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여자 팀추월, 뒤에 너무 쳐진 노선영
노선영(오른쪽)이 지난 2월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김보름, 박지우보다 훨씬 뒤에 처져 결승선에 들어오고 있다. 강릉 | 최승섭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평창 올림픽은 언론사에도 ‘대박’을 안겨준 대회였다. 디지털 콘텐츠 시대의 척도로 불리는 ‘클릭 수’에서 그랬다. 온라인 흥행을 활활 타오르게 한 선수가 하나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중거리 국가대표 노선영이었다. 그가 속한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평창 올림픽 예선에서 이른바 ‘왕따 주행’을 한 다음 날, 2월20일이 대표적이었다. 노선영, 김보름, 백철기 감독 등 대표팀 멤버들의 기자회견과 인터뷰 등이 열렸는데 이 사건과 관련해 포털 네이버에서 100만 클릭을 넘긴 기사가 하루에만 무려 7개나 쏟아졌다. 500만을 돌파한 기사도 있었다. ‘하루 100만’ 클릭 기사는 평소엔 일주일에 1~2건 나올까 말까하다. 평일 낮 핵폭탄급 관심이 노선영과 관련 인물들에게 쏠린 것이다.

노선영의 등장은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규정을 잘못 해석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평창 올림픽 개막 직전 대회 참가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지도부와 코칭스태프들은 노선영에게 사과하거나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다려보자’는 식의 책임 회피로 4년간 흘린 한 선수의 땀을 뭉개버렸다. 권력 쥔 이들이 메달과 상관 없는 선수에게 행한 ‘갑질’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노선영은 다행히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징계로 뒤늦게 올림픽 쿼터를 얻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도 늦게나마 사죄했다.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더 큰 폭풍이 뒤에서 다가왔다. 2월22일 여자 팀추월 예선에서 노선영이 김보름, 박지우 등 두 선수 한참 뒤에서 들어오는 ‘왕따 주행’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노선영과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간주되는)김보름을 국가대표에서 영구제명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틀 사이 60만명 이상이 동조했다.

김보름
김보름이 2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전날 열린 팀추월 경기 관련 기자회견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릉 | 최승섭기자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결국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빙상경기연맹 특정감사 및 관리단체 지정 권고로 연결됐다. ‘빙상계의 절대 권력’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직에서 물러나 지금 막다른 코너까지 몰렸다. 평창 올림픽 직전 대표팀 코치에게 폭행당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법정 증언 등과 어우러져 2018년은 갑질과 폭력, 성폭력에 대한 체육계의 경각심이 한 차원 더 높게 형성되는 기간이 됐다. 금메달이 아니라 깨끗한 스포츠문화가 더 소중하다는 국민적 메시지를 체육계가 명심하게 된 기폭제가 됐다.

일각에선 노선영 사건과 관련된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문체부는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특정 선수들(김보름이나 박지우)이 노선영을 일부러 왕따시키기 위해 주행한 것은 아니었다”고 발표해 국민청원에 나선 60만명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팩트 확인보다 여론몰이에 휩쓸려 어느 누군가를 마녀사냥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컸다. 1년이 다 된 지금 김보름은 이번 시즌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금메달을 따냈다. 평창 올림픽에서 자신이 받았던 오해와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다. 노선영 역시 노선영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국내대회 출전 등을 거쳐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 유력하다. 노선영이 몰고 온 큰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가 던진 메시지가 빙상계, 더 나아가 체육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지켜봐야 한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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