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양현종-류현진
양현종과 류현진이 6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진행된 ‘2018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시상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있다. 2018.12.06.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한국야구 최고 좌투수가 모처럼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접점을 찾기 힘들어 보일지 몰라도 둘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돈독하게 우정을 쌓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을 이룬 류현진(32·LA 다저스)과 KBO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양현종(31·KIA)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얘기들을 스포츠서울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시원하게 풀어놓았다.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연령대가 비슷하다고 해도 류현진과 양현종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나선 기간은 2주도 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8년 이상이 지났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ML)에 진출한 것도 6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둘은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절차탁마했다. 시즌 중에는 서로의 투구 영상을 찾아보며 수시로 연락을 취했고 오프시즌 류현진이 귀국할 때마다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러면서 둘은 언젠가는 다시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정상에 도전할 것을 다짐했다.

스포츠서울과의 신년 인터뷰 자리가 이번 겨울 둘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마치 오랫동안 함께 했던 형제가 재회한 것처럼 양현종은 류현진에게 덥석 안겼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양현종은 “현진이형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다. 당시 함께 대표팀에 소속됐는데 그 때부터 현진이형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진이형이 중요한 구실도 했고 워낙 뛰어난 투수라 여러가지를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 현진이형이 ML에 진출한 후에도 경기가 끝나면 문자를 통해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현진이형 경기를 보면서 배우는게 많다”고 류현진의 팬임을 자처했다. 류현진은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것은 아니다”고 장난스럽게 고개를 저으면서 “사실 현종이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부끄럽다. 현종이는 대한민국 최고 투수아닌가. 립서비스를 하는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 류현진의 커브를 갖고 싶은 양현종

2018시즌 후 첫 만남인 만큼 자연스레 한 시즌 동안 서로의 투구를 돌아봤다. 먼저 양현종은 “현진이형은 한국에 있을 때는 커브를 거의 안 던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커브의 비중이 정말 높아졌다. 커브로 마음껏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더라. 현진이형의 제구력은 ML에서도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커브까지 자유자재로 던지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성적의 원인도 커브인 것 같다”고 류현진의 2018시즌을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리뷰했다.

양현종의 평가대로 류현진은 2018시즌 어느 때보다 커브의 비중을 크게 뒀다. ML 통계전문 사이트 팬그래프(Fangraphs.com)에 따르면 빅리그 첫 해였던 2013시즌 류현진의 커브 비중은 9.5%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류현진은 직구와 체인지업의 비중이 76.5%에 달했고 세 번째 구종으로 슬라이더를 구사했다. 하지만 2018시즌에는 커브의 비중이 18.6%로 2013시즌의 두 배 가량 늘었다. 류현진의 트레이드 마크인 체인지업과 같은 비율이다. 직구,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까지 4가지 구종을 앞세워 타자를 마음껏 요리하고 있다.

류현진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커브도 두 가지를 나눠서 던진다. 스트라이크를 잡는 커브가 있고 상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커브가 있다. 두 커브의 구속차가 시속 6~7마일(약 10~11㎞) 정도 된다. 그래서 효율도 크지 않았나 싶다. 한 타석에서 같은 커브도 스피드 차이가 나면 타자가 대처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며 “이전부터 릭 허니컷 투수코치께서 커브를 향상시켜보자고 제안하셨다. ML에서 나는 구속이 빠른 투수가 아니다. 모든 공을 정확하게 던져야 한다. 빅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빙패스트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컷패스트볼을 연마했고 커브도 익혔다. 다행히 결과가 잘 나온 것 같다”고 돌아봤다.

류현진의 얘기를 들은 양현종은 “현진이형 공은 다 갖고 싶지만 지금 시점에서 가장 갖고 싶은 공은 커브다. 사실 나는 아직 커브가 완전치 않다. KBO리그도 투수가 살아남으려면 커브처럼 각도와 속도 변화가 큰 공이 필요하다. 오프시즌과 스프링캠프 때 커브를 연구하고 연마할 계획이다. 어떻게 하면 잘 던질 수 있을지, 어느 상황에서 던지는 게 효율적인지 공부하고 있다”며 눈을 번뜩였다. 그러면서 양현종은 “현진이형의 투구를 통해 공부한다. 구사하는 구종도 비슷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볼배합에 포커스를 맞춰서 바라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마음 반, 우리나라 대표 투수를 응원하는 마음 반으로 지켜본다”고 미소지었다.

