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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체육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폭행, 성폭행 등의 미투 운동은 매우 때늦은 감이 있지만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체육계 종사자 가운데 지금의 미투가 빙상, 유도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할 이는 없을 것이다. 여자 선수-남성 지도자의 관계에서는 수 없이 이런 일들이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의 조명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비인기 종목 피해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중삼중의 피해를 입게 된다. 태생적인 구조 탓이다.

체육계 미투운동이 번지며 다시 조명을 받은 박찬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부장의 “12년 전 감독의 신인 선수 성폭력과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과 “여성 지도자 50% 할당제 도입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법적인 강제성 없이는 남성 지배 구조의 스포츠계에서 미투 운동은 머나먼 일이다. 스포츠의 대통령이라는 체육회장의 사후약방문 식의 기자회견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론이 악화되고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자 부랴부랴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대응책이 준비돼 있다면 당연히 기자들의 질문도 받아야 했다.

미국 스포츠는 남여가 동등하다. 1964년 들불처럼 번진 민권운동(Civil Rights Act)은 8년 후 1972년 교육개혁법(Education Amendments)으로 꽃을 피웠다. 남여가 교육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하다는 ‘타이틀 IX’다. 하와이 연방하원의원 출신 패스티 밍크가 주도했는데 2002년 그녀가 사망한 뒤 ‘페스티 T. 밍크 기회균등 교육법(Pasty T. Mink Equal Opportunity in Education Act)’으로 법 이름을 고쳤다. 밍크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교육개혁법은 스포츠에서도 남여 동등을 이끌었다.

타이틀 IX가 법으로 만들어진 뒤 미국의 고교·대학 스포츠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여성들의 스포츠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2006년 조사에 의하면 고교에서는 여학생들의 스포츠 참여가 타이틀 IX 이전보다 9배, 대학은 450%가 증가했다. 2008년 조사에는 대학에 무려 9101개 여자팀이 늘었다. 학교별로 8.65개 팀이 증가했다. 종목별로 증가된 추세는 농구 98.8%, 배구 95.7%, 축구 92%, 크로스 컨트리 90.8%, 소프트볼 82.9% 순이다.

여자팀이 증가되면서 남자팀은 줄었다. 대학스포츠를 관장하는 NCAA에 의하면 1987년~2002년 남자팀은 육상, 수영, 테니스, 레슬링 등 1216개 종목이 사라졌다. 타이틀 IX로 인해 NCAA 디비전I 스쿨에 가장 인기가 좋은 풋볼팀이 있을 경우 여자 종목 팀도 몇 개 이상 구성돼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 팀은 형식적인 게 아닌 장학금을 주는 ‘대표팀(Varsity Team)’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려대에 남자 야구, 축구, 농구 팀이 있을 경우 양성 평등을 위해 여학생 스포츠팀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자팀의 감독도 여성이 주를 이룬다. 국내 스포츠계에서 성폭력 행위가 벌어지는 이유는 여자 종목을 거의 남자 감독과 코치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는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대학 여자팀 스포츠로 가장 인기가 높은 농구의 경우 2015~2016시즌 351개 팀에 56%가 여성 감독이었다. 언론들은 2007~2008시즌 최고조를 이룬 63%보다 줄었다며 문제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국내 실정과는 매우 동떨어진 화제다. 2012년 스포츠 전문방송 및 사이트인 ESPN은 매거진을 통해 처음으로 여성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후 인터넷에 espnW 코너를 신설해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차별과 성범죄를 감시하고 있다.

타이틀IX와 같은 제도 덕에 미국에는 훌륭한 여성 지도자들이 탄생했다. 테네시 대학 여자 농구팀을 8차례 NCAA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끈 팻 서미트(은퇴) 감독은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대통령 자유메달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이다. 그러나 여자 프로농구에 여성 감독이 전무한 게 국내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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