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포토]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배우근기자kenn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진욱기자] 대한민국에서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세종문화회관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의 대표 공간을 이끄는 사람이 회계사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문화계에 있든 아니든 “아무리 세종문화회관의 경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문화적 감성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회계사가 어떻게 세종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지?”라고 속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회계사 경력에 소프트웨어업체 사장, 운동기구회사 관리부장, 회계법인 대표 등 온통 숫자만으로 가득할 것 같은 그의 이력을 보면 더욱 그러한 시각이 강해질 것이다.

김성규(56) 사장은 이렇듯 문화 예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문화 예술계에서 찾기 힘든 숫자 전문 예술인이다.

숫자와 관련한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의미로 학창시절 별명은 ‘회전곰’이라는 별명은 김 사장은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로 사회에 입문했다.

하지만 1998년 서울예술단의 연봉제 전환 자문을 맡은 일을 시작으로 회계법인 대표로 일하면서도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문화접대’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어려운 문화 예술계를 돕기도 했다.

이러한 노고로 김 사장은 2007년과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고, 산업정책 연구원 주최 대한민국 CEO 명예의 전당 ‘문화·콘텐츠 부문’상을 수상했다.

“하다보니 이렇게 왔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것 같은 것을 열심히 했다”라며 자기 삶의 여정을 요약하는 김 사장을 만나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서의 고민과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세종 문화회관 사장 선임 이전 공인회계사, 소프트웨어업체 사장, 운동기구회사 관리부장, 회계법인 대표,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 다양한 이력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직업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천직은 회계사라고 생각한다. 내 머리와 잘 맞는다. 구조적으로 잘 맞는 것 같다. 컨설팅 회사와 창투사에 갔다가도 회계사가 제일 잘 맞는 옷 같다고 생각해 다시 돌아갔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그만둔 후 다시 돌아가면 회계사를 또 할 것 같다.

회계사가 하는 일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숫자 보고 감사를 하다 보면 회계사의 영역이 넓어진다.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을 상대로 10여년 이상 세무를 담당해 보니 경영 자문 컨설팅을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영자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해당 기업의 큰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에 와서는 되도록 숫자를 안 본다. 회계자료는 안보고 어떻게 든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한다. 숫자에 매몰되면 정보는 있겠지만 세종의 문제는 조직 문화와 관련된 것이 많다.

-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는 조금 생소한데 왜 그런 이력이 만들어졌는지?

군대 갔을 때 공군 장교로 군대 회계 전산화 작업을 했다. 회계 구조나 이런 것을 가지고 전산을 담당하는 직원들 군인들과 회의를 하고 구조를 만들어나갔다. 전산 장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다가 컴퓨터를 알게 됐다. 당시 PC를 알게 돼 하나씩 배워나갔다. 로터스, D베이스와 프로그램 랭귀지 공부도 하다가 어느 정도 PC 개념을 알게 됐다. 그때가 아마도 1990년도쯤인 듯하다.

당시 회계사 중에 컴퓨터를 하시는 분이 많지 않았다. 회계 법인에서 전산 도입이 시작될 때였다. 제대를 하고 회계법인에 들어갔는데 한 기업에서 영업·회계·인사 관리·전산화 등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 회계법인 대표가 컨설팅하고 프로그램 수주까지 받아왔다. 어쩔 수 없이 소개 받은 프로그램 회사를 찾아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해당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프로그램 회사가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았다. 개발자들은 월급도 3개월 동안 못 받았었다. 결국 내가 3개월치 밀린 월급을 주고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영업을 하겠다고 하고 일을 계속했다. 윈도 시대가 열리면서 회사가 어려워졌고 결국 문을 닫았 지만 당시에 경험했던 것들이 지금까지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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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배우근기자kenny@sportsseoul.com

- 세법에 ‘문화접대’라는 개념을 관철했다. 지금까지의 성과와 향후 개선 방안에 대한 부분이 있다면?

2000년대 초반 한창 벤처 붐이 불고 있었고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였다. 또한 문화의 시대라고도 했다. 당시 R&D 투자에 세재 혜택을 줬고 창의력 부분에 혜택을 주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을 활용해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당시 교육 훈련비 소득 공제와 같은 것들이 나왔고 문화 접대비도 이러한 취지의 하나다.

하지만 당시 바로 그 개념이 통과되지는 않았다. 형평성 문제가 생겼다. 문화 현장에서는 순수 클래식이나 작은 연극, 공연은 혜택을 못 입고 고가의 뮤지컬만 혜택을 받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접대비 가운데 0.2% 정도만 쓰였다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체 접대비에서 0.2%면 200억원 규모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500~1000억원 수준이다. 당시 순수 예술 클래식 연극 단체에 관련 세제 효과가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200억원을 예술 분야에 그냥 주겠는가?

