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혹사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그 존재가 특별합니다."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뷰티 크리에이터가 있습니다.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유튜버 배리나(배은정·22)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회가 원하고 요구하는 '예쁜 모습의 여성상'에서 벗어나자는 '탈(脫)코르셋 운동'이 최근 유튜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이들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엄격한 외모 잣대에서 여성들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눈에 띄는 점은 뷰티 관련 비법을 전수하는 뷰티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탈코르셋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스럽게' 외모를 치장하도록 돕던 이들이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는 건 꽤나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뷰튜버 배리나의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한 달 만에 조회 수 200만뷰를 훌쩍 넘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많은 여성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배리나는 영상을 통해 "이 영상을 찍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으나 작은 목소리라도 도움과 힘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언젠가는 꾸밈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말하는 배리나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Q :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를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나오게 해준 것이 '유튜브' 플랫폼이었어요. 유튜브를 시작할 당시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무기력이 굉장히 심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요. 그러다 다른 유튜버들 영상을 보면서 '나도 뭔가 하고 싶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8월 처음 '오렌지 메이크업' 영상을 올렸는데 잊고 있다가 한참 지난 후인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버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움직이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머리를 쓰는 작업을 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지금은 구독자분들이 많이 생겨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책임감이 들어요.


Q : 영상 속 메이크업이 독특한 것 같아요. 원래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았나요?


네, 메이크업 자격증도 땄어요. 제가 메이크업 취향이 독특한 편이기도 하고, 분장사를 준비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아요. 사실 처음부터 뷰티 크리에이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콘텐츠여서 초반에 메이크업 영상을 자주 올렸는데 요즘은 브이로그, ASMR, 반려묘 영상까지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하고 있어요.


뷰튜버로 방향을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방송영상학과를 졸업해서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데, 단편 영화도 직접 찍어서 업로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Q :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일명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영상이 조회 수 260만 뷰를 넘을 정도로 많은 화제를 모았어요. 이 영상을 업로드 한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같습니다. 용기를 낸 계기가 있나요?


탈코르셋 운동을 하시는 분들, 또는 하고 싶지만 여건 때문에 하지 못하는 분들의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됐어요. '정말 많은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구나' '우리 사회에 여성의 외모에 대한 코르셋이 정말 심각하구나'를 느꼈죠. 특히 10대 학생분들 사이에서 심각한 것 같았어요. 외모를 꾸미지 않는다고 해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 영상 댓글만 봐도 상당수가 13~17세 학생분들인데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들을 많이 달아요. 그들에게 작은 목소리라도 도움과 힘을 주고 싶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Q : 해당 영상 속에서 화장을 다른 사람들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묘사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배리나는 화장을 지우고, 다시 민낯으로 돌아가요. 이런 연출의 의도가 있나요?


외모 코르셋이 가장 큰 이슈이기도 하고 이걸 쉽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메이크업'이라 생각해서 제작하게 됐어요.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이 영상이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배리나의 생각이 궁금해요.


'탈코르셋'이란 걸 접하고 나서 사실 저도 그걸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아직 공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이란 여성들이 이제까지 사회에서 조여왔던 코르셋을 벗는 운동, 즉 '남들 시선에서 벗어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다양한 여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운동인 거죠. 아름다움의 기준이 획일적이지 않아야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탈코르셋 운동의 본질이에요. 단순히 숏컷을 하고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종의 여성 권력을 신장시키는 운동이죠.


Q : 탈코르셋 자체를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탈코르셋'이란 이름으로 '안 꾸미는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해요.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안 꾸미는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에요. '강요'가 아니라 '권유'입니다. 그리고 주위만 둘러봐도 꾸미지 않는 걸 강요하는 것보다 꾸미는 걸 강요하는 게 훨씬 많아요.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예쁜 여성상',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광고까지. 인터넷상에선 '탈코르셋 하자'는 말이 많지만, 막상 주위를 보면 여성들은 수없이 많은 코르셋을 강요받고 있어요.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노동을 자각하고, 여태껏 여자라는 이유로 불편하게 해왔던 모든 것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게 탈코르셋이에요.


대부분의 여성들이 반발감이 드는 건 당연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탈코르셋 운동을 접하고 나서 '그럼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건 뭐가 되나' 싶어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 제가 좋아서 스스로를 꾸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안 꾸미니까 정말 편해요. 여름에 전 외출을 극도로 자제했어요. 땀 때문에 수정 화장을 계속해야 하고, 파운데이션이 안 묻어 나오는 걸 찾느라 애를 먹고… 그런데 이젠 화장이 지워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밖에 자주 나가고 활동적으로 됐어요. 땀 나면 그냥 손으로 닦으면 되니까요.(웃음) 밥 먹을 때도 립스틱을 바르면 음식이나 빨대에 안 묻으려고 조심해서 먹었는데 지금은 너무 편하게 먹어요. 외출 준비할 때도 보통 약속 시간 2시간 전부터 씻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옷 고르고 분주했는데 이젠 30분이면 끝나요.


