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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육상 200m 한국 기록 보유자인 박태건이 17일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 | 도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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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육상 200m 한국 기록 보유자인 박태건이 17일 진천선수촌에서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진천 | 도영인기자

[진천=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정체됐던 한국 육상이 최근 새로운 스타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72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200m 결승에서는 33년 묵은 한국 기록이 깨졌다. 박태건(27·강원도청)이 20초40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1985년 장재근 화성시청 감독이 세운 한국 기록(20초41)을 0.01초 앞당겼다. 당시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많은 비가 내려 트랙이 미끄러웠고 박태건은 지난 5월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예상을 깨고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다음달 개최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박태건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시안게임 생각뿐이다. 그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훈련 스케줄로 채워져있고 아시안게임 첫 레이스 날짜에 맞춰 디데이가 설정돼 있다. 박태건은 17일 진천선수촌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나 “아시안게임 첫 레이스까지는 41일 남았다. 남은 기간에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준비할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하고 또 고민한다. 모든 초점은 아시안게임에 맞춰져있다. 정말 이번엔 후회없이 뛰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 인생을 바꾼 2가지 결단

박태건은 2015년과 지난해 자신의 인생을 바꾼 2가지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전까지 썼던 박봉고라는 이름을 대신해 클 태(太), 세울 건(建)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개명한 지 7개월 만에 한국 육상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큰 기록을 세웠다. 박태건은 “좋은 이름 뜻에 걸맞게 큰 것을 하나 세웠다. 꼭 기록을 고려해서 바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름을 잘 바꿔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태건이 26년동안 쓰던 정든 이름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해 한 대회에서 발생했다. 레이스 도중 사회자가 자신의 이름을 박봉구라고 잘못 부르는 것을 듣고 더 이상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박태건은 “지난해가 아니면 평생 봉고로 살아야할 것만 같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름을 바꿨다. 봉고는 아버지가 주신 이름이었는데 어릴 때는 개명에 반대하셨지만 이번에는 허락해주셨다”고 말했다.

두 번째 결단은 2015년 말에 주 종목을 바꾼 것이다. 고교 2학년때부터 10년 가까이 400m를 주 종목으로 활동했던 박태건은 강원도청으로 팀을 옮긴 뒤 일본 전지훈련에서 200m 주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20대 중반에 주 종목을 바꾸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200m와 400m는 주법과 훈련 방식이 다르고, 쓰는 근육도 차이가 난다. 같은 트랙 종목이지만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을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더구나 박태건은 남자 400m에서 국내 톱 클래스를 장기간 유지했던 주자라 주 종목을 바꾸는 것이 모험에 가까웠다. 박태건은 “난 원래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기질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해 발전하고 한단계씩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박태건은 지난 시즌 200m 기록을 20초6대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차근차근 격차를 줄여간 끝에 한국 기록 경신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그는 “사실 200m는 단거리라 100m 출신 선수들이 더 유리하다. 약점인 스피드 강화를 위해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그런 전략이 잘 통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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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육상 200m 한국 기록 보유자인 박태건이 17일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 | 도영인기자
◇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준 아시안게임

박태건은 고교시절부터 한국 육상을 책임질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은 스무살이 되던 2010년부터 출렁이기 시작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1개월여 앞두고 허벅지 뒷근육이 파열되면서 첫 시련을 맞았다. 그는 “레이스 도중에 심하게 다쳤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첫 부상이라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어린나이라 빨리 회복했지만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부상 여파로 내 경기력의 70%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세계선수권대회 이후에는 반대쪽 허벅지 근육마저 파열이 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연이은 부상만 힘겨웠던 것은 아니다. 당시 소속팀에는 단거리 선수가 박태건 혼자라 훈련 환경이 좋지 않았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다른 팀에 얹혀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2014년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이었다. 남자 1600m 계주 대표로 발탁된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안정적인 훈련을 이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성장했다. 박태건은 “2014년에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내겐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그 기간이 귀중한 시간이자 터닝포인트였다”고 강조했다. 박태건은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1600m 계주에서 동료들과 힘을 합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 레이스에서는 2번 주자로 출전한 그는 최하위로 바통을 받았지만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3번 주자에게 바통을 연결했다. 그는 “많은 대회에 출전했지만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한바퀴 돌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 기분을 한번 더 느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박태건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200m와 400m 계주에 출전할 예정이다. 그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두 가지다. 남자 200m 금메달과 한국 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우는 것이다. 기록 목표는 자신이 세운 20초40에서 0.2초를 줄인 20초20이다. 박태건은 “아시안게임의 변수는 습도가 높은 날씨일 것이다. 하지만 난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환경이 최악이더라도 대회 장소에 가서 빨리 적응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은퇴하기 전에 2020년 도쿄올림픽 남자 200m 결승에 진출하고 싶다. 그게 내 마지막 꿈이다. 또 한국인 최초로 200m 19초대 기록을 세우고 싶다. 목표를 내 입으로 밝혔으니 꼭 지키겠다”고 힘주어말했다.

doku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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