[포토] 류현진-김재환-양현종 \'수다 삼매경\'
LA 다저스 류현진이 6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진행된 ‘2018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시상식에서 두산 김재환, KIA 양현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 12. 6.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양현종의 내구성이 부러운 류현진

부러움의 대상이 한 쪽으로만 쏠린 것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양현종의 꾸준함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5년 연속 170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두 자릿수 승을 기록한 양현종이 선발투수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류현진은 “현종이가 한국 최고 투수인 것은 꾸준하기 떄문이다. 정말 건강하고 꾸준하게 잘 던지지 않나. 200이닝 이상을 던진 시즌도 있었고 그 다음 시즌에도 200이닝 가깝게 던졌다. 몸관리를 정말 잘 한다는 증거”라며 “현종이의 이런 점은 내가 배워야 한다. 안 그래도 그동안 현종이에게 몸관리에 대해 물어봤는데 이번에 좀 더 자세히 물어볼 계획이다. 현종이는 앞으로 계속 좋아질 투수”라고 양현종을 치켜세웠다.

류현진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도 꾸준함이다. 류현진은 지난달 초부터 잠실구장에서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와 함께 2019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김 코치를 다저스 구단 소속 전담 트레이너로 고용한 그는 이달 중순부터는 일본 오키나와로 향해 불펜피칭까지 소화할 계획이다. 다쳤던 내전근 부위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실전 등판이 가능한 상태로 2월 중순부터 열리는 스프링캠프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류현진은 지난해 5월 3일 애리조나 원정경기에서 갑작스럽게 내전근 부상을 당한 것을 두고 “사실 그날 전혀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평소와 똑같이 던졌는데 갑자기 통증이 오더라. 그냥 사고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내전근 부상의 경우 오히려 컨디션이 좋을 때 당할 수 있다. 몸이 가볍고 무게 이동도 잘 될 때 자신도 모르게 평소보다 보폭을 크게 가져가다가 다친다. 현진이가 내전근 부상은 처음 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스로 재발 방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만일 류현진이 다가오는 시즌 2018시즌의 괴력을 이어가고 꾸준함까지 증명한다면 대형 FA 계약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전망이다. 류현진은 “사실 아직 부상 당하기 전의 공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구다. 건강한 몸으로 정확히 던져야 한다”면서 “아프지 않고 로테이션만 꾸준히 소화한다면 좋은 성적이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 팀 전력을 고려하면 시즌을 완주할 경우 20승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2019시즌 목표를 시즌 완주와 20승으로 높게 잡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대투수의 비결, 데이터 통한 지피지기

류현진과 양현종은 구종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자신과 상대를 향한 데이터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많은 데이터 중 자신에게 맞는 데이터에 우선순위를 두고 목표점을 잡는다.

양현종이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데이터는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선발투수는 WHIP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WHIP가 낮을 수록 효율적인 투구를 했다는 것 아닌가. 최근에는 다른 기록보다 WHIP에 신경쓰고 어떻게 하면 WHIP를 낮출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현진이형의 볼배합을 유심히 보는 이유도 어떻게 구종을 섞어야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양현종은 다짐대로 WHIP를 낮게 유지하고 있다. 2015시즌 1.24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후 2017시즌과 2018시즌 모두 1.31의 준수한 WHIP를 올렸다. 양현종은 앞서 다짐한 것처럼 커브를 향상시키고 보다 효과적인 볼배합을 구사하면 WHIP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는 “2017시즌의 좋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더 발전해야 한다. 2018년은 개인과 팀 모두 너무 아쉬운 해였는데 2019년에는 2018년보다 여러모로 더 좋은 시즌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류현진은 이전보다 상대 타자를 연구하는 시간을 많이 둔다고 했다. 그는 “구단에서 정말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전력분석 시간 때 허니컷 코치님, 그리고 포수와 상대 팀 뛰어난 타자를 많이 살펴보는 편이다. 경계해야 할 타자가 잘치는 코스와 못치는 코스가 어느 쪽인지, 어떤 구종에 강하고 어떤 구종에 약한지 정리한 후 경기에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류현진은 다저스가 치열하게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벌이던 지난해 9월 18일 콜로라도와 경기에서 강타자 놀란 아레나도의 장타를 차단했다. 장기인 체인지업을 숨겨두고 아레나도가 예측하지 못한 코스와 구종을 구사해 아레나도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류현진은 “아레나도는 좌투수에게 너무 강하다. 좌투수 상대 타율이 4할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아레나도의 데이터를 보고 무모할 정도로 특정 구종만 던져보기로 했다. 체인지업을 많이 맞았으니까 아예 체인지업을 빼고 승부하기로 했는데 중요한 경기서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날 류현진은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양현종
KIA 양현종이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등판해 승리를 지켜내며 통합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기뻐하고 있다. 2017. 10. 30.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에이스 투수의 로망, 우승 앞둔 구원 등판

