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황선홍이 1998년 6월4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한·중전 도중 상대 골키퍼와 부딪혀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맹활약할 때 부상이 따라온다.

축구계 속설이 또 한 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내달 러시아 월드컵 출전이 사실상 물 건너간 권창훈은 프랑스 진출 2년 차인 2017~2018시즌 미드필더로 11골을 터트리며 소속팀 디종은 물론 프랑스 1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권창훈은 2년 넘게 강행군을 펼쳤다. 2016 리우 올림픽 대표로 브라질을 다녀왔던 그는 2017년 1월 K리그 수원에서 디종으로 이적하느라 겨울에 제대로 쉬질 못했다. 약간의 부상 기간을 제외하곤 2016년 초부터 2017년 여름까지 1년 반을 계속 뛴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여름엔 디종의 생존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프레시즌 평가전부터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고비를 넘어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미드필더가 됐으나 ‘꿈의 무대’ 월드컵 앞두고 그만 그에게 부상이 찾아왔다. 그를 가르쳤던 서정원 수원 감독은 이날 포항과 원정 경기를 앞두고 “우리 팀에 있을 때도 창훈이 아킬레스건이 좋지 않았는데…”라며 탄식했다.

돌이켜보면 월드컵 본선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거나, 엔트리에 들고도 뛰지 못한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황선홍과 2006 독일 월드컵 때 이동국이다. 우선 황선홍은 프랑스 출국 직전 열린 중국과 평가전에서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에 넘어졌고 결국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다. 황선홍은 일말의 희망을 갖고 프랑스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몸이 회복되질 않아 3경기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황선홍은 그 해 4월 1일 지금도 회자되는 ‘날려차기 골’로 숙적 일본과의 A매치 승리를 이끌었고, 중국전에 앞서 열린 동유럽 체코와 평가전에서도 골 맛을 보는 등 컨디션을 확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래서 프랑스 월드컵 내내 벤치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동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한 뒤 절치부심, 4년 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곤 최고의 골감각을 이어나가고 있다. 포항 소속이었던 2006시즌 초반 7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월드컵 참가 의지를 불태웠다. 딕 아드보카트 당시 대표팀 감독도 이동국을 주전으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 두 달여를 앞둔 2006년 4월5일 포항-인천전에서 볼을 몰고 질주하다 혼자 넘어지면서 이동국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른 그는 결국 재활차 건너간 독일에서 월드컵 경기를 지켜봤다.

2010년 곽태휘와 2014년 김진수도 ‘불운의 사나이’ 대열에 합류했다. 2007년 전남으로 ‘이적된’ 뒤 선수 생활 전성기를 열어젖힌 곽태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중앙 수비수로 한 자리 굳힐 것이 확실시됐다.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로 유명한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 한·일전에서도 풀타임을 뛰었다. 그러나 6일 뒤 열린 한국-벨라루스전에서 왼 무릎 부상 진단을 받고 남아공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채 중도 귀국했다. 김진수는 2013년 7월 20일 동아시안컵 호주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뒤 이듬 해 5월까지 브라질전, 멕시코전, 미국전, 그리스전 등 주요 A매치 10경기에 뛰어 일취월장했으나 당시 소속팀이었던 일본 니이가타에서 다친 것이 영향을 계속 주면서 브라질 월드컵 직전 결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황선홍~이동국~곽태휘~김진수로 이어진 부상 잔혹사를 이번엔 권창훈이 물려받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권창훈의 실력을 감안하면 그 공백이 작지 않다. 이동국은 20일 권창훈의 소식을 접한 뒤 “좋을 때 다치곤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고 이겨내길 바란다”며 ‘부상 선배’ 입장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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