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4번홀 홀아웃하며 인사하고 있다
박인비가 1년여 만에 LPGA 투어에서 정상에 올라 LPGA 통산 19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박인비는 조용하게 경기를 지배했다. 다시 정상에 오를 준비가 된 것 같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는 1년 만에 전해진 그의 우승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소리소문 없이 경쟁자들을 압도해 ‘침묵의 암살자’로 불렸던 전성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골프여제’의 화려하고도 완벽한 귀환이었다.

박인비(30·KB국민은행)가 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클럽(파72·6679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총상금 15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하며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정상에 올랐다. 2위 그룹을 무려 5타 차로 제친 박인비는 지난해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챔피언십 이후 1년여 만에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LPGA 통산 19번째 우승컵이고 우승 상금 22만 5000달러(약 2억4000만원)를 받았다.

박인비는 지난해 8월 브리티시 오픈을 끝으로 허리 부상 때문에 LPGA 투어 대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상 복귀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우려를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3라운드까지 1타 차 선두였던 그는 1번홀(파4) 버디로 최종 라운드를 기분좋게 시작했지만 이후 11번홀까지 10개홀 연속 파 행진을 벌이며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베테랑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가 3타를 줄이며 1타 차로 바짝 따라붙었다. 바로 그 순간 ‘침묵의 암살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신들린 듯한 ‘버디 행진’을 시작했다. 12번홀(파4) 그린 밖에서 시도한 버디 퍼트를 컵에 떨군 것을 시작으로 15번홀까지 4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2위 그룹에 4타차로 달아났다. 순식간에 승부는 그렇게 결정이 났다. 박인비의 신들린 퍼트에 경쟁자들은 추격 의지는 제풀에 꺾였다. 결국 역전을 꿈꿨던 데이비스와 아리야 주타누간(태국), 마리나 알렉스(미국) 등 3명은 허망하게 박인비에 5타나 뒤진 공동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전인지(24)는 13언더파 275타로 공동 5위에 올랐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페어웨이 안착률 약 89.3%(50/56), 그린 적중률 약 83.3%(60/72), 퍼트 수 평균 28.75개를 기록하며 샷, 퍼트 모두 전성기에 뒤지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 박인비는 최근까지 반달형 말렛 퍼터를 사용했는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남편인 남기협 코치의 조언에 따라 블레이드형 앤서 퍼터로 교체한 것이 특유의 날카로운 퍼트 감각을 되찾는데 도움을 줬다.

우승 후 박인비는 “이렇게 빨리(이번 시즌에) 우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휴식이 길어서 쇼트게임, 퍼팅이 완벽하게 되지 않았는데 이번 주에 그런 감각이 빨리 돌아왔고 퍼트도 잘 됐다. 이번 시즌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면서 “시즌 초반에 우승하면 시즌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 같다.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승 목표를 일찌감치 이뤘으니 메이저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르고 싶다. 첫 메이저 대회인 이달 말 ANA 인스퍼레이션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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