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호
울산 현대 박주호가 26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끝난 K리그1 30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100일 만에 그라운드 복귀전을 치른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스포츠서울 카메라를 향해 파이팅 포즈하고 있다. 울산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울산=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지나간 일은 신경 안 쓰려고 한다. 과거에도 장기 부상 이후 다시 올라선 적이 있으니 긍정적으로 하면 된다.”

박주호(31·울산현대)는 최근 KBS 인기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 ‘나은이 아빠’로 더 유명해졌다. 유럽에서 활동한 20대 시절부터 축구 외엔 박주호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시즌 중 예능을 병행하는 선택을 한 건 뜻밖이었다. 박주호는 26일 제주와의 홈경기를 마친 뒤 “(먼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동국 형이 좋은 본보기가 됐다. 아이들과 추억을 쌓는 것도 좋지만 K리그와 소속 구단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올해 유럽 생활을 접고 K리그에 진출한 뒤 ‘K리그 전도사’ 구실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진정성을 심었다. 더구나 선배 이동국이 예능 출연을 하면서도 변함없는 경기력을 뽐낸 것도 박주호에게 믿음을 줬다. 그는 “구단에서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지지해주셨지만 본업을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동국이 형에게 평소 (방송하면서)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는지 물어보곤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송국에서도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일정을 조정해주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웃었다.

박주호는 이날 정확하게 100일 만에 실전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지난 6월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열린 스웨덴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부상으로 전반 교체된 뒤 처음이다. 이날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했다가 후반 막판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서 팀의 3-2 신승을 견인했다. 그는 “월드컵 앞두고 대표팀에서 거의 한 달을 지냈으니까 울산 소속으로 경기를 뛴 건 4개월만이다. 100%의 몸은 아니지만 90분을 다 뛰려고 스스로 제어했다. 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는데 이겨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울산이 최근 2위 경쟁을 하며 오름세를 타고 있고 박주호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홈 팬에게 더 주목받고 있기에 이날 복귀전에 심적 부담도 클 법했다. 그는 “선수라면 부담은 늘 안고가야 한다. 방송을 하면서 울산 시민들께서도 더 많이 알아봐 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포토] 신태용 감독, 부상당한 박주호를...
박주호가 지난 6월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전반 상대와 경합 중에 부상을 입으면서 신태용 감독 앞에서 쓰러지고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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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의 스위스인 아내가 18일 스웨덴전에서 부상을 당해 목발 짚은 남편 박주호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출처 | 야축동 인스타그램

스웨덴전은 박주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꿈꾸던 순간이었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 김진수의 부상 낙마로 대체 발탁됐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서른을 넘긴 박주호에겐 이번 월드컵이 간절했다. 한국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월드컵 때문이었다. 계획대로 울산에서 꾸준히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고 지난 3월 대표팀의 유럽 원정 2연전에서 맹활약하면서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웨덴전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한 그는 한국의 초반 기세를 주도했다. 큰 무대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한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패스가 돋보였다. 그러나 전반 28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아웃됐다. 그의 월드컵은 28분이 전부였다. 박주호는 “현장에 가족이 와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에 있는데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눈물이 많이 났다. 다만 동료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 (라커룸에) 선수들이 들어왔을 때 다른 곳으로 나가 있었다. 후반전 벤치에 앉기 전 마음을 잡아야할 것 같아서 혼자 라커룸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뒤 나갔다”고 밝혔다. 박주호는 조기 귀국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다. 경기에 뛰지 못해도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했다.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에서 손흥민의 두 번째 골이 터졌을 때 박주호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려가 동료와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는 “너무 기쁜데 (뛰어갈 때) 많이 아팠다”고 웃으며 “후배들이 유종의 미를 거둬줘서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포토] 박주호-손흥민, 감격의 포옹...
박주호가 6월27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손흥민을 끌어안고있다. 카잔(러시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박주호는 다시 뛴다. ‘벤투호’로 갈아탄 축구대표팀 체제에서 ‘멀티 플레이어’ 박주호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자원이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대표팀은 늘 꿈이 돼야 한다. 경기에 나가면 책임감 있게 뛰고 못 나가더라도 출전한 선수를 지지해주는 게 대표선수다. 계속 도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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