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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제공 | 대한축구협회

[아부다비=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지난 25일(한국시간) 한국과 카타르의 2019 아시안컵 8강전이 끝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믹스트존에서는 고개를 떨군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충격적인 8강 탈락에 대한 원인과 향후 각오를 짧게 전하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그 가운데 진지한 표정으로 긴 이야기를 나눈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의 반납을 선언한 미드필더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입니다.

구자철은 2010년대 한국 축구의 한 획을 그은 선수입니다. 그는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8강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데 기여했죠. 그는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는 꾸준히 주장 완장을 찼고 어린시절부터 사제로 호흡을 맞춰왔던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과 함께 도전한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캡틴 구실을 맡았습니다. 그는 2010년대 한국 축구의 환희와 절망을 모두 경험한 몇 안되는 태극전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2런던올림픽을 소화했고 2차례 월드컵(2014브라질, 2018러시아)과 3차례 아시안컵(2011카타르, 2015호주, 2019UAE)을 치렀습니다.

구자철은 2011년 1월 볼프스부르크 입단을 통해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뒤 줄곧 독일 무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대표팀에 부름을 받을때마다 장거리 비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은 시간이 갈수록 회복 속도가 더뎌지면서 남은 축구 인생을 위해서라도 태극마크를 내려놓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구자철은 취재진에게는 대표팀 내에서 막내 티를 벗은 이후부터 인터뷰를 통해 할말을 하는 선수로 각인이 돼 있습니다. 대표팀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에 전반에 대한 조언이나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한 적이 몇차례 있었습니다. 꽤나 인상적이었죠. 그렇다고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구자철은 대표팀을 떠나면서 아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A매치인 아시안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국가대표로서 작별을 고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벤투호는 예상밖의 패배로 4강에도 진출하지 못한 채 짐을 쌌죠. 구자철은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가진 마지막 믹스트존 인터뷰를 통해 결과에만 매몰돼 있는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습니다.

“모든 성공과 실패에는 과정이 뒤따릅니다. 사람이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전까지는 과정을 거쳐야하죠. 그 과정에서는 실패와 실수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정해진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실수나 실패가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선수들이 한국축구를 위해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실망보다는 앞으로의 목표를 이루는데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시도를 해봤는데도 안되면 그것마저도 과정이 되는 겁니다. 축구협회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들과 앞으로 보여줄 결과들을 믿고 지켜봐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너무 기다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울림이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아시안컵의 부진으로 인해 벤투호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느냐가 2022카타르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영입한 벤투 감독의 지도력을 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겠죠. 대표팀을 떠나면 남긴 구자철의 마지막 고언이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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