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김영권
김영권이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카페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담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김영권(28·광저우헝다)의 축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영권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고의 반전남이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선수였지만 본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팬들은 더 이상 김영권을 욕하지 않는다 .대신 찬사를 보낼 뿐이다. 실력으로 반전을 만든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향해 달린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유럽 진출이 김영권의 다음 목표다. 대표팀에서도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 20대 후반이 된 이제부터 할 일이 더 많다. 스포츠서울이 이제 막 러시아에서 돌아와 미래를 준비하는 김영권을 만났다.

◇ 욕 먹을 만했다…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반전

김영권은 금의환향 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그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김영권은 “사실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걱정했다. 4년 전처럼 공항에서 크게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왔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수고했다며 격려해주셨다. 뜻 밖의 반응이라 신기했다”며 웃었다. 반전의 비결은 마음가짐이다. 김영권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출사표가 ‘필사즉생, 필생즉사’였다. 그만큼 뒤를 보지 않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막상 지나고 나니 과거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를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독일전을 끝내고 지난 4년을 복기했다. 대표팀에서 이번 월드컵을 얼마나 생각하고 준비했나 돌이켜보니 제대로 준비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경기력, 결과가 안 좋은 게 당연했다. 말 실수를 한 것도 맞다. 욕 먹을 만했다. 정확하게 보고 평가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자기 반성을 하게 됐다. 욕 먹은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당당해졌다. 함께 마음고생한 가족에게도 떳떳한 남자가 됐다. 김영권은 “부모님께서 좋아하신다. 그게 제일 좋다.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나를 만나 고생만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빨리 중국으로 가 와이프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포토]김영권
아내와 딸의 이름을 팔뚝에 새긴 김영권. 청담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 김앤장과 조현우

‘김앤장’이라는 말은 김영권과 그의 파트너 장현수가 실수를 연발해 생긴 부정적인 표현이다. 김영권은 “처음에는 정말 신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대단한 것 같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다”라며 웃은 후 “부정적인 표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가까스로 반전을 만들었으니 앞으로는 긍정적인 의미의 ‘김앤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후배를 향한 격려의 메시지도 남겼다. “사실 지금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대표팀에서 계속 욕을 먹으며 버티는 게 쉽지 않다.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위축되면 안 된다.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만회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겠지만 현수라면 이겨낼 수 있다. 선수, 코칭스태프도 모두 인정하는 능력이 있다. 한 단계 성장했으면 좋겠다.”

장현수가 위로의 대상이라면 조현우는 김영권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는 “얘가 미쳤구나 싶었다. 다이빙을 하는데 정말 가벼워 보였다. 연습할 때보다 훨씬 잘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온 것 같았다. 너무 잘해줘서 할 말이 없었다. 월드컵 조별리그 골키퍼 중 가장 잘했던 것 같다. 분명히 한 골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막아줘서 큰 힘이 됐다. 현우가 없었다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후방 지원군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포토] 김영권, 독일전 선제골...팔뚝 키스 세리모니?
축구대표팀의 김영권이 27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있다. 2018.06.27. 카잔(러시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독일전, 내 생애 최고의 순간

김영권은 조별리그 3경기서 빈 틈 없는 수비력을 과시했다. 눈에 띄는 실수를 찾기 어려웠다. 시작부터 좋았다. 김영권은 “스웨덴전 전반에 결정적인 태클로 공을 걷어냈다. 그 태클로 자신감이 붙으면서 느낌이 왔다. 이후 경기가 다 보였다. 뭘 해도 될 것 같았다. 공이 오면 우리 수비가 어디에 있는지, 상대가 어떻게 달려오는지 다 보였다”고 말했다. 절정은 독일전이었다. 경기 내내 독일 공격진을 꽁꽁 묶었고 후반 추가시간엔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김영권은 “원래 기대도 안 했다. 공격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했다. 굳이 올라가서 역습을 맞느니 수비를 준비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나랑 현수, (윤)영선이 형에게 올라가라고 지시하셨다. 사실 (손)흥민이 코너킥도 실수였다. 우리 작전에 낮게 때리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행운이었다. 처음에는 공이 안 보였는데 갑자기 영선이 형 가랑이 사이로 공이 흘러 내 앞에 왔다. 그 짧은 순간에 고민하다 잡고 때렸는데 노이어 발에 맞고 들어갔다. 짜릿했다. 그런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월드컵에 심지어 상대가 독일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영권의 골은 VAR 끝에 득점으로 인정됐고, 그는 영웅이 됐다. 김영권은 “집에 와서 독일전을 또 봤다. 결과, 상황을 아니까 마음 편하게 여유롭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올림픽 때를 제외하고 대표팀 경기를 이렇게 본 것은 처음이다. 의심의 여지 없는 인생경기”라고 말했다.

[포토] 김영권, 전차군단의 문을 뚫은...선제골!
축구대표팀의 김영권이 27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성공시키고있다. 2018.06.27. 카잔(러시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뜨거운 눈물, 4년 후에도 월드컵 도전한다

김영권은 독일전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잘 울지 않는 그의 성향을 아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놀랐다. 김영권은 “잘 안 우는 스타일이다. 그 당시엔 복잡했다. 16강에 못 올라가 아쉬웠다. 사실 독일전 때는 16강 생각을 아예 안 했다. 2-0이면 가능성이 있으니 이 경기에서 잘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끝나고 벤치에 있던 형들이 말해줘서 스웨덴이 멕시코를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탈락이라니 허무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월드컵이 끝나 후련한 것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이 해결되는 느낌도 있었다. 선수들이 서로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아니까 슬픈 감정까지 올라왔다”라고 덧붙였다.

김영권은 4년 후에도 월드컵에 도전할 생각이다. 2014년에 참패를 경험했고, 이번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4년 후에는 16강 진출을 숙원을 이뤄야 한다. 김영권은 “16강에 가고 싶다. 월드컵의 토너먼트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조별리그와 분명 다를 것이다.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대표팀에서 김영권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기성용, 구자철 등이 대표팀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김영권은 “형들이 없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힘들어질 것이다. 성용이 형한테는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죽어도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은퇴하지 말라고 했다. 아직 형한테 배울 게 많다”며 선배들의 퇴장을 아쉽게 바라봤다.

안타까움은 잠시다. 베테랑 김영권은 앞으로 선배 역할을 해야 한다.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 바닥부터 다시 생각하겠다.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복기하겠다. 마음가짐도 돌아봐야 한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도 기억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또 욕을 먹을 가능성이 있다. 매 경기 잘할 수 없다. 경기력이 안 좋을 때도 있다. 그 기간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이 그 노하우를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선배로서 더 잘하겠다”고 마음가짐을 밝혔다.

[포토]김영권
김영권이 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카페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담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 유럽 진출의 꿈, 지금이 적기

김영권은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유럽 진출을 노린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프랑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러시아 등 여러 클럽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영권은 “너무 경험하고 싶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월드컵에서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준 만큼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도전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꿈이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유럽으로 가 내 실력을 테스트하고 증명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 선수 중 지금까지 20대 후반에 유럽 주요 리그로 이적한 선수는 없다. 김영권은 특이한 케이스다. 그는 “포지션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센터백이라 다른 포지션에 비해 뛰는 양은 많지 않다. 체력보다 경기 운영 능력, 기술적인 부분을 잘 유지하면 발전의 여지가 있다”며 유럽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김영권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그는 “앞으로는 월드컵을 준비했던 것처럼 매 순간에 임할 생각이다. 20대 후반에 들어섰으니 몸 관리도 더 잘해야 한다. 30대가 되면 부상이 올 수도 있다. 제2의 축구인생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기대되고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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