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 아이돌을 위시한 대중음악 산업은 팽창하고 있지만 음악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는 한국에서 '록 밴드'가 대중성을 얻고 성공하기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13년간의 익숙했던 활동을 접고 오로지 록 음악을 위해 홀로서기에 나선 이가 있습니다. 노라조 전 멤버이자 현재 유튜브 채널 '이혁TV'를 운영하고 있는 가수 이혁(이재용·40)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혁은 멤버 조빈과 함께 지난 2005년 2인조 그룹 '노라조'로 데뷔, 재치 있는 가사와 엽기 스타일에 가까운 파격적인 분장으로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국적인 외모와 훤칠한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고음으로 '고음 가창력 괴물'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죠. 그러던 중 지난해 2월, 노라조에서 탈퇴하고 '이혁밴드'란 이름으로 기타리스트 송준호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선물 받은 CD 속 찢어지는 드럼 소리가 좋아 시작하게 된 '록'. 어느덧 14년 차 가수가 된 이혁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소신이 뚜렷했고, 자부심도 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록의 성지인 채널을 만드는 게 '이혁TV' 의 목표"라고 말하는 이혁에게선 여전히 식지 않은 록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또 이 모든 걸 소화하기 위한 자기관리 역시 굉장히 철저했습니다.


"제 진짜 음악은 지금부터"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혁을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Q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이 궁금해요.


13년 동안의 노라조 활동을 마치고 지난해부터 제 음악을 하고 있어요. 특히 올해 4월 4일, '이혁TV'라는 채널에 첫 콘텐츠를 올리면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그전엔 유튜브에 대해 잘 몰라서 '굳이 저걸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2년 정도 공연부터 앨범, 행사, 록 페스티벌까지 다 해봐도 그다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뽑아내지 못했어요. '우리가 안 해본 게 뭐가 있지' 생각하다가 보니 유튜브가 남았더라고요. 그래서 올 초부터 작정하고 만들기 시작했어요.


Q : '이혁TV'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표가 무엇인가요?


유튜브의 스펙트럼은 무한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기에 집중해보자 한 거죠. 유튜브에 올리는 모든 노래를 믹스부터 마스터까지 다 저희가 만들어요. 대충할 바에는 아예 하지 말자 주의에요. 심지어 BJ 제안도 많이 받았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토크 형식보단 음악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는 록의 성지인 채널을 만드는 게 '이혁TV' 채널의 목표에요. '이 사람보다 록을 잘 다루고 이 사람보다 밴드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 채널은 없을 거다'라고 인정받는 게 제작 목표에요. 더 나아가자면, 향후 3~4년 뒤에 록이 사랑받는 영국, 미국 시장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Q : 5개월 만에 15만 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게 된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혁TV' 채널에 재생목록 중 하나가 '도장 깨기'인데요,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곡들을 골라서 도전하는 거예요. 남하고 경쟁 하는 게 아니고 내가 그 곡하고 싸우는 거죠. '쾌걸 근육맨 2세' OST인 '질풍가도'를 5키 높여 부른 게 있는데 조회수가 110만 건이 넘었어요. 이 영상을 보고 '이혁이 이것도 부를 수 있어?' '이걸 몇 키 높여서 불렀대' 같은 반응을 많이 보이시더라고요. 너무 제 노래만 고집하는 것보다 보는 이들이 놀라고 자극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콘텐츠들을 만드는 것도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Q :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영상은 무엇인가요?


