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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 18일 이탈리아 베로나 자택 앞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만난 뒤 한가위를 앞둔 독자들에게 ‘하트’로 인사하고 있다. 베로나 | 정재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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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 18일 이탈리아 베로나 자택 앞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만난 뒤 한가위를 앞둔 독자들에게 ‘V’를 그리고 있다. 베로나 | 정재은통신원

[베로나 = 스포츠서울 정재은 통신원]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는 사랑받는 선수다. 귀여운 외모와 톡톡 튀는 캐릭터로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그의 발에 공이 걸리면 십중팔구 결정적 장면이 등장한다. 경기장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것 같지만 그의 말엔 늘 근거가 있다. 자신의 베스트 골을 묻는 질문에도 “대표팀에 가면 항상 멋있게 넣는다”고 시크하게 답한다. 성공 비결 또한 “하던 대로 하기”란다. 이승우라서, 그의 재치있는 대답에 더 신뢰가 간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 순간부터 이달 한국에서 열린 국가대표 평가전까지 이승우는 자신이 왜 사랑받는 선수인지 증명했다. 불과 1년 전 U-20 대표팀에 있던 그는 지난 5월부터 자신의 축구인생을 단숨에 바꿨다. 명문 AC밀란을 상대로 이탈리아 세리에A 데뷔골을 넣더니 국가대표로 뽑혀 월드컵 무대에 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의 골문을 세차게 가른 후였다. 추석 특집 인터뷰를 위해 지난 18일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그의 자택 앞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이승우는 이렇게 말했다. “한·일전 승리는 당연하다. 그래서 이겨도 아주 기쁘진 않다. 질 경기를 이겨야 기쁘지, 이길 경기 이기면 뭐….” 특유의 미소가 번진다.

[포토] 손흥민, 골 넣은 이승우와 포효
이승우가 지난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일본과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손흥민과 환호하고 있다. 보고르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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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일본과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광고판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4년 전에도 그랬다.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8강 일본전을 앞두고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거침없이 내뱉았던 이승우의 ‘명언’은 아직도 종종 회자된다. 당시 홀로 60m 가량 질주해 일본을 제대로 무너뜨렸다. ‘베로나의 이승우’는 그 골을 지금까지 최고의 골로 지목하고 있다. “그 땐 일본을 이겨야 월드컵(17세 이하)에 갈 수 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결승전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일본을 만나 더 많이 뛸 수 있었다. 나는 그 때도, 이번에도 일본에 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격차가 벌어지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가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선배들 말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는 “일본에 있는 형들은 우리가 일본에게 정말 처참하게 질 수도 있다고 하더라. (정)승현이 형, (황)의조 형, (김)승규 형 등이 다 똑같이 얘기했다. 팀에 있는 어린 선수들이 정말 많다고, 우리도 더 잘해야 한다고 한다. 경각심을 엄청 느낀다”고 했다.

이승우에게 지난 여름은 행복하고 특별했다. 그야말로 ‘꽃길’을 걸었다. “월드컵은 처음이고 국가대표에 적응을 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많이 배우고 싶었다. 아시안게임에선 그래도 친한 형들과 뛰어서 더 편했고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싶었다. 두 개가 모두 잘 이뤄져서 너무 좋다.”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없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9월 A매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계속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그와 국가대표팀이 승승장구하자 축구 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여성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이승우는 톱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도 “여성팬들이 다 이승우를 보러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승우도 느낀다. “경기장은 물론 각종 대표팀 이벤트 자리에도 여성 분들이 많이 오신 걸 느꼈다”며 “어떤 형태로 우리를 응원해주시든 상관없다. 일단 경기장이 꽉 차고 응원 소리가 큰 게 중요하다. 많이 찾아와주시는 게 큰 힘이 된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이번 A매치도 매진된 걸 보고 선수들이 힘이 나서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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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왼쪽에서 3번째)가 2014년 9월2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결승 직후 MVP를 수상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SS포토]골키퍼를 넘기는 이승우의 선제골(한국-아르헨티나)
이승우가 지난해 5월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에서 60m 드리블 뒤 선제골을 넣고 있다. 전주 | 박진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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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지난 18일 이탈리아 베로나 자택 앞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만난 뒤 한가위를 앞둔 스포츠서울 독자들에게 추석 인사를 전하고 있다. 베로나 | 정재은통신원

지난 4개월을 회상하는 이승우는 시종일관 신난 모습이었다. 혼자 피식하고 웃기도 했다. 문득 그가 지나온 어려웠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어릴 적 스페인에 홀로 건너가 생활했고 그런 와중에 국제축구연맹(FIFA) 유소년 징계로 경기 출전도 할 수 없었다. 이승우는 오히려 어려서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는 내가 어려서인지 힘든 일들이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워낙 주변에 있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힘낼 수 있도록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힘든 시간이었어도 잘 버티고 꾸준히 내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축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다. 재밌게 하고 싶다”는 말에서 축구에 대한 이승우만의 발랄한 태도가 나타난다. 자기 전 세리머니를 상상하는 것은 그의 축구인생에 새 영감을 불어넣는 에너지다. 이승우는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일본 기업 도요타의 광고판을 밟고 세리머니했는데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그가 고의로 그런 행동을 취하고는 모른 척 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승우는 가볍게 받아쳤다. “진짜 몰랐다. 도요타인 것도 몰랐다. 그게 그렇게 되어버려서…”라며 피식 웃더니 “세리머니는 보통 자기 전에 많이 생각한다. 골 넣는 생각도 하면서 잠든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다. 난 자기 전에 축구 생각을 하면 잠이 잘 온다”고 했다. 스무살 이승우는 이제 어떤 세리머니를 그리며 잠을 청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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