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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축구가 ‘여심(女心’)을 사로잡았다.

최근 축구대표팀이 여성 사이에서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10~20대를 중심으로 SNS와 온라인 상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손흥민이나 이승우, 기성용 같은 선수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다. 9일 현재 손흥민이 159만명에 육박하고 이승우가 57만명, 기성용이 16만명에 달한다. 월드컵의 별 이용이나 아시안게임을 통해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황의조도 10만명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손흥민과 이승우의 얼굴이 학교 칠판 위에 걸려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될 정도다. 두 사람 사이에 BTS의 뷔 사진이 있는 것을 보면 최근 축구선수들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비단 온라인에서만 열기가 뜨거운 것은 아니다. 지난 3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들이 입국한 인천공항은 이른 아침부터 소녀팬들로 가득했다. 300여명의 팬들이 오전 7시부터 입국장을 채우고 선수단을 환영했다. 코스타리카와의 경기가 열린 7일 고양종합운동장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 전 전광판을 통해 선수 소개를 할 때 수많은 여성팬들이 소리를 쳐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튿날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오픈트레이닝 데이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부터 기다린 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500명을 모집했는데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이 몰렸다. 주로 10대 여중·고생이 많았다. 이들은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에 크게 반응해 열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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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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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축구는 주로 남성이 소비하는 스포츠다. 여성의 경우 TV나 영화를 통해 대중에 자주 노출되는 아이돌이나 배우의 팬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게 축구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팬층이 탄탄하지 않다. 축구선수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는 이동국과 안정환, 고종수로 이어지는 K리그 트로이카가 대세였다. 이들은 각종 광고 모델로 활약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세 선수가 뛰는 경기장이 만원사례를 이룬 경우도 잦았다. 2002월드컵 직후에도 태극전사들을 중심으로 프로축구가 인기몰이를 했지만 최근에는 축구가 다시 관심의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두 번의 월드컵에서 거둔 기대 이하의 성적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축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한국은 황의조와 손흥민, 이승우 등의 활약을 중심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일본과의 결승전 시청률은 57.3%(닐슨코리아)에 달했다. 국민 10명 중 6명 정도는 한국의 통쾌한 승리를 봤다는 의미다. 이중에는 여성도 대다수 포함됐을 게 분명하다.

확장성이 떨어지는 축구가 여심을 잡았다는 것은 분명한 호재다. 소위 ‘입덕’ 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비에 적극적이다. 입덕은 한자 ‘입(入)’과 한 분야에 광적으로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덕’을 합쳐 만든 신조어다. 특정 분야, 혹은 인물에 빠져 팬이 됐다는 뜻이다. 입덕을 자처하는 여성은 고가의 뮤지컬이나 콘서트 티켓을 서슴 없이 구매한다. 축구로 치환하면 경기장을 찾는 팬이 많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코스타리카전이 매진되고 11일 칠레전도 완판이 임박한 사례에서 여성의 티켓 파워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려는 성향이 있다. 열기를 지금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9~11월로 이어지는 A매치와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으로 열기를 이어가면 축구가 과거처럼 대중적인 스포츠로 발돋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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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축구선수의 ‘아이돌화’는 축구산업 전체로 봤을 때 큰 호재다. 그중에서도 K리그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번 훈풍은 손흥민과 이승우 같은 유럽파를 중심으로 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이름을 알린 황인범이나 김민재, 김진야, 김문환, 조유민 등도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스타 마케팅으로 여성팬을 축구장으로 이끌어내면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더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최고 인기 구단으로 도약한 전북현대만 해도 여성팬들의 비율이 높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봉동 클럽하우스까지 찾는 소녀팬들이 많다. 다른 팀들도 이 부분을 참고해 바람을 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기회를 잡는 것은 팀과 선수들의 몫이다. 지난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도 축구선수들이 젊은 여성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소속팀에서 잘 뛰지 못하면서 열기는 금세 식었다. 이번에도 언제 거품이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구단이 신선한 방식으로 여심을 잡고, 선수들도 화끈한 경기력과 팬 서비스로 분위기를 이어가면 K리그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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