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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대령기자]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바뀐다면?'


당혹, 충격, 혼란의 소용돌이가 예상되는 '바디 체인지'는 해묵은 소재임에도 여전히 재미있는 장치다. 새해에도 한국형 보디체인지 코미디 영화 '내 안의 그놈'이 강력한 웃음을 앞세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일 극장가를 찾은 '내 안의 그놈'은 개봉일부터 박스오피스 2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아쿠아맨' 등을 제치고 '말모이'와 함께 한국 영화의 흥행 돌풍을 이끌고 있다.


몸이 바뀐건 순전히 사고 때문이다. 우연히 옥상에서 떨어진 '아싸' 고등학생 동현(진영 분)이 조폭 두목 판수(박성웅 분)를 덮치면서 두 사람의 몸이 바뀌어 버린다. 고교생의 몸이 된 판수는 첫사랑 미선(라미란 분)을 만나고 존재도 몰랐던 딸 현정(이수민)까지 알게되며 코믹환장극의 주인공이 된다. 


국내 영상물 시장에서 바디체인지를 신선한 소재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사실 지났다. 이미 '시크릿 가든' '아빠는 딸'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소비됐다. '우리가 만난 기적'이나 '수상한 그녀' 등도 넓은 의미에서의 바디체인지 소재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소재의 신선도를 계량할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바늘은 신선함보다는 진부함 쪽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신선함의 정도가 영화의 퀄리티와 비례하진 않듯 진부함이 영화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 영화로서 코미디 영화는 관객에게 충분한 폭소를 선사하는 것이 곧 미덕이다. 서로의 몸이 바뀌고 이로 인해 일어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일단 훌륭한 웃음의 장치가 되기에 잘만 활용한다면 여전히 흥행의 동력이 된다.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는 '내 안의 그놈'은 영화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일단 장르 영화로서 소임은 다한 영화라고 평가해도 무방해보인다.


'내 안의 그놈'의 선전과 함께 다시 주목받게 된 바디체인지 소재의 영화. 그 중 대표적인 두 편을 꼽아봤다.


# '프리키 프라이데이' : 보디체인지 영화의 정석


1976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프리키 프라이데이(2004)'는 바디체인지 영화의 모범 답안지라고 할 수 있는 영화다. 여기선 모녀의 몸이 바뀐다. '내 안의 그놈'이 모르는 사이였던 조직폭력배 남성과 평범한 고등학생의 몸이 바뀌는 것과는 정반대다.


서로의 극과 극 성향으로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중년의 심리학 박사 테스(제이미 리 커티스 분)와 자유분방한 고등학생 딸 애나(린제이 로한 분). 두 사람은 모두 다가오는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테스는 사랑하는 연인과 성대한 결혼식(재혼이다)을 올리는 날이고, 애나는 꿈꿔왔던 록 밴드 오디션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을 앞두고 두 사람의 몸이 바뀌는 기이한(Freaky) 대참사가 일어나고 만다. 하지만 놀라워만 하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모녀는 결국 몸이 바뀐 채 서로의 바쁜 일상 속에 대신 들어가게 된다.


'프리키 프라이데이'는 몸이 바뀐 상황이 가져다주는 웃음과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전달되는 잔잔한 교훈과 감동까지 담고 있다. 탁월한 점은 균형 감각이다. 중반부까지는 코미디 위주로 진행되지만 지나치게 과하지 않다. 그래서 가볍지도 않다. 교훈적 내용으로 바뀌는 후반부에는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과하지 않으니 여운의 휘발성도 적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은은한 훈기만 남는다.


# '너의 이름은' : 보디체인지 소재는 거들 뿐.


'너의 이름은(2017)'은 앞선 두 영화와 다르게 이성 간의 바디체인지를 담고 있다. 중반부까지는 코미디를 중심으로 극을 진행하다가 후반부에서는 무거운 내용으로 전환된다는 점은 '프리키 프라이데이'와 같지만 그 결은 다르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처음엔 이상한 꿈 정도로 여기던 두 사람은 마침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기현상이 계속되면서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쌓아가던 그때 두 사람의 몸은 더이상 바뀌지 않게 된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골에서의 삶과 도시에서의 삶 각각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마침내 두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며 마무리될 것 같지만 영화 중반부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장르로 스며든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로맨스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일본 국민이 갖고 있는 집단적 상처를 어루만져줬다. 뜻밖의 순간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는 같은 기억을 가진 많은 이들을 조용히 위로한다.


'너의 이름은'은 국내에서도 약 371만 명의 관중을 모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는 최고 흥행 기록이다.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바디체인지 소재의 정석으로 승부해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면 '너의 이름은'은 변주로 흥행을 이끈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daeryeong@sportsseoul.com


사진ㅣ영화 '내 안의 그놈' 포스터, '프리키 프라이데이' '너의 이름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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