 삶의 본질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그때보다 시야가 넓어졌다.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다. 프로게이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경기에서 이기면 기쁘고, 지면 슬펐다. 그게 다 였다. 지금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는 많지만, 성취감은 높다. 다만 나이는 천천히 먹었으면 좋겠다(웃음).

-얼마 전 ASL 시즌7에서 '패스트 핵' 전략으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ASL은 여러 차례 도전했는데, 이번에 본선 진출을 하게 되면서 과분한 관심을 받았다. 많은 사람의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려고 했다. 일반적인 맵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빌드로는 어려울 거 같았다. 그래서 앞마당 이후 '핵 최적화'를 만들어서 갔는데, 못 보여줄까 봐 경기하는 내내 긴장됐다. 연습 때도 성공률이 높아서 될 것 같았는데 아쉽다.

-이윤열의 ASL 다음 시즌 참가를 바라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스케줄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시즌 8, 9 중 한 번은 나갈 거 같은데 언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왕 나가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라서 스케줄이 괜찮을 때 한 번 더 도전하고 싶긴 하다.

-다음 출전 때도 이윤열만의 전략을 기대해도 되겠나

부담스러운 질문인데 그러면 잠을 못 잔다. 올라가도 문제다(웃음). 나가게 된다면 그냥 잘 준비해서 가겠다.

-ASL 출전 반응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고 떠올리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타크래프트2는 확실히 게임의 인공지능이 높아서 게임을 할 때는 훨씬 편한데,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을 때 '유닛 뭉침' 현상이 있다. 교전이 허무하다. 스타크래프트1의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다. 확실히 스타크래프트1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다. BGM이나 특유의 웅장함이 있는 것 같다. 또 'PC방 세대'라고 하지 않나. 그 세대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2017년부터는 게임 개발사 '엔젤게임즈'에 근무하고 있다.


회사에서 'RTD 프로젝트'(스타크래프트 내에 '유즈맵'으로 유명했던 '랜덤타워디펜스'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기는 작업)의 개발·기획을 담당, 실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회사에 1년 넘게 있으면서 열심히 배우고 또 개발하고 있다. 올해 열릴 '지스타(G-STAR)' 때 게임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는 것 같다. 이윤열의 최종 '꿈'이 궁금하다.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성공한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 제가 가진 모든 아이디어를 40세가 되기 전까지 사업화해서 이후의 삶은 여행을 다니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그전까지 성공한 게임 개발자가 되고, 또 개인 방송에서도 성공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윤열에게 스타크래프트는 어떤 의미인가.


많이 얘기하고 다녔던 건데, '스타 이즈 마이 라이프(Star is my life)'다. 올해 나이가 36세인데, 21년째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접한 인생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길다. 삶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beom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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