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GK 이운재가 2002한일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인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16년간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경기를 치뤘고 그 가운데서도 잊혀지지 않는 승부차기와 페널티킥 장면이 있다. 2007년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 이라크와의 4강전, 일본과의 3~4위전이 연이어 승부차기까지 갔다. 2004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는 미하엘 발락의 페널티킥을 선방한 추억도 있다.

그래도 내 축구 인생에 최고 명장면은 2002한일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를 꼽을 수 있다. 다들 내가 당시에 부담을 가졌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연장 후반을 마치고 승부차기에 돌입하면서 ‘내가 할 건 이제 다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에서는 모든 키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당시에는 스페인이 16강에서 승부차기를 통해 올라왔기 때문에 참고자료가 있었다. 예상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키커들의 특징을 머릿속에 그리고 골문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스페인의 1~3번 키커가 정말 잘 찼다. 나는 계속해서 반대로 몸을 날렸다. 4번째 키커인 호아킨이 나왔을 때 생각했던 방향으로 몸을 던지자는 딱 한가지 생각만했다. 호아킨의 슛을 막아냈을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만큼 기쁘고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그런 기분이었다.

페널티킥에서는 골키퍼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실 PK는 골키퍼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키커가 전적으로 유리하다. PK에서는 골키퍼가 슛을 막는 것은 두 번째다. 상대 키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키커의 실축을 유도해야한다. 골문 구석으로 강하게 차면 GK는 못 막는다. 골키퍼가 막아낼 수 있는 구역 안으로 슛이 올 수 있도록 최대한 부담을 줘야한다. 나는 PK때 볼을 끝까지 보고 막았다. 키커가 실축하는 하는 것을 이용해서 막아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골키퍼가 위치한 지점을 기준으로 좌우 양쪽 1.5~2m, 그리고 어깨와 무릎 사이에 높이에 볼이 오면 막을 수 있다. 어떤 경우든 PK가 골키퍼에게 막히는 장면을 보면 슛이 그 지점 안으로 온다고 보면 된다.

러시아월드컵 초반부터 페널티킥 선언이 잦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도 PK에서 실축을 저질렀다. 오히려 유명 선수들은 킥의 스타일이나 성향 파악이 쉽다. 그만큼 축적된 자료가 많고 쉽게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GK가 페널티킥을 막아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볼을 끝까지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예측을 자제하고 미리 움직이지 않는다면 키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요즘 키커들은 수준이 높아져서 GK가 킥 전에 먼저 움직이면 반대로 찬다. 볼을 끝까지 본다고 해도 막아내기 힘든 것이 페널티킥이다. 모든 키커는 골대 구석을 노린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이 가슴 속에 스며들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볼을 보내지 못할 수 있다.

수원 삼성 GK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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