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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경기장을 가득 채운 ‘2018 롤드컵’ 현장 관중들

[스포츠서울 김진욱기자] 문학경기장에 모인 2만6000여명이 지르는 함성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지난 3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는 중국 IG(빅터스 게이밍)와 유럽의 프나틱이 맞붙은 ‘2018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파이널이 개최됐다. 롤드컵 결승의 함성은 전날인 2일 바로 옆 야구장에서 펼쳐진 SK와 넥센의 KBO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의 함성을 넘어섰다. 관중수에서만 봐도 롤드컵은 2만6000여석 관중석이 모두 매진됐다. 하지만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는 최대 2만5000석 문학 야구장 관중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특히 롤드컵에 오른 팀은 중국의 IG와 유럽의 프나틱이었다. 지난 2013년부터 5년간 롤드컵 왕좌를 놓치지 않았던 한국은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롤드컵 8강에서 모두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국내 관중들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월드컵이나 올림픽 주요 경기를 보듯이. e스포츠가 얼마나 글로벌한 스포츠 이벤트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장관 속에서 e스포츠 종주국으로 여겨졌던 한국의 현실이 그 어느 때 보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국 e스포츠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소식이 바로 다음 날인 4일 이어졌다. 블리자드의 게임 전시회이자 e스포츠 행사인 블리즈컨에서 한번도 놓치지 않았던 스타크래프트 종목 우승을 다른 나라에 내주고 준우승에 머문 것이다.

곳곳에서 한국 e스포츠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e스포츠에 대한 편견과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국내 체육계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성장하고 있는 e스포츠 시장에서 나날이 뒤쳐지고 있다.

스포츠 시장 가운데 최대로 꼽히는 중국이 이미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고 아시안게임에 시범종목으로 나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스포츠 시장인 미국도 e스포츠를 기존 스포츠화시키고 산업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스포츠 주요 이벤트가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급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데이터도 있다. 특별한 데이터가 없지만 스포츠 시장 가운데 가장 빠르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e스포츠라고 해도 반론을 제기할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종주국이라고 자부해온 한국은 이러한 현상들이 남의 집 일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이동섭 의원(바른미래당)이 “e스포츠는 게임입니까. 스포츠입니까”라는 질문에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닌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치의 주저도 없이 답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체육계를 보면 이런 흐름에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명확하게 말해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산업이 아니다. 대부분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프로스포츠도 산업 논리보다는 기업 홍보 효과 정도로만 바라보고 있다.

체육계 수장도 우리의 스포츠 산업이 얼마나 성장했느냐를 고민하기보다는 국가 지원이나 공공 자금에 대한 지출이 제대로 됐는지 인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선수촌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두고 국감장에서 난타당한다. 심지어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이상한 현상이 체육계를 뒤흔들기도 한다. 체육계의 행정 자체가 공무원 시스템과 다르지 않으니 산업을 논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e스포츠는 그저 게임일 수 밖에.

한때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체육계의 핵심 문제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e스포츠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한국의 e스포츠 산업을 겨냥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다. 이번에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IG도 감독을 비롯해 주요 선수들이 한국 국적이다. 한국 e스포츠의 핵심 인력이 ‘헐값’에 중국과 미국에 팔려 그 나라 e스포츠 산업 성장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이 미국 야구 시장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작지만 막강한 인터넷 환경과 세계 최고 e스포츠 인력을 가지고 e스포츠 콘텐츠 강국이자 종주국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이미 지났는지도 모른다.

jwkim@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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