Q : 뷰튜버 활동을 하면서 탈코르셋 운동을 한다는 건 모순적이지 않나요?


저도 모순적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제가 '완전히 탈코르셋 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저 역시 아직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화장할 때도 있고 원치 않게 자신에게 코르셋을 씌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뷰티, 메이크업 영상을 점차 줄여나갈 생각이에요. 화장을 한 모습보다 안 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화장은 선택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Q : 화장이 코르셋의 상징이긴 하지만 꼭 '화장을 안 하는 것=탈코르셋'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뷰티 크리에이터 활동을 계속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코르셋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뷰티 영상을 올려도, 그걸 보는 누군가에게는 코르셋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꾸밈'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는 게 탈코르셋 운동의 최종적인 도달점인 건 맞아요.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온전히 여성, 저의 선택이어야 해요.


하지만 크리에이터로서 영향력과 파급력을 생각해볼 때, 뷰튜버가 사람들한테 알게 모르게 코르셋을 씌울 수 있어요. 영상을 보고 나면 한 번쯤은 '나도 저렇게 화장하면 예뻐질까?' '나도 저런 모습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어쨌든 화장은 자신의 미를 더욱 강조하는 수단이니까요. 그래서 뷰티 크리에이터 활동과 탈코르셋 운동은 병행할 수 없는 거 같아요.


Q : 사회적으로 강요된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제 외형이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늘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어릴 땐 활발하게 뛰어놀던 아이였는데 커 가면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많이 위축됐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고, 부모님께도 살 때문에 늘 혼났어요. 주변에서 항상 '너도 꾸밀 줄 알아야지'하는 조언을 들었고, 날씬하고 예쁜 여성들을 보여주며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라는 압박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거의 기억을 지운 거 같아요. 괴로웠던 기억밖에 안 남아서 상처가 된 말들은 다 지워버렸어요.


Q : '탈코르셋'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나니 주변 반응이 좀 달라졌나요?


요즘 어머니께서 많이 바뀌셨어요. 맨날 저한테 '뚱뚱하다' '다이어트 해라' 이런 말 많이 하셨는데 제가 여성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유튜브 활동을 하는 걸 보신 이후엔 그런 말씀을 잘 안 하시더라고요.


구독자분들과도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인데, 댓글을 보면 저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행복해요. 영상을 접하고 생각하는 게 바뀌셨다는 분들도 계시고, 제가 뭘 하든 응원해주겠다,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분들도 계세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구독자분들과 함께 엠티 가고 싶어요.(웃음)


Q : 악플로 인한 고충도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유튜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악플에 시달렸어요. 첫 영상을 올리고 잊고 살다 어느 날 들어갔는데 댓글이 몇백 개씩 달려 있고 구독자도 1000명이 넘은 거예요. 알고 보니 제 영상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면서 영상 속 댓글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전 제가 올리고 싶은 영상을 올리는데 영상이 게재될 때마다 각종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 영상을 퍼가서 수위 높은 악플을 달아요. 한번 크게 악플이 달렸던 건 '딸기 메이크업' 영상이에요. 붉은색을 많이 이용한 메이크업 영상인데 이걸로 거의 일주일 동안 시달렸어요. 악플이라면 다 들어본 사람이어서 이젠 어떤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요. 저를 강인하게 만들어줬죠.


Q : 하지만 배리나를 응원하는 분들도 많아요.


'딸기 메이크업'으로 욕을 한창 먹을 때 일본 여행 중이었어요. 여행 중인데 이런 일을 겪으니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승무원분이 저를 알아보시고 '영상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악플이 뭐가 중요하나. 이렇게 나를 봐주고 응원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행복했어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외모와 전 많이 달라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러한 외모를 따라가려고 화장을 할 필요는 없죠.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그 일을 계기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그리고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악플보단 응원의 메시지가 훨씬 많아요. 그런 팬분들에게서 항상 힘을 얻어요.


Q : 배리나에게 '뷰티'란 무엇인가요.


내가 정하는 거요! 타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강요된 게 아닌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요.(웃음) 그게 진짜 아름다움 아닐까요.


Q : 마지막으로 구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참 부족한 저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발전해나갈 테니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독자 여러분들! 너무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남이 아닌 나를 돌아보고 사랑하세요. 배리나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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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정하은 기자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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