'이혁TV' 재생 목록 중에 '록 윌 네버 다이(LOCK WILL NEVER DIE)'라는 게 있어요. '아직 록은 죽지 않았다'는 의미로 만든 대한민국 록 부활 프로젝트에요. 대한민국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를 만나 직접 섭외부터 인터뷰, 그리고 저와 함께 컬래버레이션 음원까지 만드는,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는 콘텐츠에요. 단시간에 이슈를 끌기보다, 일종의 '연금' 같은 존재죠. 한국에서 록 밴드로 성공하기란 굉장히 힘들어요. 환경도 열악하고, 록 음악에 대한 인지도나 관심이 외국보다 적어요. 당장 화제나 수익은 안 돼도 저의 이런 노력으로 인해 훗날 한국인들이 록을 많이 알게 된다면, 제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이런 영상들은 독보적인 콘텐츠가 될 거예요. 그땐 노브레인, 크라잉넛, 김경호 형, 박완규 형도 제 영상에 출연해주시지 않으실까요?(웃음)


Q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거 같아요.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노래는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더라고요. 취미로 하다 보니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했던 것 같아요. 스물 한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밴드를 하겠다며 머리 기르고 청바지 찢어입고, 신촌 홍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오디션을 봤죠. 당시에는 정말 세수만 안 하면 거지가 따로 없었어요. 그런데도 지금 그때를 회상해 보면 정말 행복한 기억만 있어요. 한 밴드의 '록 보컬리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저 재미있었어요. 주머니에 500원 밖에 없어도 걱정이 안 됐어요.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게 그냥 좋았거든요. 데뷔 전인 스물일곱살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Q : 2005년 조빈과 노라조로 데뷔했어요. 데뷔 일화가 궁금해요.


조빈 형을 우연히 한 연습실에서 봤어요. 당시 조빈 형은 김장훈 씨의 매니저를 하면서 가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죠. 정장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굉장히 점잖은 인상이었어요. 처음에 보고 뮤지컬 배우인 줄 알았을 정도로요. 그때 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머리가 삼각김밥이 될 줄 몰랐죠(웃음). 서로 얼굴을 트다 보니까 비슷한 점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음악에 대한 갈망도 있었고, 그 형도 옥탑방에서 힘들게 음악을 하면서 산 사람이라 배고픔이란 걸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이 정도로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면 함께 해볼만 하겠다 싶었어요.


Q : 그러면 록 밴드가 아니라 노라조로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노라조 콘셉트를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조빈 형이 '녹색지대' 같이 아주 멋있는 발라드 듀오를 만든다고 해서 시작한 건데, 형도 저도 그런 엽기적인 콘셉트와 춤이 있는지 계약 이후에 알게 됐어요. 2년까지는 '내가 이게 맞게 가는 건가' 싶었어요.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적응이 안 됐는데 옆에서 조빈 형은 말도 안 되는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웃음이 터질까봐 (형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노래했던 기억이 나요.


Q : 노라조 활동 당시 다양한 분장과 엽기적인 콘셉트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지금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힘들었던 콘셉트가 있나요?


가장 힘들었던 건 2집 때 콘셉트에요. 네 맞아요. 삼각김밥 헤어스타일로 노라조가 본격적으로 독특한 콘셉트에 시동을 건 때였어요. 당시 수염과 머리를 너무 많이 길러서 미국 입국 심사에서 마약상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어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노라조 때 거의 기계처럼 일해서 힘든 점이 많았죠. 그때 받은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다 보니 체지방이 너무 줄고, 건강이 악화돼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Q : 탈퇴 당시 조빈과 불화설도 나왔어요.


불화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13년 동안 노라조의 콘셉트에 따라 노래를 하다 보니 정통 록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노라조가 제가 하고 싶은 메탈 록 장르 모두를 할 수 있는 팀이라면 떠나지 않았겠지만 조빈 형과 저의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달랐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확고했어요. 각자의 음악을 하기 위해 충분히 협의한 뒤에 탈퇴한 거죠.


