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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체육단체에 새 회장이 부임하게 되면 집행부 구성을 일임하는 게 관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원칙아래 임기동안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일을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최근 체육단체 집행부 구성에서 난데없는 걸림돌이 생겨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새 회장이 보궐선거를 통해 뽑히는 경우라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기존 집행부가 새 회장에게 거취를 위임하는 일괄사표는 고사하고 오히려 자리를 차고 앉아 몽니를 부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난 2013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입한 스포츠공성정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추진방안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체육계는 분석하고 있다. 체육단체 사유화를 막기 위해 임원의 중임을 1회에 한해 허용하기로 한 제도변화가 결과적으로 원활한 체육단체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아이러니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체육단체의 재정지원이나 국제외교 측면에서 필요한 인물을 제외하면 결국 두 번의 임기가 임원에게 주어진 최대한 기회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신의 거취를 회장에게 맡기는 위임의 미덕은 사라지고 있다.

전임 회장이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했다면 그리 큰 걱정은 없다. 다만 전임 집행부가 큰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난 가운데 새 회장이 보궐선거를 통해 부임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임 집행부의 이사들은 엄격히 말해 새 회장과 철학은 물론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할 경우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표를 내지 않고 자리에서 버티게 되면 원활한 체육단체 운영은 꿈도 꾸기 힘들다. 따라서 새 회장이 부임하게 되면 전임 집행부가 일괄 사표를 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체육계의 바뀐 풍속도는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선거를 통해 깨끗이 승복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오히려 전임 집행부가 자리를 버티면서 몽니를 부리는 악습이 판칠 가능성이 높다. 사표를 내면 임기 1번의 금쪽 같은 기회를 소진하게 되는 탓인지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기현상이 최근 눈에 띄게 많아졌다. 뜻이 맞지 않는 새 회장과 불편한 동거를 감수하면 결과는 뻔하다. 최순실 사태의 도화선이 됐던 대한승마협회도 최근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승마인 출신으로 재력을 겸비한 창성그룹 배창환 회장이 새 회장으로 뽑혔지만 14명의 기존 이사들이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티고 있어 체육계의 원성이 자자하다.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그건 낡은 유산이나 다름없다. 체육단체 사유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임원 중임 제한이 또 다른 역효과를 불러왔다면 그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보궐선거를 통해 선출된 회장에게 전임 집행부 해산권을 부여하는 건 어떨까.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소신있는 행정을 맘먹은 체육단체장이 시작부터 발목을 잡혀서는 기대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만사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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