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주류 잡학사전] 대한민국 소주의 역사
    • 입력2018-11-09 11:29
    • 수정2018-11-0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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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소주브랜드팀 김경훈 팀장. 제공 | 하이트진로
[스포츠서울]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소주’라 답할 만큼 소주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술입니다. 하지만 ‘소주의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역사학자들은 13세기 고려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소주가 우리나라에 전파됐다고 말합니다. 한편 개성에서는 최근에도 소주를 ‘아락주’라 했는데 ‘아락’은 증류주를 뜻하는 아랍어이며 소주는 중세 페르시아에서 시작됐다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주는 쌀로 발효주를 만들고 소줏고리라는 옹기를 활용해 증류했는데요. 증류를 거치면서 발효주에 비해 양이 확연히 줄어드는 소주는 당시 귀한 술이었고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자연스레 각 지역과 집안마다 고유의 소주 레시피가 발전하게 됐습니다. 쌀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 조선시대에 수차례 금주령이 시행되었지만 소주의 인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세수를 확보하고자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기고 양조장 설립을 허가제로 변경한 이후,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집에서 술 빚는 것을 엄격히 단속했습니다.

1924년 10월 순수 민족 자본으로 평남 용강군에 현 ‘참이슬’ 탄생의 토대가 된 진천양조상회(㈜진로의 전신)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진로’에서는 35도짜리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판매했고 전체 소주 시장에서 선두를 달렸다고 합니다. 이후 정부에서 1965년에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을 시행하였고 양곡을 원료로 하는 주류(증류식 소주 포함)의 제조를 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고구마나 타피오카를 원료로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해 생산하는 소주로 대체됐습니다. 이 연속식 증류방식은 이취가 없고 균일하며 깨끗한 주정을 만들어내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현재 위스키, 보드카 등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1973년에는 정부에서 1도 1사의 원칙(자도주법)을 제정해 주류제조업체를 통합했고, 30도가 넘던 소주의 알코올 도수도 25도로 낮아지면서 소주는 대중적인 술이 됐습니다. 이때부터 각 지방에도 소주가 등장하였는데 서울·경기는 ‘진로’, 강원은 ‘경월’, 경북은 ‘금복주’, 경남은 ‘무학’, 부산은 ‘대선’, 광주는 ‘보해’ 등이 그것입니다. 1996년에는 ‘자도주 의무 구매’(시도별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 생산량 50%를 해당 시도에서 소비)가 없어지면서 지역 소주간 경쟁이 치열해졌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주병과 알코올 도수도 세월에 따라 변화했는데요. 소주병이 현재와 같은 녹색병이 된 것은 1994년 이후 부터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병 모양도 색도 각기 달랐습니다. 1994년 이후 일부 주류 제조사에서 소주를 녹색병으로 변경했고 이후 각 제조사별로 병의 신규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녹색병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면서 현재의 소주병으로 통일됐습니다.

소주 도수는 9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소주 제품이 25도였는데요, 1998년에 ‘진로’에서 23도의 ‘참이슬’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후 소비자 입맛과 트렌드를 감안하여 각 제조사별 소주의 주질과 도수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 소주브랜드팀 김경훈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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