음악엔 정말 많은 장르가 있잖아요. 너무 한 음악만 하고 싶진 않았어요. 록만 고집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힙합, 발라드, EDM, R&B, 클래식까지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어요. 음악 인생에 있어서 영양실조가 걸리고 싶진 않았어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Q : 현재 새 멤버 원흠이 합류해 노라조가 활동을 재개했어요. 이혁이 보기에 노라조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최근 쇼케이스에도 갔었는데, 전보다 훨씬 밝고 젊어진 느낌이었어요. 조빈 형이 '한국의 레이디가가가 되겠다'고 말했었는데 정말 형이 생각하는 '노라조'를 지금 다 쏟아내고 있는 거 같았어요. 전에는 저랑 형의 음악색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타협을 많이 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빈 형 주축으로 진짜 '노라조 다운 노라조'가 됐더라고요.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올 거 같아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Q : 2017년 2월, 13년간의 활동 끝에 노라조에서 탈퇴하고 '이혁밴드'란 이름으로 본인만의 음악활동을 하고 있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요.


노라조 활동을 하며 '사람들이 내가 어떤 노래를 불러도 박수 쳐줄 때, 그때 이 팀을 떠나자'란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제 생각대로 알맞은 시점에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어요. 물론 새로운 도전이긴 하지만 제가 내린 결정이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터라 후회는 없어요.


노라조에서 탈퇴하고 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주변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어요. '뜨더니 변했다' '이제 기타도 안 친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전 노라조를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꼭 내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게 바로 지금인 거죠.


Q : 새 앨범이나 공연 계획이 있나요?


노라조 때부터 친하게 알고 지내던 송준호 기타리스트와 함께 이혁 밴드로 활동 중이에요. 10월 20일에 신촌 롤링 스톤즈에서 클럽 공연도 예정돼 있습니다. 브랜드 공연도 계획 중인데요, 제 이름을 걸고 내년부터 밴드 공연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가을 감성에 맞는 싱글 앨범도 준비 중이에요. 록이 아닌 발라드라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10월 말에 발매 예정이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Q : 이혁하면 '초고음' '고음 가창력 괴물' 등의 수식어가 붙어요. 그래서 이혁밴드 노래들도 대체로 고난이도 곡이 많더라고요. 목관리 비법이 따로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게 '수면'이에요. 잠을 못 잔 날은 아예 노래를 하지 않아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심지어 산삼 10뿌리를 먹어도 잠을 못 자면 제대로 된 고음이 안 나와요. 두 번째로 중요한 게 '수분 보충'이에요. 공연 전에 물을 많이 마셔줘야 해요. 물을 빨리 마신다고 좋은 게 아니고 노래를 부르기 전에 충분히 수분이 섭취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그래서 전 술을 거의 안 마셔요. 노래엔 독이죠. 탈수 때문에 목이 조여서 노래를 부를 수가 없거든요.


Q : KBS2'불후의 명곡' MBC'복면가왕'에 출연해 가창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는데, 혼자 무대에 서니 어땠나요?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는 가면이 답답한 거 빼고는 오히려 다른 무대에 설 때보다 마음이 더 편했어요. 제가 누군지 모르시니까 마음껏 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불후의 명곡'은 노라조 활동 당시에도 혼자 종종 출연했었는데, 초창기 때는 혼자 무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둘이 있다 혼자 있으니 행여나 무대가 휑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죠. 최근 출연했을 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그때 다양한 기분이 교차했던 거 같아요. '난 이제 혼자 가야 하나 보다'란 생각이 좀 확실해졌어요. 홀로서기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됐죠.


Q : 이혁에게 록이란.


유전자, 제 'DNA'인 거 같아요. 뭔가에 홀린 듯이 찾아서 듣게 되고, 그 음악을 하게 돼요. 우연히 선물 받은 CD 속 찢어지는 드럼 소리가 너무 좋아 시작하게 된 록을 지금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냥 록 자체가 제 유전자여서인 것 같아요.


Q : 1년 뒤 이혁은 어떤 모습일까요? 밴드로서 유튜버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유튜버로서는 록의 성지 채널을 만들고 싶고, 밴드로서는 이 '이혁TV'의 힘을 받아서 외국 진출을 하고 싶어요. 유행은 돌아온다고 하는데, 전 록의 유행이 돌아오길 가만히 기다리고 싶진 않아요. 록은 유행이 아닌 문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국에 그 문화를 퍼트리고 끌고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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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정하은 기자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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