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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 제공 | 대한축구협회

[카잔=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독일전 승리는 분명 대단했지만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2014년에 이은 2회 연속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자칫 한국 축구의 깊은 침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당초 예상됐던 3전 전패는 아니었던 만큼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잘 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에선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에 16강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런던 세대 가고, ‘팀 손흥민’ 왔다…“우린 약하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준비는 한국-독일전이 끝난 시점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손흥민과 이재성, 조현우 등 1991~1992년생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뼈대를 탄탄히 구축한 것은 반갑다. 손흥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멕시코전 그림 같은 만회골, 독일전 역습에 이은 쐐기골을 터트리고 대표팀의 확실한 에이스임을 증명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그의 나이는 만 30세가 된다. 기량이 만개할 때다. 또 리더로서 대표팀의 결속력을 주문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손흥민은 이번 신태용호에서 두 차례 A매치 주장으로 나서 모두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달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캡틴 데뷔전을 치러 2-0 승리를 이끌었고 독일전에서도 경기 전·후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2-0 쾌승의 선봉에 섰다.

여기에 중앙과 측면을 분주히 오가며 공·수에 보탬이 된 미드필더 이재성, 러시아 월드컵이 낳은 최대 스타 골키퍼 조현우 등 20대 중반 선수들이 신태용호의 새로운 ‘척추 라인’을 형성했다. 이들과 함께 황희찬, 김민재, 권창훈, 이승우, 이강인 등 미래 주역들이 쑥쑥 성장한다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드림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에서 통할 수 있는 수비수를 좀 더 키운다면 이번 대회처럼 시종일관 내려서는 축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손흥민은 독일전 뒤 “우리 대표팀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외쳤다. 그의 절규를 축구계가 곱씹어야 한다.

반면 2012년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던 ‘런던 세대’는 퇴장 수순을 밟고 있다. 런던 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구자철은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고 이번 대회 주장 기성용 역시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맹활약을 기대하긴 어렵다. 달콤씁쓸한 기억을 안고 돌아오는 지금 이 시점이 바로 손흥민 중심으로 한국 축구가 재편될 타이밍이다.

◇지난 4년, 감독을 잘못 뽑았다…앞으로 4년, 되풀이 말아야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참패하자 7년 만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그래서 데려온 인물이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였다. 하지만 그는 겉만 외국인일 뿐 4년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을 지휘할 그릇이 아니었다. 부임하고 3개월 만에 치른 호주 아시안컵에서 ‘늪 축구’로 준우승까지 차지했으나 이후 그의 실체가 탄로났다. 실력이 없다보니 여론의 눈치보기에 급급했고 축구협회도 슈틸리케의 보여주기식 행동을 부추겼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으론 안 되겠다는 결론을 너무 늦게 내렸다. 거의 3년을 허비한 다음 연봉 전액을 주고서야 그를 돌려보냈다. 지난해 7월 선임한 신태용 감독도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달 수밖에 없다. 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선 본선을 치러본 관록 있는 지도자가 나았지만 축구협회는 2016년 올림픽과 지난 해 U-20 월드컵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신 감독을 점찍은 뒤 기술위를 통해 공식 선임했다. 결국 스웨덴전을 허무하게 그르치고 러시아에서 3경기만에 돌아오는 상황을 맞았다. 신 감독은 2014년의 홍명보 감독처럼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태극전사들은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투혼과 패기가 살아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술과 체력, 기싸움에서 상대를 이기지 못했다. 손흥민 중심의 새 대표팀에 실력 있는 감독이 어우러져야 하는 이유다. 업계에선 잘 찾아보면 엄청난 명장까진 아니어도 한국 대표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조건의 외국인 감독이 있다고 한다. 투자가 있어야 결과도 얻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우린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배웠다. 제대로 된 외국인 감독 영입, 새로운 한국 감독 선임, 신 감독 유임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축구협회와 축구계 전체가 면밀히 검토, 카타르에서 다시 울지 않기 위한 최대공약수를 모색해야 한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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