류현진과 양현종 모두 최고투수 답게 소속팀을 최고무대로 올려놓은 경험이 있다. 류현진은 2018시즌 막바지 괴력을 발휘하며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힘을 보탰고 포스트시즌서도 클레이턴 커쇼, 워커 뷸러와 상위 선발진에 자리했다. 2006시즌에는 입단과 동시에 프로무대를 정복하며 한국시리즈까지 경험했다. 양현종은 2009시즌 첫 번째 우승을 경험했고 2017시즌에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두 번째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122구 완봉승을 거뒀고 5차전에선 9회말 깜짝 구원 등판해 직접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었다.

류현진은 당시 양현종의 모습을 돌아보며 “사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부러웠다. 현종이가 우승을 두 번이나 한 게 부러웠고 마지막 순간 정말 멋지게 구원 등판해 우승의 주역이 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ML 선발투수들도 현종이처럼 9회 우승을 확정짓는 투구를 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아마 각 팀의 모든 에이스가 시리즈를 치르며 계산에 들어갈 것이다. 보스턴도 월드시리즈 마지막에 크리스 세일이 나오지 않았나. 우리 팀의 커쇼도 챔피언십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모든 선발투수가 마지막 순간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7차전 선발 등판을 조금 아쉬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양현종은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잠실구장 불펜에서 나오는데 그 어느 때보다 큰 환호를 받은 것 같았다. 이후 머리 속이 하얘졌다. 다행히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코치님과 선배님들이 투수는 머릿속이 빈 상태로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아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미소지었다.

2010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KIA타이거즈 평가전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KIA와의 연습경기 도중 임태훈, 이대호, 류현진과 양현종이 경기 중 덕아웃 밖으로 나와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사진왼쪽부터) 2010-11-01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 양현종 준결승·류현진 결승, 2021 WBC 원투펀치 약속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재회’를 바랐다. 류현진과 양현종은 ML 선수들의 국제무대 출전이 가능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서 다시 원투펀치를 이루자고 다짐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현종이 중국과 준결승, 류현진이 대만과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정상에 오른 것처럼 2021 WBC서도 빅게임 피처의 면모를 보여 정상에 도전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양현종은 “앞으로 내가 얼마나 대표팀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현진이형과 꼭 함께 나가고 싶다”면서 “대표팀 중요한 경기에 선발 등판하면 긴장감과 부담감이 정말 크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때 현진이형이 긴장해서 입술이 텄던 게 이해가 되더라. 국제무대 결승전은 정말 힘든 자리다. 현진이형이 와서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옆에 있는 류현진을 바라봤다. 양현종은 류현진의 빅리그 진출 이후 김광현과 국제무대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분담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서도 일본과 결승전에 선발 등판했다. 당시 그는 6이닝 무실점으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류현진은 양현종에게 “지금 그 힘든 것을 나한테 또 하라고?”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안 그래도 미국에 있으면서 WBC에는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13 WBC때는 계약 첫 해였고 2017 WBC 당시에는 수술 후 재활 중이었다. 2021 WBC는 여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뽑아주신다면 다시 현종이와 태극마크를 달고 환호하고 싶다”고 11년 만의 대표팀 합류를 기대했다. 그러자 양현종은 “현진이형과 원투펀치라면 좋다. 준결승전은 자신 있다. 결승전을 현진이형이 맡아주면 된다. 아주 든든하다”고 일찌감치 원투펀치 결성을 마무리지었다. 21세기 한국 최고 좌투수 류현진과 양현종의 기분 좋은 약속이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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