앞으로 문화 단체의 자체 노력이 더 필요하다. 문화 단체들은 그저 기업들이 표를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 분위기였다.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공연을 알리고 표를 팔기위한 노력을 한다면 향후 이런 분위기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제는 한국의 대표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 사장이다. 책임감이 무거울 듯한데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해야 할 과제를 꼽자면 조직 문화의 변화다. 회계사 입장에서는 측정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일을 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과 함께 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각각의 역량이 합쳐져 시너지를 낼 때 조직이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인위적으로 강압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변화의 요구를 느끼도록 하려 한다.

9개 예술단체가 있는데 똑같이 운영하려면 다들 불만이 생긴다. 단별로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공평하게 하다보면 획일적이 된다.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한다. 특성에 맞게 그룹을 나누고 세부적으로 나누고 있다. 협조 단계, 결제 단계 등등을 세분화해서 나누고 있는 중이다.

- 지금까지 파악한 세종문화회관이 가지고 있는 강점,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가?

세종문화회관은 강점이 굉장히 많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위치다.(웃음) 그뿐이 아니다. 공연장의 상징성은 단연 최고다. 아직도 고객만족 조사에서 만족도가 97%다. 상징성이 있고 대극장 기준 대한민국 최고의 극장이다. 리모델링 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오면 느낌이 ‘와~!’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세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시스템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만큼 내부에서 일하는 조직원들도 경험 면에서는 최고다. 특별한 일에 대처를 잘한다. 일례로 사무실 공간만 바꿔도 2일 만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더라.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의 대응 능력을 보면 훈련이 잘된 조직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들이 이전에는 단합이 돼서 하나로 시너지를 냈는데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개별화되고 있고 우리 조직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는 내부에서 소화했던 갈등의 문제가 외부에 나가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내부에서 일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도 이해가 된다. 공연장에서 가장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악, 무용, 뮤지컬, 합창, 오페라, 극단 등 9개 단체가 한 곳에 있는 ‘한지붕 여러가족’이다. 서로 다른 9개 단체를 조화롭게 이끄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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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배우근기자kenny@sportsseoul.com

- 과거 세종문화회관이라고 하면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중적인 전시나 공연 등이 이뤄지고 있다. 향후 세종 문화회관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지?

정체성을 두고 보면 ‘S시어터’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면이다. S시어터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이 올라가야 한다. 대중 예술이든 아니든 경계가 중요하지 않다. 대중 예술이 세종문화회관에 서면 클래식이 비판하기도 한다. 정말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 공연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조용필 선생님이 올라간다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노래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 전체를 꾸리는 것 자체가 퀄리티가 다르다. 그런 무대에 얼마든지 개방할 수 있다. 뮤지컬도 최고의 무대라면 언제나 올라간다.

S시어터는 새로운 것을 지향한다. ‘남들 안하는 것 뭐 없어’라며 올릴 공연을 찾는다.

미술관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최고를 지향할 수 없다. 워낙 탄탄한 국립현대 미술관과 시립 미술관 등 세종문화회관을 넘어서는 공간이 있다. 전시 쪽에서는 우리가 가진 강점은 위치와 네임밸류다. 이것으로 미술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냐, 남들이 하지 않는 작지만 우리만의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 임기 동안 혹시 유치해보고 싶은 공연이나 전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연은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이다. 하지만 지난해 했다. 10주년 기념작이었는데 많이 아쉽다. 그다음으로는 충무아트센터에서 했던 ‘프랑켄 슈타인’이 생각난다. 과연 그 무대를 세종문화회관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정기적으로 해야 할 것은 최고의 발레 무대라고 본다. 정기적으로 1년에 2회 정도 편성하고 싶다. 세계 최고 오페라도 무대도 올리고 싶다. 오케스트라도 최고 수준의 하나 국내의 서울 시향, KBS 가운데 하나 정도를 올리고 싶다.

상반기에 수준급의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를 올리고 다시 하반기에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를 구성하고 중간중간에 우리 예술단 공연을 올렸으면 한다.

- 다양한 경험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경력은 무엇인가?

회계법인에서 했던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깨달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문화 경영이었다. 두번째로는 경영자의 리더십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조정자 역할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조정을 해줘서 더 잘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것을 익혔던 시간이었다. 회계사들은 개별화 돼 있다. 어떻게 역고, 조직화하고 갈등 상황이 왔을 때 조정하는 것을 15년간 고민했다. 여기 와보니 개별화돼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묶어서 시너지를 낼까 고민을 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딱 맞는다.

- 앞으로 문화계에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문화계 그냥 놀 생각이다. 회계법인에 있을 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출근을 했다. 산에도 가고 공연도 보고 골프도 치는 생활을 했다. 여기 오니 재미도 있지만 매일 출근하려는데 힘들더라.

하지만 일을 그만두면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생을 즐기며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면 된다. 너무 많은 것을 잡으려고 해서 문제다.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한다. 대표였지만 남들보다 조금 받았다. 덜 일을 하면 조금 받은 것이다. 돈 욕심 안 내고 먹고살면 되지 즐겁게 살았다.

주변에서 집도 없고 차도 없다고 하면 놀란다. 하지만 나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문화생활도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성공한 삶인 듯하다. 성공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jwkim@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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